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 Prejudice, 2005 Flims











이 영화는 내가 이 블로그에 영화 리뷰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 쓰는 "워킹타이틀 Working Tile Films" 제작사의 작품일 것이다. 따라서 제인 오스틴의 클래식으로부터 시작해들어가기 보다는 이 영국의 로맨틱 코미디 공장, 워킹타이틀사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일단 이들의 저예산 생산 라인의 필모그래피를 한번 보자. 94년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99년 <노팅 힐 Notting Hill>, 00년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01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 02년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03년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04년 <윔블던 Wimbledon>. 작가이자 감독인 리차드 커티스를 앞세운 이들의 행보는 뚜렷하다. 바로 영국산 로맨틱코미디의 제조라인, 헐리우드의 10대들의 격정적이고 방황 꽤나 섞인 위태위태한 로맨스가 아닌 어딘가 조금씩 모자란 30대들의 어설프고 코믹한 해프닝들이 워킹타이틀사가 내놓는 이야기의 기본 플롯이다. 거기에 휴 그랜트, 콜린 퍼스, 레이첼 와이즈, 엠마 톰슨, 키이라 나이틀리, 리암 니슨, 폴 베타니 등등, 수많은 '영국배우'들이 이 지극히 '영국적인' 이미지의 영화들 속에서 한몫을 더했다. 진정한 사랑이야기 같지도 않은 약간 나사 빠진듯한 이 연애담론들은 이상하게도 매번 로맨틱 코미디 팬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이들의 제작 영화들이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워킹타이틀이라하면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릴 정도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이들의 이미지는 점점 확고해졌다.







이런 워킹타이틀사에서 2005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Pride & Prejudice>을 내놓은 것은 사실 전혀 의외스럽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엘리자베스1세, 로빈훗, 튜더스 왕가 등을 소재로 역시 영국적인 시대극들을 제작한 전례가 있었고, 거기에 이미 <센스 앤 센서빌리티>(95년)와 <맨스필드 파크>(99년)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두개나 영화화된 마당에 로맨틱 코미디의 주요 매커니즘, 즉 무뚝뚝한 남자와 사랑에 조심스러운 여자의 오해와 갈등과 그 해소의 구성을 모두 갖춘 "오만과 편견"이 워킹타이틀사의 타겟에 들어오지 않았을리 없었다. 게다가 이들의 대표적 작품,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오만과 편견"의 현대적 재해석, 또는 오마쥬였음을 감안하면 (Darcy라는 이름의 남자가 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텍스트로 삼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신예 조 라이트 감독과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가 완성되었다.











내가 '취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것은 채 일년이 아직 안된것 같다. 우리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처음 발견한 이 단어가 주는 부정적 뉘앙스를 떠올리기전에 나는 누가 생각해냈는지 참 기발하다고 느꼈다. 단 두음절의 단어로 한번에 저토록 함축된 뜻을 전달을 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니까. 물론 저 의미는 '시집'을 '취직'처럼 생각하는, 소위 물질적인 이유로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려는 여성의 행동자체를 비꼬기 위해 나온 단어이겠지만, 21세기의 이런 세태를 19세기 초 영국의 사회풍과 결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애초에 다른 기회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정말 말 그대로 그녀들에게는 '결혼'이 곧 인생을 바꾸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음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속에선 사랑과 낭만보다는 그 시대 속 혼인과정에 이르는 어떤 매커니즘이 주를 이룬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사이에 처음 놓여져있던 것은 바로 그런 사회적 구속, 통상적인 관념들이었다. 시골 동네에 휴가를 온 부유한 가문의 빙리는 베넷 부인과 그녀의 딸들의 소위 '타겟'이 되고, 그녀들의 바람대로 맏딸 제인 베넷은 빙리와 함께할 수 있게된다. 신분 상승이나 가족과 가문의 존속과도 결부되있던 그 시대 딸들이 짊어진 '혼인' 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나 부담은 베넷 가문의 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만 반항적 기질의 둘째딸,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키이라 나이틀리)에게 만큼은 살짝 예외가 된다. 그녀의 눈에 다아시(매튜 맥퍼딘)는 부유한 가문의 거만하고 무뚝뚝한 남자였고, 그를 험담하는 말들은 그녀에게 모두 진실되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다아시의 눈에 도시의 정숙한 여자들과는 거리가 먼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가족들은 교양없고 자신들보다 훨씬 부족한 사람들로 비춰졌다. 이렇듯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첫인상때부터 둘 사이의 벽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언니 제인의 혼사 등으로 빙리의 집으로 당돌하게 찾아간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허물 기회를 갖게되고, 엘리자베스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다아시 역시 자신이 생리적으로 쉽게 놓지못하고 있던 오만함을 조금씩 풀어간다.










장편소설을 두시간으로 압축하기 위해서 따라온 많은 제약들은 다양한 인물들에게 할당된 묘사의 단순화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원작 소설에 만족스러울 정도로 충실하다. 제인 오스틴의 세세한 인물과 심리 묘사는 많은 부분 잘려나갔지만 그대신 엘리자베스 베넷과 다아시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제인을 비롯한 베넷가 자매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그 주위에 배치한다. 예를 들어, 나는 소설속의 샬롯의 처사에 꽤 깊은 공감을 느꼈던 반면, 영화 속의 샬롯에 대해서는 그저 '엘리자베스의 친구' 일 조연뿐으로 등장되다가 갑자기 콜린스의 아내가 되는것으로 나타나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이 소설의 또 다른 메세지가 제대로 영화 속에선 표현되지 않은것 같아 아쉬웠다. 외모와 가난 등의 악조건으로 사랑보다는 합리적인 혼인을 택한 샬롯의 결정은 엘리자베스의 실망은 뒤로하더라도 그것은 그녀 나름의 타협안이었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 인물들간의 다양한 '결혼'의 모습들은 각자의 메세지를 담고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니, 지금도 물론 그렇겠지만) 사랑의 도피를 행한 리디야 베넷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얻어온 덕에 베넷부인과 가족들의 환대를 받지만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한 엘리자베스는 어머니 베넷부인의 비난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오해하기 쉬운 점은, 제인 오스틴이 결코 사랑이 배제된 당시의 사회적 결혼풍토, 즉 재산과 가문을 위해 결혼하는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편을 들어 풍자한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하는 점이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와 사랑에 빠진다. 이는 이 소설과 영화가 혼인에 깔려마땅한 사랑의 유무를 판별하고 싶어했던 것이라기보다, 그런 사회적 모습은 내버려둔채 그 속에서 스스로 만족스러울 기준을 찾아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것이 아닐까. 물론 다아시는 부유하고 그런 그와 결혼하는 엘리자베스는 당시의 당연한 여성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오만'과 '편견'이 빗어낸 오해들을 걷어낸 이후에서야 비로소 진실함에 확신을 느낀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베넷씨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처럼 '타협'이 아닌 '만족'을 얻을 수 있게된 것이다. 











조 라이트 감독과 워킹타이틀사는 고전의 텍스트를 가져오면서 지나친 각색 없이, 원전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제한된 분량안에서 효과적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 많이 애를 쓴 티가 억력하다. 다소 지루하게 늘어지는 장면처럼 보이더라도 헐리우드처럼 역동적인 씬들이 군데군데있고 (특히 영화 중반부, 무도회장에서의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각 인물들 사이사이로 넘어가는 카메라 워크는 인상적이었다), 마치 <노팅 힐>에서 한번 본 듯한 느낌의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기법들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들 속에서 벌어지는 당대의 재현들과 의상, 소품들은 영국적 중상류층 드라마에 입맛이 까다로운 관객들이라도 흡족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는 비록 19세기 영국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200년이 지난 지금에조차 우리는 여전히 타인에게 쉽사리 '오만'을 주고, '편견'을 받고 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들도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처럼 서로를 아는 한도내에서 남을 판단하려하기에 오해들을 낳고 나아가 인연들과 관계들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일단 나조차도 내가 소홀해진 관계들과 멀어진 사이들을 떠올려봤을때, 때로는 내 편견이나 오해로 인해 벌어진 경우들이 아니었을까 싶은 점들이 많다. 물론 내가 그런 편견들을 갖게될만한 발단과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다아시의 오만과 같이 악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혹은 의도치않은 원인이었다면 나 역시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실수를 저지른 것이 맞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시작에 늘 함께하는 첫인상이라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제인 오스틴이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을 <첫인상>이라고 지었던 것에는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단편적인 겉모양으로 판단된 오해와 편견은 이해와 존중으로 녹여낼 수 있고 이렇게 먼길을 돌아온 사랑과 결혼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시대를 지배하는 결혼에 대한 구속적 풍토에 반항하는 엘리자베스의 당돌함은 사랑스럽고, 부유하고 남부러울것 없지만 정작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다아시는 측은해보이기까지 한다. 한 시대의 고전과 그것을 스크린에 아주 매끄럽게 옮겨놓은 영화, <오만과 편견>이다.






덧글

  • 퐁퐁포롱 2012/07/27 22:40 # 답글

    으, 항상 느끼지만 리뷰 참 맛깔나게 쓰셔요ㅎㅎ 저 조만간 오만과 편견 다시 찾아 봅니다ㅋㅋ
    너무 오래전에 봐서, 유학1년차에 봤거든요; 영어자막으로 봤는데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고 봤어요 ㅎㅎ
    기억은 잘 안나지만 마지막에 다아시가 엘리자베스한테 키스 쪽쪽해주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ㅎㅎ
    보면서 엄청 설렜었거든요 ㅎㅎ
  • 레비 2012/07/28 01:16 #

    :) 감사해요 ! 전 사실 최근에 처음봤어요 ㅠ ㅋㅋ 소설이야 예전에 읽었지만.. 영화로 나온줄도 알고있었지만 정작 영화를 맘먹고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네요 ㅎ
    키스 쪽쪽해주는 장면이 배경과 어울려서 너무 예쁘게 나왔죠 :) ㅎㅎ 제 포스팅 덕에 다시 찾아보신다는 분들의 댓글을 볼때마다 기뻐요 !
  • 호앵 2012/07/28 05:49 # 답글

    bbc에서 드라마로 나왔던 오만과 편견을 봤었습니다.
    브릿지 존스의 Darcy가 Darcy로 나오죠 ㅋㅋㅋ

    엄마 역할이 참 압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얄밉게 역할을 소화하는지!!
  • 레비 2012/07/28 13:15 #

    오 ! 그러고보니 두 Darcy가 콜린 퍼스네요 ㅋㅋㅋ 전 bbc 드라마는 못봤지만 주연이 콜린 퍼스라는건 알고있었거든요 ㅎㅎ

    이 영화에서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베넷가의 엄마, 아빠, 베넷부인과 미스터베넷 둘다 연기가 참 좋았던것 같아요 :)
  • 2012/07/29 01: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01 00: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8/05 21: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06 14:5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의기 2012/09/14 17:49 # 삭제 답글

    멋진 블로그, 공감가는 글들 충만해서 감사합니다 :)
  • 레비 2012/09/16 18:38 #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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