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딩 도어즈, Sliding Doors, 1998 Flims











계절 학기를 다니던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2주째 매일 아침 7시 20분에 버스를 타고가 학교 셔틀버스로 갈아 탄뒤 교내 중턱에서 내려 강의실까지 걸어 도착하면 늦어도 수업시작 20분전인, 8시 40분에는 여유롭게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등교길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평소와 같은 속도로 씻고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지만, 집을 나서는 그 찰나 순간의 목마름이 평소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길이 아닌, 편의점을 지나는 길을 나로하여금 택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음료수를 사든 나는 매일 건너던 그 횡단보도에서 단 1분여 가량 늦게 도달했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신호를 놓쳤다.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었겠지만, 그 8차선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던 내 눈앞으로 타야할 버스가 정류장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지나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그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서 나는 7분여를 더 기다리는데에 써야했고 연쇄적으로 그만큼 늦게 혜화역에 당도한 나는 평소와 다르게, 셔틀버스에 한창 사람이 많은 그 시간에 도착한 댓가로 사람 가득한 셔틀버스에서조차 겨우겨우 강의실까지 올라가야 했다. 사람이 많은 버스는 그만큼 중간에 타고내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비되었다. 그리하여 9시 수업에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들어간 나는 아침의 갈증을 해소하려고 사용한 잠깐의 시간적 딜레이 덕에 오히려 평소의 여유로운 등굣길보다 더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1분여를 더 평소와 다르게 썼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크게 시간적 오차가 발생할줄 미처 몰랐다.









당시엔 짧아 보이는 순간의 차이가 훗날 가져오는 판이한 결과를 비교해 보여주는 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과거에 포스팅 했던 독일 영화 <롤라 런>도 그런 부류의 하나였고, 그 이전에 포스팅 했던 영화 <바닐라 스카이>도 특정 순간의 시간적 분기점을 가진 영화다. 시간의 직선성 앞에 그것을 영화의 힘을 빌려와, 시공간의 왜곡으로나마 대조해보고 그 차이를 직접 보여주는 영화들이 이토록 많은 까닭은 인간이 시간을 역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아쉬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영화, 혹은 앞으로의 미래를 미리 예견하고 현재를 바꾸려는 영화 등등, 영화 속의 수많은 시간여행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다양한 교훈이나 생각해볼만한 거리들을 몸소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던져왔다. 이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과 선택의 차이라는 소재를 택했지만 그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여기에는 갈라진 주인공의 시간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 합리적 설명도 없다. 오히려 1인2역과 마찬가지로 영화에는 한명의 주인공, 두 개의 삶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삶은 도중 겹쳐지는 일도 없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보는 것과 같다. 한 명의 주인공이 겪을 수 있었던 두 개의 선택지가 각각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면서 이런 판타지 같은 설정에 의구심을 갖는다면 오히려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방해가 될것만 같다.










<슬라이딩 도어즈>는 기네스 펠트로가 99년 <세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 바로 1년 전의 영화다. 나는 이 영화가, 그녀가 이후 구축하는 로맨틱 영화에서의 모든 이미지들의 첫 시작점이 되지 않았나하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엔 <아이언맨 2>, <어벤져스> 등에까지 얼굴을 내비쳐 내겐 조금 의외이기도한 모습을 보여주었긴 하였지만, 내 기억속의 기네스 펠트로는 늘 줄리아 로버츠 못지않은 함박웃음을 가진 '귀여운 여인' 으로 있어왔다. 그녀가 연기하는 헬렌의 1인2역은 사실 캐릭터의 컨셉은 동일 인물이라 변화무쌍한 연기력의 감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피곤한 스트레스의 연속인 헬렌과 실연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밝은 분위기의 헬렌을 번갈아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기네스 펠트로가 제임스 카메룬의 97년 개봉작 <타이타닉>의 대본을 거절하고 대신 잡은 영화라고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알다시피 타이타닉의 '로즈'역은 케이트 윈슬렛에게 돌아갔지만, 당시 20대 중반 전성기를 지나고있던 기네스 펠트로가 만일 타이타닉의 히로인 역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타이타닉>은 그해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두 영화제만을 합쳐 총 15개의 상을 받지만 이 중 배우들에게 주어진 상은 없었다. 모두 기술적인 면에서의 수상이었기에 99년 <세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기네스 펠트로가 <타이타닉>에서 연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게다가 특히 시대극에 어울리는 기네스 펠트로의 얼굴이라면 <타이타닉>이 아카데미에서 한개의 상을 더 받아, 영화 <벤허>와 동률을 이뤘던 아카데미 11개 부문 수상 기록을 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그 해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헬렌 헌트에게 실례일까.









제목의 'sliding doors'는 말 그대로 미닫이문이다. 여기선 물론 주인공 헬렌(기네스 펠트로)가 간발의 차이로 놓치는 지하철 문을 의미할테다. 그녀에게 그 하루는 고달픈 하루가 되었다. 지각하여 출근한 회사에서는 벼르던 상사들에 의해 해고당하고 출근과 동시에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닫히는 지하철문과 마주한다. 한 아이가 계단에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로 한명의 헬렌은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헬렌은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 그 순간이 그대로 분기점이 된 영화는 이후 각각 두 명의 헬렌을 동시간 위에 번갈아 놓으면서 지하철을 탄 헬렌과 그렇지 못한 헬렌이 두 인생을 사는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두 헬렌은 물론이고 그녀의 삶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역시 같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두 헬렌으로 분리되는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펼쳐진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세계의 각각 다른 헬렌들의 다른 삶이 작은 면들에서 서로 유사점을 갖되, 그 전개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하철을 탄 헬렌은 집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그녀의 예기치 못한 귀가에 대비하지 못한 동거남 제리와 그의 옛 연인과의 부정 현장을 목격하고 그날로 무능력한 동거남과 헤어질 수 있게 된다. 친구의 집으로 간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새 출발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하철을 놓치고 택시를 기다리다 강도까지 만나 눈썹에 흉터까지 생긴 두 번째 헬렌은 남자친구의 부정을 포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 불쌍한 헬렌은 여전히 바람피우는 제리와 지내면서도 전과 같은 변변한 직장도 갖지 못한 채 웨이트리스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낸다. 기네스 펠트로의 1인 2역에 두 헬렌의 차이를 관객들이 구분하기 쉽도록 영화에서는 머리가 짧은 헬렌과 머리가 긴 헬렌으로 헤어스타일의 차이를 두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부터 상처받은 헬렌은 오히려 새 출발을 계기로 가까스로 탑승한 지하철에서 만난 유머러스한 남자, 제임스와의 로맨스를 키워나가는 전화위복을 맞지만, 무능한 남자친구와 계속 같이 지내는 헬렌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다. 하지만 벌여놓은 판을 수습하기라도 하듯 이 영화의 엔딩은 그 시작만큼이나 판타지스럽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두 헬렌의 삶의 갈림에 이유를 물어서는 설명이 곤란하다. 감독은 애초에 지하철을 타고 못 타고의 차이가 만들어놓은, 전혀 바뀌어버렸던 삶을 말하는 듯 했지만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영화 마지막에서 하나로 귀결된다.








다소 황당할 수도 있는, 처음부터 두 개로 갈라놓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두 세계를 합쳐버리고만 마지막 연출은 처음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다. 왜냐하면 남자친구의 부정을 목격하고 실연을 당하고 좌절한 헬렌이 오히려 제임스를 만나 새 사랑을 찾고, 새 직장에서 새 출발을 하는 이야기에 관객들은 보편적으로 기대했던 메세지, 즉 불행이 새로운 행복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깨고, 그 한쪽 세계를 갑작스럽게 파괴하기 때문이다. 반면, 제리와의 지지부진하고 힘든 생활을 계속하던 지하철을 탄 헬렌도 먼 길을 돌아왔지만 끝내 제리와 헤어지게되고 제임스와 만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보던 두 헬렌의 결말은 하나로 같아진다. (물론 한쪽 헬렌의 세게가 사라지고 나서이긴하지만.)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않는 엔딩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불행인줄 알았던 일이 행복이 될 수 있고, 다행이라 생각한 일이 사실 불행일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불행해 보이는 과정과 선택이 결국은 나쁜 선택이 아닐 수 있고 거시적으로 보면 당장의 행복이나 불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자하는게 아닐까. 


내게도 슬라이딩 도어즈의 시간이 있었다.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어쩌면 매시간, 매순간이 모두 그런 기로의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속 헬렌이 지하철을 타고 못 타고 - 가 이후 그녀의 삶을 바꿀만한 일인지는 전혀 미리 알 수 없었듯이 어차피 우리는 매 순간 그 선택의 결과들을 예측하고 가늠하면서 살 수는 없다. 심지어 이 순간이 훗날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얼마큼 영향력을 가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지난주에도 나는 짧은 기간안에서의 선택을 해야했고, 앞으로도 점점 더 살면서 선택의 순간들을 많이 맞이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는 이런 선택의 부담감으로부터 우리를 다소 낙관적으로 다독여준다. '다 잘될거야.' 식이나 '그래도 운명은 이루어진다.'는 무조건적인 낙관론이 아니라, 근시적인 희비에 좌지우지 될 것 없이 먼길을 돌아가더라도 종착점은 같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로 말이다. Dido 의 'Thank you' 가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흘러나왔다. 에미넴 'Stan'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묻어있는 곡이었지만 "not so bad..."를 반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다지 우울하게 들리진 않았다. 











+













덧글

  • 루얼 2012/07/18 15:17 # 답글

    순간의 선택이 내일을 바꾸는 것 맞지만 결국 그 다른 선택 모두 같은 사람이 내리는 것이기에 인생은 바뀌지 않는, 뭐 그런 것인가요ㅎㅎㅎ 영화 재밌을 것 같아요.
  • 레비 2012/07/19 15:14 #

    비슷한 말을 하는 영화들은 많지만 이렇게 직관적으로 구성을 한 영화는 흔치않아요 :) 좀 지난 영화이긴하지만 볼만합니다 ㅎㅎ
  • 2012/07/18 18:30 # 삭제 답글

    이휘재의 그래!결심했어!가 여기서 나온거 맞나요? 그랬다던 것 같은데 ㅇㅅㅇ
  • 레비 2012/07/19 15:16 #

    저도 그 프로 생각이 났지만 제 기억으로도 그 프로는 제가 초등학생일때 (^^;) 나왔던 걸로봐서 90년대 초반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따라서 이 영화가 시간적으로 이후 같습니다. 물론 한 순간을 두명으로 나누어 각각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면에선 참 비슷하긴해요. 하지만 영화속 헬렌은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ㅎㅎ 거의 불가항력적인 우연한 일로 인해서 지하철을 타고, 못타고가 갈리거든요 ㅎ
  • 자주빛 하늘 2012/07/18 21:30 # 답글

    아, 이 영화 제목이 이거였군요. ㅎㅎ 항상 좋은 포스팅들에 감사드립니다. :)
  • 레비 2012/07/19 15:16 #

    매번 감사합니다 :)
  • 기네스 골수팬 2012/07/18 22:31 # 삭제 답글

    주인장님/ 기네스 팰트로의 팬이라면 누구나 최근의 아이언맨 출연은 의아한 선택일 듯해요. 보통은 무명에 가까운 젊은 여배우의 자리잖아요? ㅎㅎ

    을님/ 전 이 영화 당시에 영화관에서 봤는데, 화면 갈라지는 순간 '그래 결심했어'를 떠올렸던 것으로 추억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적어도 영화 개봉 전에 이휘재의 코메디가 존재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 레비 2012/07/19 15:17 #

    히어로 무비를 잘 안봐서 영화는 보지않았지만 기네스펠트로가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지는 찾아봤지요 ㅎㅎ 의외였습니다 :) 누가뭐래도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의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네요. 귀족 아가씨 이미지가 강해요 ㅎ
  • 미네미 2013/01/03 01:51 # 삭제 답글

    포스팅 잘 읽었어요ㅎㅎ
    방금 이 영화를 봤는데 재밌네요 기네스 펠트로의 웃는모습도 너무 아름답구요ㅋㅋ
  • 레비 2013/01/03 01:59 #

    감사합니다 :) 여름에 썼던 포스팅인데 검색에 잡히나봐요 ㅎㅎ
    전 며칠전에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다시봤는데 여전히 그녀의 함박웃음은 매력적이더군요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3635
331
914662

웹폰트 (나눔고딕)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