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1999 Flims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스파이크 존스의 <존 말코비치 되기>,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 센스>,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마이클 만의 <인사이더>, 그리고 조세프 루스넥의 <13층>까지. 많은 찬사를 받거나 혹은 논란의 문제작이 되거나, 어떤 형식으로든 후대의 영화에 영향과 파장을 미쳤던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모두 1999년에 완성된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이래서 1999년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가장 많이 제작되고 공개되었던 해이다. 이만큼 명작들이 풍년이었던 해가 또 올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난히 그 세기말은 볼만한 영화들을 많이 남겼다. 국내에서는 바로 그 99년에, 이후 한국 영화사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높게 평가되어온 <쉬리>를 비롯하여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박하사탕> 등이 있었고,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던 해이다. 돌이켜보니, 김규리, 박예진, 이영진, 공효진 네 명을 모두 데뷔시켜 이후 스타 등용문이 된 <여고괴담>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도 99년 영화다. 이런 1999년 명작들이 대열속에서, SF영화의 역사를 바꾸고 있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를 런던으로 불러들여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꿈의 노벨레 Traum Novelle>를 시나리오 삼아 그의 마지막 유작을 남겼다. 바로 <아이즈 와이드 셧>이다.












뉴욕의 왕진 의사 윌리엄 하포드(톰 크루즈)와 그의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은 어린 딸까지 두고 있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다. 영화는 주제를 던지는 그 과정이 아주 뚜렷하다. 첫 타이틀부터 니콜 키드먼의 아름다운 전라의 몸매가 드러나면서 (니콜 키드먼의 영화를 모두 본건 아니지만, 적어도 <물랑루즈> 때보다 이 영화에서 훨씬 예쁘게 등장하는 듯하다) 윌리엄의 친구 빅터 지글러(시드니 폴락)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려는 이 하포드 부부를 카메라는 비춘다. 사회 최상류층들의 초호화 파티에 참석한 이 부부는 파티 중 서로 잠시 떨어진 그때, 각자 다른 엇갈림에 선다. 앨리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헝가리인 신사는 정중하게 접근하여 그녀와 춤을 추며 그녀를 유혹하려하고, 반면 같은 시간 윌리엄은 아름다운 모델 두명으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지만 그둘에게 부부의 신의는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이 지글러의 환자를 돌보러 잠시 사라진 시간동안, 앨리스는 신사의 유혹을 아슬아슬하게 물리친다. 그때 신사가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인 기혼의 앨리스를 유혹하며 던지는 질문은 기혼자라는 구속력으로 억압되어있던 앨리스의 욕망을 건들이며 그대로 이 영화의 화두가 된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왜 결혼을 하지요?











다음날 밤, 마리화나에 취해 침실에 누워있던 이 부부는 난제를 맞이한다. 전날 파티에 있었던 일을 서로에게 묻던 것이 겉보기에서의 촉발제였지만, 진짜 이유는 성욕과 결혼에 대한 모순과 충돌이다. 앨리스는 자신이 제도적 결혼에서의 아내의 입장으로 낯선 남자의 유혹을 거절했던 것을 말했지만 윌리엄은 남자의 본능적 성욕을 두둔하며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런 자신에게 질투 한번 하지않아온 윌리엄에게 발끈하며 그럼 파티에서의 두 모델이나 혹은 당신을 찾아온 환자의 나체를 보면서도 그런 성욕이 드느냐고 묻지만 제 덫에 제가 걸린 윌리엄은 자신은 결혼을 한 몸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남자의 성욕은 정당하지만 결혼으로 묶여진 여자의 정숙이나 아내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윌리엄에게 앨리스는 분노하고, 이어 앨리스는 과거 윌리엄과 있던 함께 있던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지나친 한 해군장교에게 마음이 이끌려 순간적으로 혼외정사의 충동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다음날 다시는 그 장교를 보지 못한 것을 한편으로 안도할 정도로 그 욕구가 강했음을 털어놓지만, 이는 반대로 전형적으로 성실하고 외도를 모르던 남편인 윌리엄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그런 만큼 아내 앨리스를 믿었던 윌리엄은 이후 영화내내 실제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아내와 해군장교와의 성관계의 환상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괴로워한다. 이 날 밤 둘의 대화에 따라 이후 영화에서의 윌리엄과 앨리스는 각각 다른 환상을 겪고 서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남자는 육체적 욕망을 겪고, 여자는 꿈속에서 정신적 욕구를 겪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혼으로 구속된 두 남녀의 욕망의 간접적 체험과 그에 따른 괴로움과 회의감이다.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대변되는 SF영화계의 거장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의 진짜 능력은 철학적 메세지를 표현하는 압도적인 영상에 있다. 또한 영화 음악은, 극도로 절제된 피아노 음이 주요한 순간마다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마치 화양연화의 Yumeji's Theme 처럼 두 부부가 서로 떨어져있지만 각자 생각하는 장면에서 몇번씩 쓰였다. 윌리엄이 오랫만에 알게된 피아니스트인 옛 친구를 빌미로 찾아들어간 한밤 중 저택에서의 집단 난교 파티는 무삭제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번에 뒤엎을 정도로 몽환적이고 이질적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뉴욕의 한 의사가 정말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한 그 영상은 그것이 과연 현실이긴 하였을까 싶을 정도로 윌리엄의 체험을 신비로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긴 했지만 꿈이라 봐도 무방하다. 영화 마지막 지글러가 말해주듯이 그 파티가 연극이었든, 친구 닉이 정말로 시애틀로 날아갔건, 윌리엄을 구하려했던 여자가 정말 혼자 약물중독으로 죽었건 간에 진실은 영화가 말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 저택은 누구의 것이며, 그 파티에 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조차 끝까지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들이 도리어 그 파티에서의 윌리엄이 마치 꿈을 꾸고 있었던것 처럼 만들고 그 파티의 진위여부는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게된다. 헌신적이고 아내에게 충실하고자 했던 남편 윌리엄이 겪는 성적 환상과 욕망이, 잠든 아내를 속이고 창녀와 만나고 난교파티를 갔다는 그 사실에서 발현된다. 사실 그 이전부터 윌리엄의 가치관을 흔들어놓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며 그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갑작스레 임종한 환자의 집에 찾아갔더니 결혼을 앞둔 그의 딸이 아버지의 시체를 옆에두고 유부남인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파티에 갈 코스튬 옷을 빌리러 갔던 가게에서는 눈앞에서 어린 딸이 두 남자와 성관계하는 것을 보고도 다음날 딸을 그 두 남자에게 돈을 받고 창녀처럼 파는 가게 주인. 그리고 처음으로 윌리엄이 외도를 시도하려했던 창녀와의 만남과 그녀의 뒷이야기 등, 윌리엄을 흔들어놓는 사건들은 계속 일어나고 그것은 그 난교파티에서의 위험한 상황을 벗어난 뒤로도 끊임없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반면 앨리스의 성적 욕망은 현실이 아닌 꿈으로 나타난다. 윌리엄이 아내 몰래 난교파티에 있다 돌아온 그 때, 악몽을 꾸다 일어난 앨리스는 울면서 꿈의 내용을 말한다. 윌리엄이 보는 앞에서 다른 많은 남자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하고 심지어 윌리엄을 놀려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크게 웃었다는 것이다. 꿈의 디테일은 마치 윌리엄이 있던 파티에서의 여자들이 겪던 일과 흡사하여 그를 당황하게하지만 이 두 부부는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있다. 바로 이런 환상을 겪고난 뒤 서로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혼란이다. 이 영화를 개봉 당시 결혼 9년차였던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톰 크루즈가 케이티 홈즈와 재혼 뒤, 수리 크루즈가 태어나기까지 8년전이다) 그래서 게이설까지 있었던 톰 크루즈였고, 그 때문에 이 실제 부부의 영화는 그점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는 이 영화가 마치 진짜 그들의 이야기였던 양, 이후 2년 뒤 이혼한다. 훗날 니콜 키드먼은 자서전에서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함께했던 연기가 톰 크루즈와의 결별을 결심하는데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내비쳐 이것은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주연배우에게도 잊지 못할 영화가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즈 와이드 셧>은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 남녀 각각 나름의 죄의식과 죄책감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 말라 했던 것 일 수록 더욱 어기고 싶듯이' 욕망이 있기전에 금기라는 것을 만드는 무언가 어겨야 할 제한선이 있어야 했고, 이 두 남녀에게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부부관계에서의 믿음이 그 억제제가 되어주었다. 사회 고위층, 혹은 그래서는 안되지만 그럴 능력은 충분한 상류층이나 권력자들이 얼굴을 가린채 마스크를 쓰고 벌이는 익명의 난교파티는, 굳이 이 영화에서 뿐만아니라 이런 억압을 교묘하게 깨고 욕망을 분출하는 아주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상징이다. 그래서 윌리엄 하포드라는 욕망에 호기심이 불지펴진 순수한 남자는 그곳에 당도하게 되는 것이다. 금기가 있고, 그것을 어기고 깨고자하는 남자와 여자. 하지만 둘은 과감히 금기를 넘어서기보단 그 마지막 순간 한발 물러서 뒤로 돌아나온다. 악몽에서 깬 앨리스는 남편의 품에 안겨 울고, 새벽 아내의 침대 옆에 놓인 자신의 잃어버린줄 알았던 마스크를 발견한 윌리엄은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제목인 'Eyes Wide Shut'은 질끈 감은 눈을 의미한다. 다시말해서, 봐도 못본척하라 - 혹은 금기 너머의 호기심을 경계하라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크리스마스, 어린 딸과 쇼핑을 나온 두 부부는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앨리스는 윌리엄에게 말한다. 그 일들이 현실이었든 가상이었든간에 우리는 깨어있고 앞으로 올 시간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 사이에 될 수 있는한 빨리 필요한 것은 "Fuck" 이라고. 이것은 게이설이 떠돌던 톰과 니콜 부부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들어볼 수도 있고, 관객들에게 늘 무언가를 주입시키기를 좋아했던 스탠리 큐브릭의 유언이라고 봐도 되겠지만, 금기를 위반하지 못하고 끝내 되돌아나와 상처 입은 어느 부부의 최후의 처방전으로 읽혀도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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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카 2012/07/09 22:10 # 답글

    어라.. 당연히 덧글이 많이 달려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없네.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인데,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인상적인 영화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관련된 외부적인 것들을 연결시켜 보는 재미도 있었고 영화 자체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 어떻게 보면 '금기'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거부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ㅎㅎ
  • 레비 2012/07/10 08:02 #

    아 난 주제까지 모두 아주 잘 와닿았는데 ㅎㅎ 그런데 의외로 이름값에 비해 정작 본사람들은 많지않은 그런 영화같더라고 ㅎ
  • 아이린 2012/10/20 00:32 # 삭제 답글

    정리가 팍팍 되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레비 2012/10/20 15:56 #

    칭찬 감사합니다 :)
  • leo 2013/05/28 19:44 # 삭제 답글

    제목의 의미가 봐도못본척하다 라기 보단... 눈을 크게떠도 보지 못한다가 더 적당한 표현같아요... 영화 내용이 금기나 결혼, 사회제도 등을 표면적으로 다루고있는건 맞지만 깊숙히보면 인간 자체의 모순이나 양면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면 다르게 보일것같아요... 눈을 크게떠도 내면은 보지못하고 표면적인것만보고... 실제로 톰크루즈가 다닐때 보면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자포함) 톰크루즈한테 관심을 보입니다... 외모가 잘생겨서요. 어쨌든 양면성때문에 결혼하고서도 성적욕망/환타지가 있다.. 로 보이지만.. 양면성을 보면 남녀의 양면.. 돈과 도덕에 관련된 양면성도 있고... 영화를 하나의 체스게임으로 보셔도 되요.. 큐브릭이 체스매니아 였는데 다른영화도 보면 체스형식으로 구성이 쪼개져있고 복잡하지만 인간의 본질.. 특히 모순적인 부분을 많이 건드리는데 eyes wide shut은 완전 끝판왕으로 정말 체스같다는 느낌입니다. 화면 구성도 안과 밖, 빛과 그림자가 대조적으로 표현되있고... 그리고 예고편까지 '섹스스릴러 헐리우드 배우기용한 블록버스터 처럼 만들어서 관객몰이에 성공했는데... 그거 자체가 관객들을 놀리는겁니다.. 사람들이 예고편이랑 배우만 보고 영화관에 오는데 막상 영화보고 이게 모지.. 이해못하고 나가는 사람이 90%이상이겠죠.. 그런거 자체까지 큐브릭은 계산한겁니다.. 암튼 볼때마다 새로운 대작중의 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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