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1998 Flims











불안한 미래에 막연히 두려워하고, 지나온 과거에 회의감을 느끼며 한창 방황하던 이십대 초반 시절, 나는 진심으로 트루먼을 부러워했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다. 트루먼은 비록 서른살이 되어서야 진실을 보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나도 그런 쇼의 주인공으로 살고있고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리얼리티 쇼의 소품들이자 스탭배우들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배우들 중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운뒤 "사실 지금까지 자네 삶은 모두 쇼였네. 이제 여기서 나가 진짜 삶을 살아." 라고 말해준다면 정말 고마울것 같았다. 아니 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겠지. 트루먼이 느꼈던 분노와 실망감보다, 실제 그런 일이 내게 벌어진다면 나는 기쁨이 더 클 것이라 믿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 제목들보다 유명하진 못한 감독 피터 워어는 <트루먼 쇼>를 통해, 하지만 자신의 지나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사람의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일 것이라고 말한다. '짐 캐리'의 이름이 아닌 '트루먼 버뱅크 as himself' 와 같이 오프닝시퀀스에서부터 너무나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뽐내는 영화는, 짐 캐리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 아래서 갈수록 충격적인 진실로 그리고 이내 관객들의 동정과 감동을 끌어내며 마무리 짓는다. 자신을 보험회사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의 삶은 그가 알고있는한 어렸을때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고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으며, 메릴(로나 린니)이란 여자의 남편이자 누군가들의 유쾌한 이웃이자 순진한 친구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라고 믿고있던 세계는 오직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하나의 거대한 가상 세계이자 스튜디오. 이 실시간 생방송의 제작자인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에 의해 총괄되는 '트루먼 쇼'는 트루먼의 탄생부터 현재 서른살까지를 한순간도 빠짐없이 전세계로 송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연기하던 배우)가 그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고 그가 잊지못하고 있던 대학시절 사랑의 피지섬에 대한 막연한 약속, 그리고 여행을 번번히 가로막는 우연을 가장한 요소들 덕에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짐 캐리는 유독 이렇게 비현실적 요소가 평범한 일상에 침입해오는 설정의 영화들에 자주 등장했던것 같다. 이 <트루먼 쇼>뿐만 아니라, <라이어, 라이어>와 <브루스 올마이티>, <예스 맨> 등등 그는 영화들 속에서 전지자나 혹은 자신의 위에서 자신을 컨트롤하는 누군가를 자주 만나왔던 것이다. 조니 뎁을 제치고 '잭 스페로우'가 될 뻔도 했던 이 유머넘치는 캐나다인은 유독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다. 나는 <맨 온 더 문>이나 <트루먼 쇼>로도 아카데미를 받지 못한 짐 캐리가 이제는 아카데미로부터 단순히 취향의 차이로 외면받아온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운 심정까지 들었다. 













눈치가 도통 없어보이는 트루먼 버뱅크는 우연히 엘레베이터의 너머, 자신이 진짜라 믿어온 세상의 이면을 목격하는 것과 주변 행인들의 반복적인 패턴, 그리고 우연히 도청하게 된 라디오에서의 우연등으로 눈치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다. 하지만 이런 변명으로도 그가 진실에 눈을 뜨는데 30년씩이나 걸린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 의구심을 가졌다. 어째서 30년씩이나 걸린걸까. 물론 죽은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역의 배우가 마침 다시 나타난것도 우연이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가짜임을 눈치채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데 걸리는 시간 역시 그만큼 더 필요하지않나 싶다. 어찌보면 우리는 우리가 진짜라고 믿어의심치 않아온 것들이 거짓이라는 사실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래서, 트루먼이 자신의 세계가 거짓임을 '알아 차린'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와 용기에 있다. 알아차리더라도 확인만하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않기란 쉽다. 그리고 또한 그 편이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하는 방법이고, 진실과 마주했을때 변화하고 망가져버릴 지난 30년에 대한 두려움이 트루먼을 가장 크게 억압하는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트루먼 쇼의 진실은 30년씩이나 계속 된 쇼치고 어설프고 어이없게 들통나지만 진짜 트루먼의 도전은 그 다음, 배를 타고 자신의 섬 '피지'로 막연히 탈출하고자하는 항로이다. 그 세계의 신이나 다름없는 크리스토프가 트루먼에게 선사하는 악천후와 폭풍은 그의 의지에 대한 마지막 시련의 상징이 된다.













이 리얼리티 쇼를 이끌어온 크리스토프는 결국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다. 그 세계의 끝에 도달해 마침에 출구를 찾은 그를 불러세우고, 그 세계의 신과 그 세계의 주인공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대화를 나눈다. 크리스토프는 그 가상의 밖, 진짜 세계의 실상을 지적하며 계속 그만의 '천국'에서 살것을 권하지만 트루먼은 위트있게 자신의 유행어로 마지막 '쇼'를 선사하며 문밖으로 나간다. 영화 속 트루먼이 살고있는 가상의 도시 이름 "Seahaven"에서의 'haven'은 두말할 것 없이 안식처란 뜻이다. 트루먼이 항해를 떠나기위해 용기가 필요했던 이유는, 자신이 거짓임을 눈치채던 그 곳이 사실은 안식처로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각본'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한 대학 시절 사랑하는 여인이나 어딘가 이상한 아내와 친구 등은 그의 불만을 샀을진 몰라도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거대한 쇼의 주인공으로 전세계인의 관심과 인기를 받으며 살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그 거대한 돔형 스튜디오 안은 안식처가 분명했고 그에게는 따듯한 품속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에 빗대어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알이라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트루먼이 마지막 출구를 앞두고 진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세계, 따듯한 알껍질을 포기하고 깨뜨려야 했다. 더이상 트루먼이 존재하지 않을 seahaven은 무의미한 파괴된 세계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트루먼 쇼에 열광하던 세상 사람들은 그가 출구를 나서는 순간 환호를 보내고, 그 쇼가 끝나자 대중들은 트루먼을 잊은 듯이 금새 다른 채널을 찾는 장면이 비춰진다. 모든 사람에게 삶이 '시청된' 트루먼의 인권이나 윤리성을 이제와서 논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다. 크리스토프가 그에게 호의로 선사한 천국도 결국 트루먼에겐 진실이 아니었고, 그랬기에 그는 알을 깨고 떠났다. 이 영화에는 이렇게 타인들의 개입과 그들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으로부터 똑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주지하고 되찾은 한 남자가 있다. 어차피 모두의 인생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역할로 출연하는 리얼리티 쇼다. 그리고 우리네들의 삶은 크리스토프와 같은 타인들에 의해 침해당하고 또 어느정도 그래왔을 여지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자신을 잃지않는 것, 그리고 거짓을 알게되더라도 그 진실과 언제든 마주하고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영화 <트루먼 쇼>는 질문하고 있다. 당신의 삶은 누가 사는 삶입니까라고.
















덧글

  • 2012/08/10 19: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11 18: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루나리나 2012/08/10 21:33 # 답글

    영화리뷰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ㅎㅎ
  • 레비 2012/08/11 18:10 #

    감사합니다 ! :D 앞으로도 소개하고픈 좋은 영화들이 많이 쌓여있어서 뭐부터 쓸지 늘 고민이예요 ㅎㅎ
  • 자주빛 하늘 2012/08/11 10:51 # 답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여요! 짐캐리도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 아카데미는... 참ㅠ
  • 레비 2012/08/11 18:11 #

    아카데미와 짐캐리의 코드가 서로 맞지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ㅠ ㅋ 게다가 순수 연기력만으로 주는 상이 아니라는 느낌도 그간 많이 받았구요. 이제는 조금 늦어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ㅠ
  • 2012/08/11 15: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11 18: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734
331
914477

웹폰트 (나눔고딕)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