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 루즈, Moulin Rouge, 2001 Flims









고등학교 시절, 한창 하이틴팝에 빠져있던 그 시절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내 mp3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가수 중 한명이었다. 반주없이 Hey sister, Go sister, Soul sister, Flow sister ... 로 시작하는 중독성 강한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도 그녀의 음악을 듣던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Pink 등 다른 여뮤지션들과 함께 부른 그녀의 "Lady Marmalade"라는 그 곡의 도입부는 수년이 지나도 쉽사리 잊혀지질 않았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 곡이 영화 <물랑 루즈>의 OST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이 뮤지컬 영화의 음악을 먼저 접한채 영화를 보았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에 환상을 품고 무작정 찾아온 순진하고 자신감 넘치던 청년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는 사랑에 어떤 이상을 품고 있는 순애보적인 시인이자 작가이다. 보헤미안적 로망을 품고 우연한 기회에 카바레 물랑 루즈의 뮤지컬이자 연극 연출을 맡게된 크리스티앙은 물랑 루즈에서의 환락과 사치의 세계에 당황하기도 잠시, 곧 물랑 루즈의 '보석' 샤틴(니콜 키드먼)을 만나게되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샤틴은 물랑 루즈와 자신을 위해 공작(리차드 록스버그)의 재정 스폰서를 받아야하는 상황. 아름다움을 무기로 공작을 유혹해야하는 그녀는 순수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크리스티앙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않지만 곧 그녀도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사랑에 눈뜬다. 그때부터 공작의 눈을 피한 둘의 밀애는 계속되지만 현실적으로 물랑루즈와 그녀는 돈과 권력이 필요했고 크리스티앙에게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샤틴은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공작은 크리스티앙을 시기하여 죽이려하는 와중에 샤틴은 모두를 위해 크리스티앙의 마음을 단념시키려 하지만 결국 연극 초연 도중, 그녀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공작이 보는 앞에서 크리스티앙과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감독 바즈 루어만은 96년, 디카프리오를 <타이타닉>보다 한발 앞서 꽃미남 스타로 만든 <로미오+줄리엣>의 감독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그 유명한 고전을 현대적 배경으로 가져와 경쾌한 음악과 속도감으로 바꾸어 놓으며 소위 말하는 "MTV 스타일"로 재탄생 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영화에서 보았던 빠른 비트와 현란한 화면전환, 과장된 모션과 표정들은 영화 <물랑 루즈>에서도 그 궤를 같이한다. 뮤지컬 영화에 잘 어울리는 그의 연출은 팝음악과 두 주연배우, 이안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의 색다른 가창력, 그리고 화려한 색감의 영화 속 배경들과 조화를 이룬다. 쇼는 50년간 계속되어야한다- 며 공작의 후원을 받고 물랑루즈 식구들이 그의 앞에서 춤추는 경쾌한 리듬의 "The Pitch-spectacular spectacular" 을 비롯하여, 초반부에 나오는 캉캉,  그리고 앞서 언급한 "Lady Marmalade"등 귀에 익은 곡들과, 남녀 주연 연인이 부르는 듀엣곡들도 뮤지컬 영화답게 전개마다 삽입되어있다. 그런가하면 후반 극이 절정에 다다르면서 조연 배우들의 솔로곡들까지 영화는 팝댄스적인 곡들 뿐만이 아니라 라틴, 탱고, 발라드적 음악들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런 감독 바즈 루어만이 수년만에 다시 디카프리오와 만나 또 한번 고전을 영화화 하여 내놓으니, 내가 올 연말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대단히 기대하고 있는 이유다.



니콜 키드먼에게 이 영화는, 99년 <아이즈 와이드 셧>이후 결별한 남편, 톰 크루즈의 그늘로부터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한 의미있는 영화다. 비록 그 해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몬스터 볼>의 할리 베리에게 내주었지만, 그 대신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분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또한 이 시상식에서 니콜 키드먼은 영화 <디 아더스>로 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0년 초, 이혼 직후의 그녀는 <물랑 루즈>, <디 아더스>, <디 아워스>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물랑 루즈>는 그런 니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극중 톨루즈 로트렉(존 레귀자모)의 이름을 듣고 난 설마 하는 기분이 스쳤다. 우스꽝스러운 광대분장을 한 키 작은 캐릭터가 바로 그 화가라니, 처음에는 동명이인이라고 믿었다. 얼마전 국내개봉했던 화제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잠깐 등장하지만 작은 키에 동그란 안경을 쓴 점잖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런 화가가 영화 <물랑 루즈>에선 화가는 커녕 악단의 광대나 다름없게 각색되다니 아무리 극중 주연들을 위한 변신이었다해도 유명 실존인의 이름만 차용했을뿐, 감독의 지나친 변주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실제 "물랑 루즈"의 이름을 알린 상징적 인물이긴했지만 못알아볼 정도의 변신은 굳이 필요했었나 싶다. 한가지 더 아쉬웠던 점은, 남자주인공 크리스티앙의 맹목적인 사랑에 대한 맹신이다. 지나치게 순수하고 어리석어 보일만큼 단도직입적이며 영화 내내 그 성질이 변하질 않아 후반으로 가면갈수록 오히려 샤틴과의 사랑을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게 만들 정도다. 창부 여자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오히려 평면적이고 일관된 크리스티앙보단 영화내내 격변하는 샤틴의 사랑관에 오히려 눈길이 가는 영화다. 다시말해 여주인공에 비해 남주인공이 너무 밋밋해서 아쉽다.



사실 시놉시스만 듣고보면 참으로 진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진것없는 평범한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되지만 창부인 그녀는 '늘 그래왔듯이' 물질적인 권력과 돈 - 공작의 환심과 순수한 사랑의 감정사이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은 곧 순수한 사랑을 이길 수 없고 질투한 공작은 힘으로 (정확히는 권총과 협박으로) 둘을 떼어놓으려 한다. 거기에 시한부적 병을 안고있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까지. 영화 초반 잠시보아도 어떻게 끝날지 뻔히 보이는 영화에게 반가움을 표현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진부하게 만들지 않는것은 주제가 아닌 영화를 가득 매꾸고 있는 컨텐츠이다. 음악과 그 몸짓들의 연출. 화려한 색채의 배경들과 쇼. 뮤지컬스러운 다소 과장된 코믹한 연기들이 영화 내용을 채워준다. 즉 전개가 앞서 예상되더라도 그 과정을 따라가는 눈이 즐거워지는 영화다. 캐릭터들은 사랑스럽고 이야기는 뻔한만큼 몰입이 쉽다.











샤틴은 처음 크리스티앙을 만났을때도 공작으로 속아 만났으며 후원자가 필요한 물랑루즈의 주인 지글러와 같은 목적으로 자신도 배우의 꿈을 품고있기에 공작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있다. 그녀는 처음 크리스티앙에게 말하길, 자신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물랑루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창부라는 자리에서 그녀는 만인의 연인인 편이 한 남자의 연인인 것보다 더 나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지면서도 그녀는 지글러와 공작의 말에 그녀의 과거의 모습, 즉 돈과 보석을 위해 남자들에게 공허하고 거짓된 사랑을 말하던 자신을 돌아본다. 돌아보며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작이 연극과 후원을 빌미로 샤틴을 원하던 그날 밤까지 끝내 자신은 창부이며 크리스티앙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스스로 결정내린다. 영화 후반부의 샤틴은 공작과 크리스티앙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자신을 싫어하기도하며 실망하기도하면서 동시에 물랑루즈와 연극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듯한 자세까지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얼핏보면 탐욕스러운 권력의 방해와 시기를 극복한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작이 어리숙하고 미련하게 등장하는 만큼 나는 크리스티앙도 맹목적이며 어리석다고 본다. 공작과 크리스티앙은 둘 다 마치 어린 남자아이 같지만 샤틴은 양쪽 사이에서 모든것을 다 알고있음에도 누구에게 기대지않고 전부 해결하려고 하는 성숙한 여인같다. 영화 초반부의 샤틴은 사랑을 모르는 미숙한 모습이지만 사랑에 눈을 뜬 그녀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생각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앙은 처음과 끝이 같다. 이미 앞선 문단에서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듯이.) 그래서 이 영화 <물랑 루즈>는 사실 두 남자 사이에서 그 두 남자 모두를 걱정하고 둘 사이의 갈등을 (연극의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수정하려는 공작과, 그가 자신을 죽이려는줄도 모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며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크리스티앙) 혼자의 고민과 처신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연약하고 자애로운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닐까. 게다가 스스로는 죽어가던 비운의 여자가 말이다. 정작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싸우던 크리스티앙과 공작은 둘 다 그녀가 죽을 병에 걸려있었다는 것조차 모르지않았던지.




















덧글

  • 2012/08/02 21: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03 10: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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