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A Bittersweet Life, 2005 Flims









잠에서 깨어나 울고있던 제자는 무서운 꿈을 꾸었냐는 스승의 질문에, 그 아름다운 꿈은 이루어질수 없는 꿈이기에 울고 있다고 답했다.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꾸어서는 안되는 달콤한 꿈을 꾸고만 한 남자의 댓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이 무색하리만큼, 인생에 달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본인의 대사대로 우직하고 충실한 한 마리의 개처럼 조직밖에 모르고 일해온 이 남자는, 그 충직함 덕에 처음 맛본 달콤함에 미처 준비되어있지도 못했다. 그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모른채 흔들리는 자신과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애초에 흔들린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닌 그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보스 강사장(김영철)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스카이라운지 경영과 일처리를 맡고있는 선우(이병헌)는 강사장의 지시로 그의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맹목적인 충성과 냉정함으로 여자에게 다가가 사무적으로 곁에 있는 선우지만 이내 곧 그녀가 강사장 몰래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현장에 들이닥친다. 차갑기만했던 그는 그 젊은 연인을 앞에두고 마지막 순간 강사장에게 전화를 거는 대신, 그 둘에게 없었던 일로 할것을 강요하며 풀어준다. 정말 그답지 않은 순간의 행동은 보스의 여자에게 연민을 느꼈다는 댓가로 가혹하게 그를 조여오고,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갈곳없는 그는 복수를 시작한다.

감독 김지운, 주연 이병헌은 내가 참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예쁘게 나오지 않는', 구미호 이전 5년전의 신민아와 김영철, 그리고 그 외 조연들이 탄탄하게 캐스팅을 받치고 있다. 한국형 느와르라고 자주 표현되는 이 영화는 느와르가 갖추고 있을 모든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느와르라는 장르는 액션이 아니다. 액션영화의 '화려함'보다 '멋'에 좀 더 치중을 하였기 때문이라면 많이 왜곡된 정의겠지만. 여과없는 폭력과 유혈, 깔끔한 격투보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내러티브를 지배한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검은 조직'의 모습이 영화속에 있다. 김영철은 중후한 중년의 멋을 완벽하게 뿜어내며 선우의 적, 강사장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이병헌은 그 거친 액션씬들을 모두 소화해냈다. 느와르라는 장르가 필요로하는 어두운 색채를 필름은 잘 흡수하면서 개성 다양한 배우들이 그위에 자신들의 색을 잘 칠해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해서 한국형 느와르라는 영화가 완성되었다.












원래 <달콤한 인생>이라는 타이틀 이전, 김지운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의 제목은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였다고 한다. 이는 신민아의 캐릭터, 희수가 결코 쉽지않은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강사장과 선우 사이에 껴있는 삼각관계의 정점이 아닌, 늙은 보스의 스폰을 받으면서도 대학에서는 평범한 사랑도 포기하지 못하는, 선우를 보내 감시당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의 머리위에 있는양 거침없이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불안해보이기까지 한다. 선우와 강사장의 관계를 그렇게 까지만든 팜므파탈이라면 다소 곡해겠지만, 그녀는 그런 악의적 행동이 아닌, 검은 조직과 어울리지않는 어린 대학생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두 남자를 끝까지 치닫게 한다. 진짜 연인을 선우로부터 잃고, 다시 만난 강사장에게 당당하게 그만 만날 것을 암시하는 그녀는 강사장으로 하여금 선우를 의심하게끔 만든다. 조직 보스의 내연녀라고 하기엔 희수는 때묻지않은 여느 평범한 여대생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래서 갈등과 싸움은 그녀를 사이에 두지않고, 두 남자 사이로 고스란히 옮겨간다. 결국 영화의 제목은 마지막 하일라이트 씬의 배경이 되는 바 La Dolce Vita의 의미인, '달콤한 인생'이 되었긴했지만.


아버지 같이 따르던 남자가 사랑한 여자에 욕망을 느끼고, 그 남자를 자기 손으로 죽인다. 영화 스토리는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프로이트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이 용어는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뜻한다. 강사장과 선우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대단히 닮아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냉철하고 다른 감정에 흔들리지않는 선우는 강사장이 사랑하는 여자, 즉 희수에게 욕망을 품고 강사장에게 총을 겨둔다. 여기서 모친이란 물론 혈연적 관계가 아닌, 부친이 사랑하는 여자이다. 프로이트는 이 콤플렉스가 자신의 부친에 대한 선망과 동일시하고 싶은 욕구가 초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영화 초반 선우의 캐릭터는 마치 스스로의 조직에 몸담고 있고 꽤 높은 직책에 올라있지만, 그 속에 때묻고 싶어하지않는, 흑조속의 백조처럼 움직인다. 방심하거나 풀어진 모습 하나 보이지않는 그의 자아는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상태였지만 본인을 위한 욕구와 자아가 희수를 만나면서 비로소 꿈틀대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뜬 선우의 욕망은 어찌보면 당연히 자신을 옥죄이는 부친, 강사장을 향한 분노로 향한다. 후대의 학자들 중에선 부친의 권위가 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찾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선우가 몸 담고있던 조직은 권위가 지배하는 세계, 느와르의 세계가 아니었던지. 그렇게해서 아들은 부친에게 총을 겨누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남자가 사랑의 달콤함을 맛본 댓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엔딩크레딧 직전에 나오던 스카이라운지에서의 쉐도우복싱씬은 그 의미를 두고 의견들이 참 많은 장면들 중 하나다. 그가 쓰러져있는 바로 그곳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복싱 모습에 선우는 그때의 그 답지않게 해맑게 웃기까지 한다. 물론 그 장면이 시간적으로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강사장의 충직한 부하로서가 아닌, 희수를 만나게되고 그녀의 음악을 들었던 그즈음의 선우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감정 표현에 서투르기 그지없는 무뚝뚝한 남자가 사랑을 시작하게되면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때는 아무래도 혼자 있을때가 아닐까. 왜 다들 그런 경험있지않은가, 혼자 있을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와 함께 조금의 허세와 적당한 뿌듯함에 혼자 흡족해하는 그런 경험. 나는 영화의 이 엔딩씬에서 그런 선우의 모습을 보았다.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어디에 자랑할수도 없지만 혼자 달콤한 상상을 하며 그 에너지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모습. 강사장의 마지막 대사, "이러지 마라." 를 듣고 선우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몇초뒤 그는 그것이 실수라도되는양 바로 주저없이 총을 들어올리고 당긴다. 그 짧은 순간 그는 과연 고민했던 것일까. 쉐도우 복싱씬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유리창은 강사장과 선우가 마지막 대치를 하던 그 장소에서 선우의 시선 방향에 있던 유리이다. 강사장의 말에 결단을 고민하던 선우는 어쩌면 그 유리창을 보고 그때의 달콤했던 자신의 시간이 떠올랐을 지도 모른다. 고민을 하는듯하다가 급작스레 방아쇠를 당긴 것 같은 그 장면은 그래서 나오게 된것이 아닐런지. 한 여인에게 품었던 감정이 가져온 결과는 가혹했지만 프로이트의 말대로 본인의 자아를 잠시라도 찾았던 선우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꾼 자기 자신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다. 그는 미소를 띠운채 쓰러져있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참고 : 김지운, <김지운의 숏컷>, 마음산책,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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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자주빛 하늘 2012/07/05 00:21 # 답글

    선문답들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죠. ㅎㅎ
  • 레비 2012/07/05 14:16 #

    영화의 앞뒤에 자리잡은 선문답들이 참 인상적이죠 ㅎㅎ 영화 내용을 도와주고 있기도하고요 :)
  • 주름 2012/07/07 00:11 # 삭제 답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연상되지만, 페드라도 생각이 나게 하네요.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2/07/07 21:50 #

    페드라가 뭔지 몰라서 찾아봤어요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덕분에 또 하나 알게되었네요 !
  • 누누슴 2012/07/10 20:57 # 삭제 답글

    명대사도 명장면도
    그만큼 패러디도 많고
    아 다시보고 싶어요 !
  • 레비 2012/07/11 10:49 #

    아주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예요 :) 특히 시나리오가 좋아서 그런지 명대사들도 많구요 ㅎㅎ
  • 마카롱 2012/09/07 11:36 # 답글

    하이라이트씬, 둘이 마주보고 서있는 장면 가운데 la dolce vita 라고 보이는것도 너무 맘에들어요. 다른 영화에선 감독의 의도가 대놓고 드러나면 좀 촌스러운데 이작품은 모든게 절묘하고 분위기있어 더 멋져요.
  • 레비 2012/09/08 22:10 #

    전 이 영화를 처음에 봤을땐 그 바의 제목이 la dolce vita 였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어요 ㅎㅎ 김지운 감독의 이 영화 촬영일지 같은걸 읽어봤는데 하나하나 공들인 구석이 많이 보여서 다시 볼때마다 마음에 드는 영화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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