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 , 1999 Flims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배와 선원에 비유하며 둘의 독자적 영역을 말했던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은 그보다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고 말했다. 심신이원론으로 대변되는 그의 철학은, 무생물의 예를 들며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던 그가 그래도 인간만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이 두가지 모두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이런 이분법은 분명 헛점이 있다. 우리는 육체가 없는 정신을 상상하기 힘들며, 실제로 정신으로부터 영향받는 육체나 혹은 육체로부터 영향받는 정신을 얼마든지 쉽게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활동이 저하된다던지,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육체에 주는 악영향등, 이제 육체와 정신은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99년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일단 데카르트적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한 인간, 즉 존 말코비치의 육체와 정신을 나누고, 그 정신의 영역에 타인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정신이 침해당하고 분리당한 존 말코비치의 육체는, 처음에는 본인의 의지로 움직이지만 이내 육체의 영역마저 타인에게 내어주고 만다. 그리고 이런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끝을 달리는 영화의 뒤에 각본가 찰리 카프먼이 있다.









이제는 감독으로 불리기를 더 바랄지모를 찰리 카프먼은 99년 이 <존 말코비치 되기>로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포함하여 각종 각본상들을 쓸어모았다. (다만 그 해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에는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아메리칸 뷰티>에 밀리고 말았다) 이후 몇년뒤 다시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내놓은 영화 <어댑테이션>으로 각본상들을 추가하더니, 급기야 2005년 <이터널 선샤인>으로 미국과 영국 양쪽 아카데미의 각본상을 모두 받으며 그에게 천재 각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끔 만들었다. 2007년 <시네도키, 뉴욕>으로 감독데뷔까지 마친 그는, 주로 사람과 사람간의 기억과 정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그런 그로하여금 세계적 주목을 받게 만든 경력의 시작점이 바로 이 <존 말코비치 되기>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SF 영화스러울법한 소재를 가지고도 위트와 유머를 섞어 너무 무겁지도 않게, 동시에 그 속에 진지함을 묻어둔채 그만의 유쾌한 상상력을 뽐낸다.


인형극을 하지만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크레이그(존 쿠삭)는 애완동물 가게를 하며 침팬지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에 애정을 갖고 사는 아내 로테(카메론 디아즈)와 사는 아기 없는 부부다. 성공한 다른 인형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처지에 비관하는 그에게 아내는 직장을 구해볼것을 권하고 그는 손이 빠른 사람을 구한다는 말에 서류정리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레스터 기업'를 찾아간다. 뉴욕의 한 건물의 7과 1/2층에 위치하는 이 회사는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비서 플로리스(메리 케이 플레이스)를 비롯하여 정상적인 말을 하면서도 못알아들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레스터 기업의 사장 레스터 박사(오슨 빈) 역시 어딘가 석연찮다. 하지만 일단 급한대로 일자리를 얻고 출근을 하는 크레이그 앞에 직장동료 맥신(캐서린 키너)가 나타나고, 그는 그녀에게 금새 반한다. 하지만 이미 아내가 있는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쉽지않는 와중에, 어느날 캐비넷 뒤로 떨어진 서류를 꺼내기위해 캐비넷을 옮기다 벽에 숨겨진 통로를 발견한다. 그 좁은 통로를 아무도 몰래 기어들어간 그가 빨려들어간 곳은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눈이자 뇌이자 정신세계였다. 그는 육체를 조정하지 못하는 대신 존 말코비치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공유하고 함께 느끼는 15분을 경험한다. 15분 뒤 뉴저지 어느 고속도로변으로 떨어져 나온 그는 살아생전 처음 겪는, '타인이 되는 경험'에 전율하며 맥신에게 이를 말하지만 맥신은 이것을 상업화하여 돈을 받고 말코비치 안에서의 15분을 판매할 생각을 한다. 이 사업은 크게 성공하는 듯하지만 그의 뇌에 들어가본 아내 로테가 성정체성에 의문과 혼란을 겪고 맥신과 사랑에 빠지며, 급기야 본인이 존 말코비치를 조종할 정도까지 되어버린 크레이그는 그의 몸을 빌어 맥신의 사랑을 얻고자한다. 이후 세명의 주연들이 말코비치의 몸안을 들락거리며 얽히는 과정이 그려진다.










영화 초반 크레이그가 길거리 건널목에서 인형극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음란한 모션을 연극하여 보고있던 어린 딸의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세히보면 그가 하던 인형극이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서로 멀리 떨어진 상대를 그리워하는 고결한 연인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극화하는 도중에도 크레이그의 정신은 저도 모르게 성적인 탐닉, 육체적 쾌락에 닿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형극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에 등장하는 한 구절은, 이후 찰리 카프먼 각본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원제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가 되기도 한다. - 로테와 맥신이 말코비치의 기억들 속에서 추격전을 펼치는 장면들과 <이터널 선샤인>에서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짐 캐리의 기억들 속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들이 너무 흡사하다고 생각한건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또한 크레이그는 로테와의 대화중에 아기를 갖기를 원하는 그녀의 말에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섹스리스 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적만족도가 낮은 부부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크레이그는 맥신에게 겉잡을 수 없는 성적끌림을 받고, 반대로 아내 로테 역시 샤워 도중의 말코비치의 육체에 들어갔다가 남성으로서의 성적 쾌락을 맛보고 잊지못하게 된다.









영화에는 주효한 세명의 캐릭터가 있는데, 주인공 크레이그와 그의 아내 로테, 그리고 이 두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맥신이다. 크레이그부터 살펴보자. 그는 분명 재능있는 인형술사이다. 하지만 영화 처음, 그는 텔레비전을 통해 '성공한' 다른 인형사를 부러워한다. 재능은 분명 뒤지지않는데,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인형극을 하고 돈을 구걸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는 어리숙하고 무능력한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내를 한순간에 저버리고 직장에서 마주친 맥신의 사랑을 얻으려 애쓴다. 그런 그에게 존 말코비치의 육체는 아주 소중하다. 왜냐하면 현실세계에서 말코비치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맥신은 '존 말코비치의 몸'과 그때마다 그 안에 들어가 있던 '로테의 시선'을 자기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맥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에게 말코비치의 육체는 필수였다. 현실의 무력한 자신의 몸으로는 그녀에게 외면받을 뿐이었으니까. 인형술, 즉 다른 육체를 조종하는데 재능이 있다는 설정은 영화중반, 그가 말코비치의 몸을 제어하기 시작하면서 복선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코비치의 몸을 들락거렸지만 크레이그가 처음으로 말코비치의 몸을 컨트롤 할 수 있게된다. 즉 그의 정신이 말코비치의 육체를 장악하면서 그의 정신은 이제 15분뒤 뉴저지 고속도로로 떨어져나가지 않고 그의 몸안에 머물 수 있게된다. 성공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크레이그에게 남은 것은 말코비치의 사회적 부와 명성과 맥신의 사랑이다. 그런 그는 그렇게 수십년을 보내지만, 주목할만한 점은 그렇게 우여곡절로 '성공한 남자'의 육체로 들어간 크레이그의 정신도 기껏해야 배우를 그만두고 인형술사가 된 말코비치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크레이그로 남아있는 것보다 말코비치가 된 인형사는 더 빠르게 성공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타인의 육체로 들어간 정신은 여전히 자신(크레이그)의 것으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어느정도 데카르트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게 아닐까. 하지만 말코비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침해당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게 된것이니 이것을 이원론으로 설명할 순 없을것이다.










반면 아내 로테는 말코비치의 육체에 들어갔다가 자기 자신을 잃을뻔한다. 남자의 육체에 들어가 처음 느껴본 쾌락이나 그녀의 성적정체성의 혼란은 급기야 자신의 남편도 갈구하고있는 맥신에 대한 사랑으로 변한다. 즉 양성애 혹은 동성애에 눈을 뜨게되는 모습인데 이 점은 로테가 원래 이런 동성애적 성격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삶에 처음으로 남자가 되어봄으로서 남자의 시선과 감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된 것이다. 말코비치의 육체안에서 로테의 정신은 맥신에게 반하게 된다. 이것은 말코비치를 조종하는 크레이그와는 달리 로테의 정신이 말코비치의 육체에 들어감으로서 그 육체에 정신이 동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그녀는 갈수록 말코비치의 육체를 탐닉하고 원하게 되지만 그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맥신을 향한 사랑이 근본이 된다. 영화속 이런 성적코드들 덕에 말코비치의 뇌 속으로 들어가는 그 좁은 통로가 마치 - 중간의 그 끈적하고 습한 무언가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도 - 우리가 태어난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 같다고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맥신은 크레이그와 로테와는 달리 한번도 말코비치의 육체안으로 들어가보지 않는다.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사업을 벌이지만 그녀는 말코비치의 몸 안으로 들어가 느껴보는 것 대신, 현실에서의 그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녀의 대사대로, 그녀는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존 말코비치의 시선(육체)과 그의 뇌속에서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로테의 시선(정신)을 이중으로 받으며 행복을 느낀다. 결국 주연 세명 모두 각자 원하는 쾌락을 탐하기를 원하지만 그 방식은 모두 다르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말코비치의 육체를 지배하면서까지 맥신과의 섹스를 원하던 크레이그는 육체적인 쾌락을, 여자의 몸이 아닌 말코비치의 몸에 들어가서라도 맥신과 섹스를 원하던 로테는 정신적인 쾌락을, 그리고 맥신은 직접 들어가보는 것 대신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두 시선 - 육체와 정신 - 을 모두 누린다. 육체와 정신의 차이를 쾌락에 빗대어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나는 이 영화의 명쾌한 비교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가 어디까지나 육체적 쾌락, 정신적 쾌락만을 비교하는 에피쿠로스적(!) 영화가 아닌 까닭은, 존 말코비치의 입장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육체를 침탈당하는 경험을 한 그가 눈치채고 직접 찾아간뒤 스스로의 뇌속으로 들어간다. 이 알 수 없는 순간, 여기서 찰리 카프먼은 마치 거울이 거울을 비추듯 표현해버린다. 즉 말코비치의 정신속에 들어간 말코비치의 육체는 끝없이 존재하는 자기 자신, 끝없는 존 말코비치만의 세계에 맞딱드린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이 영화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긍정하는듯 하면서 부정해버린다. 타인의 감각을 대신 느껴볼 뿐이었던 크레이그가 급기야 컨트롤을 하기 시작하여 그 사람의 사회적 '겉'을 탈취하고 소유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식이 육체의 행동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는듯 하더니, 어느 순간 말코비치의 입에서 크레이그의 생각이 말로 튀어나와버리고, 이후 행동의 자유까지 빼앗기게 된다. 정신을 지배당한 사람은 곧이어 육체를 지배당하고, 역으로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면 육체를 지배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처음 말코비치의 정신과 감각을 경험하고 온 로테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이 대사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타인이 되어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각을 느껴본 댓가는 나 자신에 대한 재인식이라니.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내 의식만을 가진채 육체와 감각의 자유는 모두 타인에게 맡기는 것. 언제나 항상 있는 것의 존재는 그것이 사라지고 없을때에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 대사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한순간도 남의 것이 되어본적 없는 '나'라는 존재의 감각이 15분만이라도 '남'이 되어보면 우리는 그 일순간 잃어버린 '나'가 무엇인지 알게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영화에는 이외에도 타인의 육체을 바꿔가며 영생을 살고자하는 노인들이나, 끝내 욕심을 부리다 어린아이의 몸안에 갇혀 '지켜보기만' 하게된 크레이그의 말로도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내겐 이런 교훈적인 메세지보다 오히려 세 주인공들이 말코비치의 정신과 육체를 넘나들며 서로를 탐하는 긴박하고 스릴있는 장면들에게서 생각해볼만한 점이 더 많았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였다.
















덧글

  • bjm 2012/08/20 19:55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2/08/21 17:21 #

    감사합니다 ^^*
  • ㅇㅇㅇ 2015/03/23 22:48 # 삭제 답글

    멋진 리뷰네요!!!
    잘 보고 갑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2330
126
918057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