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Tokyo! , 2008 Flims











나는 옴니버스 영화에 아직 적응하기가 힘들다. 보통 두시간여로 제한되어있는, 한 이야기에 집중하기에도 아쉬울만큼의 그 시간마저 쪼개어 나눈 영화의 개별적 이야기들이 가져야할 충실함과 만족도에 대한 본능적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짧다고 아쉬움이 느껴질 만큼의 좋은 영화들도 세상에 가득한 마당에 여러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진 옴니버스들은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나라는 관객에게 기대치를 낮추게끔 했다. 하지만 옴니버스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들도 분명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한 영화안에서 이어지지않은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보며 다양한 맛을 느끼면서도 한 이야기만으로 전달받기 힘든 메세지나 주제를 머리속에서 추합하면서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감독의 여러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감독들이 한 타이틀 아래 뭉쳤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당긴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떠오르듯 각기 다른 감독들이 색깔과 취향을 각각 비교해볼 수도 있고, 한 영화 아래 모두 맛 볼 수도 있는 기회는 자주 접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 세명의 감독이 <괴물>의 봉준호 감독,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까락스라면 더더욱 말이다.


2008년 제61회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는 2006년 5월 각기 다른 세 감독에게 제안된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이후 2007년, 세 감독은 각자 도쿄에서 서로 다른 시간에 각자의 30분을 완성시켰고 그렇게 탄생된 영화 <도쿄!>는 사실 이야기간의 독립성이 너무 강해서, 장르도 주제도 모두 다르다. 당연히 이야기간의 연계 고리는 사실 없다. 그렇게 옴니버스 영화가 간직하기를 개인적으로 내심바랬던 장점을 저버리면서까지, 세 감독 각자의 시선을 한 타이틀 아래 묶을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사실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계속됬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독립적으로 바라볼뿐 묶어볼 수가 없었다. 













첫번째 이야기 <아키라와 히로코 Interior Design>는 애초에 뉴욕을 배경으로 한 <뉴욕의 세실과 조던>이라는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려고 했었던 것이며, 미셸 공드리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받은 뒤 그대로 배경이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다고 한다. 레오 까락스의 <광인>이나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 역시 세 프로젝트간의 어떠한 사전 합의나 관통하는 메세지는 보이지않는다. 게다가 세 감독들 모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원래는 독립된 이야기로 완성될 한편의 영화'가 될뻔했던 이야기들이니만큼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의 의문인, "왜 하필 도쿄였는가?" 에 대한 대답은 사실 공드리와 레오 까락스에게 '도쿄'라는 단어만을 제안했다던 봉준호 감독만이 갖고있을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배경이 일본의 도쿄일뿐, 세상의 그 어느 도시가 되었어도 가능했을법한 이야기이다.


<아키라와 히로코 Interior Design>는 개인 스스로가 느끼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 말한다. 훗카이도에서 도쿄로 상경한 히로코(후지다니 아야코)와 영화감독 지망생인 그녀의 남자친구(카세 료)는 당장 급한대로 소꿉친구의 좁은 집에 얹혀살며 일자리와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없고, 일자리나 아르바이트는 구해지질 않으며, 설상가상으로 불법 주차해놓은 그들의 자가용마저 폐차장으로 끌려가지만 벌금을 낼 돈마저 없다. 히로코는 친구와 애인으로부터 소극적이고 포부가 적다고 질타받는 것에 지쳐가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가혹하다. 포장지 접는 아르바이트에 마저 재주가 없는 그녀는 오히려 도쿄에서의 영화 상영회가 호평을 받은 남자친구를 보며 더욱 소심해지고 소외됨을 느낀다. 도쿄에서 번듯한 일자리가 있는 집주인인 친구는 자신네들을 불편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은근히 느껴온 남자 친구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 집을 구하는 일조차 제대로 풀리지않는 자기 자신은 한없이 작아진다. 


우리는 그래본적 있을지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나 혼자 느꼈거나 혹은 나보다 못하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던 주변 사람이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나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모습을 보면, 왠지 나와 가까이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저 멀리 뚝 떨어져 나아가고 자신은 갑자기 뒤쳐지고 뒤에 남겨진것 같다는 느낌. 히로코가 느낀 공허함은 잘 안풀리는 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함께 상경한 남자친구의 잘 풀리는 일과 어쩔수 없이 스스로를 비교해서가 아니었을까. 일상 속에서 비일상적인 영상으로 우리를 깜짝 놀래키곤했던 미셸 공드리는 이 지점에서 그녀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버린다. 갈비뼈가 등받이 나무가 되어가고 신체가 서서히 의자가 되어버리는 영상은 일견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지만 그것만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각적 방법이 또 있을까. 남자친구나 소꿉친구와 비교되면서 자신이 나름 가치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남자친구와의 대화에 나왔던 항해사 자격증이라느니)이 흔들리던 그녀는 누군가의 쓸모있는 의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만족을 느낀다. 자신의 생각을 주변인들로부터 강요받아온 그녀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는지, <아키라와 히로코>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에 대한 단편영화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프랑스 감독 레오 까락스의 <광인 Merde>은 비난과 칭찬이 극과 극을 달리는 30분짜리 영화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시각적, 청각적 테러에 감독의 지나친 자아도취라고 비난하는 의견들이 있는가하면 레오 까락스다운 단편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아직 그의 영화세계를 말할 정도까진 되지않는 나는 이 <광인>을 감독색과 결부지을 생각은 없다. 도쿄 시내의 하수도에서 한쪽 눈이 멀고 다리를 절둑거리며 이상한 언어를 흘리며 행인들을 공격하는 '광인(드니 라방)'이 출몰한다. 맨홀을 통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뒤 다시 어느 맨홀로 사라지는 그의 출몰에 도쿄 사회가 술렁인다. 급기야 그만의 지하세계에서 오래된 수류탄 상자를 발견한 그는 어느날 밤 불꽃놀이하듯 무차별적 테러를 벌이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 채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프랑스의 어느 변호사가 일본으로 날아오지만 통역된 그의 자기 변호는 여전히 기괴하기만하다. 찬반 여론을 뒤로하고 그 광인은 결국 사형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이상한 말을 남긴채 눈앞에서 사라진다.


광인과 변호사의 기괴한 대화가 불필요하게 오래 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원색적인 이미지들에 적잖게 놀랐다. 그가 수류탄을 발견하는 지하 배수로에 묻혀있는 그 곳에 걸려있던 것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사용했던 제국주의의 상징물인 욱일승천기였다. 물론 2차대전때 사용하다 잊혀진 물건이라는 의미였겠지만 그렇게 '발굴'되어 광인의 손에 들어간 폭탄이 전범국이라는 오명 위에 건설한 번듯한 도시(도쿄)로 다시 끌어올려지고 폭발한다. 도쿄 도시 지하에 묻혀있던 제국주의의 잔재가 다시 지상으로 드러나는 이 장면을 <도쿄!>라는 제목이 붙은 영화에서 일본인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패전에 대한 댓가로 주어진 자위대에게 집단자위권 허용을 추진하려는 최근 일본의 논란많은 시도가 문득 겹쳐보였다. 그들의 지하에 여전히 잠들어 있는 군국주의적 사고에 대한 레오 까락스식 돌직구가 아닐까.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광인의 말은 논리가 없지만 직설적이다. 광인의 일본인들에 대한 원색적이고 성적인 비난에 맞대응하는 검사측의 분노는 유치해보이기까지 한다. 교수형에 쳐해졌을때, 죽은줄 알았던 그가 몸을 비트는 장면은 그의 긴 머리카락과 겹쳐진 두 발, 하얀 옷으로 인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예수를 연상시키며, 홀연히 사라진 그의 육체도 부활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지만 "신도 늙었군" 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 나는 굳이 종교적 메세지는 찾지않으려 했다. 끝까지 일본을 조롱하고자했던 감독의 의도라면 일본 사법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사형은 언도한 광인이 비웃으며 사라진것인지, 아니면 그 신이 어두운 내면을 지하에 감추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않게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일본을 겨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이야기, <흔들리는 도쿄 Shaking Tokyo>는 이 프로젝트를 두 프랑스 감독에게 먼저 제안했다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다. <괴물>에서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그렸던 그는 이 짧은 단편에서 히키코모리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히키코모리란 사회생활을 하지못하고 집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병적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은둔형 외톨이'로 쉽게 번역된다. 90년대 한국의 '방콕족'을 떠올리게하지만 일본에서는 후생성에서도 쓰일만큼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어있다고 한다. 10년간 집에서 나오지않고 모든 것을 주문 배달로만 해결하며 살던 남자(카가와 테루유키)는 매주 주문하던 피자집에서 배달온 소녀(아오이 유우)를 만나지만 그의 마음의 벽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 당돌한 소녀는 10년간 정리된 그의 집안 풍경에 도리어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마저 히키코모리가 되어 다시는 피자배달을 오지 않는다. 소녀에 마음을 빼앗긴 남자는 그녀를 만나기위해, 그녀를 집안에서 나오게하기 위해 10년만에 집밖으로 걸음을 떼지만 이제는 모두가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제목대로 도쿄는 이 단편에서 두번 흔들린다. 첫번째는 소녀가 그의 집에 배달을 왔을때, 그녀는 지진에 남자의 집안에서 쓰러지고, 코마상태에 빠진 그녀는 깨어날줄을 모른다. '타인'과 한 공간안에 있는 것조차 불편한 남자는 어쩔줄을 모르다 그녀의 다리에 있는 버튼 모양의 문신을 발견하고 버튼을 눌러 깨운다. (버튼을 누를때 전원이 들어오듯 쭈뼛 솟는 아오이 유우의 머리카락이 귀엽다) 가터벨트 바로 아래부분이라는, 비록 의식없는 여자이지만 남자로서 함부로 손대기 힘든 하필 그 부위에 있던 그 버튼은 인간적 교감, 그 중에서도 신체와 신체가 맞닿는 스킨십을 뜻하는게 아닐까. 히키코모리에게 그 손길은 정말 큰 용기를 요구했을 것이다. 두번째 도쿄가 흔들리자 일단 살고자 거리로 뛰쳐나온 많은 사람들은 진동이 멎고나선 히키코모리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는듯이 멋쩍게 각자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히키코모리라도 살고자하는 기본적 욕구보단 낮은 습관이며, 누구든지 의지만 있다면 집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음을 뜻한다. 타인에게 마음을 닫는 현대인들의 고립도 결국 다 본인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그 상징적 장면이 지나면, 다른사람들과 똑같이 '본능적으로' 집밖으로 도망쳐나온 그녀를 마침내 만난 남자가 있다. 다시 마음을 닫기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붙잡기위해 뻗은 남자의 손은 그녀의 팔에 있던 버튼을 저도모르게 눌러버린다. 그 버튼에 써있던 단어는 Love였다.












세 이야기 모두 억지로 한 주제로 묶이지 않아서 차라리 나았던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각자 나름의 개성이 있었고 돌이켜보면 독립된 세편의 영화를 따로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내가 좋아하는 두 일본 배우, 카세 료와 아오이 유우를 볼 수 있어서 좋았기도했고, 감독 세명 모두 '검증된' 감독이니만큼 옴니버스 영화가 주기 쉬운, 작품성에서 조금 부족한 단편들이라는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아오이 유우는 왜 내가 보는 영화마다 조금씩 얼굴이 달라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몸의 은밀한 부위에 버튼 문신을 하는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두 프랑스 감독과 한 한국 감독의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는 그 시작부터 완성까지, 그리고 영화 자체의 내용과 영상들까지 두루 만족스러웠다. 적당히 무겁고, 또 적당히 가벼운. 이것은 도쿄를 가보고싶다 - 라는 생각이 들게끔하는 '도쿄'에 관한 영화가 아닌, '도쿄'의 이름을 가진 영화다. 















덧글

  • kimji 2012/08/09 22:32 # 답글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포스팅을 보니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요. 레오 까락스의 영화는 왠지 보고나서 알쏭달쏭할 것 같은 생각이...
    예전에 박찬욱 감독이 참여한 트릴로지 <쓰리>를 보고 기괴하면서도 어수선한 기분이 영 찝찝했는데, 다른 연출이 빚어내는 어떤 어수선함이 트릴로지의 매력인가봅니다.
  • 레비 2012/08/10 14:30 #

    저도 기대했던것과 많이 달라서 의아하기도했고 다소 실망하기도했어요 ㅠㅎ 감독들의 명성에 기대를 하기도했는데 이해하기란 쉽지않고.. 차라리 가벼운 마음들로 옴니버스를 만들어줬으면 좋았을텐데 ㅠ 하는 생각도 드네요 ㅎ 그다지 추천 드리고픈 영화는 아닙니다 ! :D
  • 2012/08/20 04: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21 17: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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