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1999 Flims










우리는 일상에서 '미치다'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또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광기', 즉 일종의 정신병으로서의 의미에 근본을 두고 있다. 육체적인 질병 못지않게 정신적인 병은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은 아직까지도 모호하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미쳐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이 정신적 문제는 이제 사람이라면 갖추고 있어야하는 조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믿고 싶어질 정도다. 그만큼 우리는 madness에 익숙하고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미치다'를 '미치지 않았다'와 구별하는 객관적인 기준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1993년, 수잔나 케이슨의 자전적 소설 <Girl, Interrupted>는 11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무르며 정신병동 속의 10대 소녀들의 비밀과 그들의 자유를 말하고 있었다. <가위손>, <드라큘라>, <에이리언4> 등의 컬트영화 같은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들을 골라 출연하던 동유럽의 피가 흐르는 매력적인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그 책에 빠져든 것도 그 무렵이었으리라. 급기야 책 <Girl, Interrupted>의 판권을 산 그녀는 자신이 직접 주인공 수잔나를 연기할 생각으로, 직접 기획자가 되어 이 이야기를 영화화 할 계획을 세운다. 제임스 맨골드에게 메가폰을 맡긴 그녀는 수년뒤 동명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다. 2000년 6월 한국 개봉 당시 영화명이었던 <처음 만나는 자유>와 다소 상반된 뜻의 제목을 가진 영화 <Girl, Interrupted>는 그렇게 제작되었다.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했던 60년대 말, 17세의 수잔나(위노나 라이더)는 아스피린 과다복용으로 위세척을 받은 후 부모와 정신과 의사로부터 자살 미수자로 취급받는다. 자신은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반강제적으로 클레이무어 정신병원에 입원수속을 밟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지극히 정상인이며 자신의 의지로 들어온 이 병원을 자신의 발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그녀였지만 현실의 모든 것은 그녀를 '인격 경계성 혼란 장애'라는 이름을 붙이고 감시하고 통제했다. 자신은 정상이라고 믿었던 그녀였지만 병원안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다른 10대 소녀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그 병원 속 삶에 차차 익숙해져간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수 없었던 그녀는 상담에 의욕이 없었고, 그녀를 탈출시키려는 남자친구의 시도에 스스로 뒷걸음질치며 정말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병원에는 아버지에게 구속받으며 살고있는 데이지(브리트니 머피), 스스로 입힌 얼굴의 화상에 괴로워하는 폴리(엘리자베스 모스), 수잔나의 룸메이트이자 환상속에 살며 거짓말 장애를 가자고 있는 조지나(클리어 듀발)등이 있으며 자신을 정신병 환자가 아닌 아직 준비가 되지않은 10대일 뿐이라고 바라봐주는 간호사 발레리(우피 골드버그)등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장 주효한 조연은 역시 리사(안젤리나 졸리)이다. 8년이나 탈출과 돌아옴을 반복하던 폭력적이고 냉정한 그녀는 클레이무어 정신병원의 유명인사이자 여환자 병동의 다른 소녀들을 장악하고 있는, 늘 문제를 일으키는 캐릭터다. 하지만 수잔나와 리사는 몇가지 동질감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으로 금새 가까워지고, 수잔나의 정신병동 생활은 서서히 리사를 닮아간다. 그리고 충격요법을 당해 자신을 제이미라고 부르는 리사의 손에 이끌려 어느날 밤, 탈출을 감행한 수잔나와 리사는 앞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병원을 나와 혼자 살고있는 데이지를 찾아가지만 긴 정신병동 생활로감정을 잃어버린 리사의 독설에 다음날 아침 자살한 데이지를 마주할 뿐이었다.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리사의 행동에 회의를 느낀 수잔나는 스스로 병원으로 돌아오고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게 된다.













영화에는 쟁쟁한 여배우들이 잔뜩 등장한다. 주연 위노나 라이더 뿐만 아니라, 시스터액트의 그 우피 골드버그, 그리고 몇해전 3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 안타깝게한 브리트니 머피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여배우들 속에서 단연 빛을 발하는 것은 안젤리나 졸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헐리우드의 여배우들 중 가장 권총이 잘 어울리는 여배우(라고 나 혼자 믿고있는)인 그녀는 이 점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툼 레이더>시리즈를 비롯해 <본 콜렉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월드 오브 투모로우>, <원티드>, <솔트>, <투어리스트>까지, 여전사 아니면 비밀요원 같은 캐릭터를 구축해 온 것이 사실이다. 케이트 베킨세일, 밀라 요보비치, 시고니 위버 등의 '강한 여성' 이미지의 여배우가 되었지만 정작 그녀의 유일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는 바로 이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이다. 그만큼 안젤리나 졸리의 반항적이고 뇌쇄적인 눈빛은 영화속 리사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어린시절 실제 정신병원에 입원해본 경험이 있다는 위노나 라이더의 연기와 함께 이 두 소녀는 우정과 갈등을 영화내내 긴장감있게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사실 수잔나는 정신병자라기보다 사회 부적응자에 가깝다. 그리하여 그녀에세 붙여진 병명 역시, 몇번이나 영화속에서 강조되지만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들어보면 현대 사회인이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을법한 증세인 까닭이다. 정신병, 혹은 미쳤음을 정상인과 가르고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가 정한 잣대이며 영화속 수잔나가 당하는 억울함과 구속은 관객들로부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호소한다. 사실 영화를 보다보니, 누구든, 심지어 나 조차도 정신병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붙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중반, 수잔나의 억울함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관객 누구나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다. 하지만 영화는 데이지의 죽음으로 급전환을 맞는다. 리사의 자유로운 영혼을 일견 동경하던 수잔나의 태도가 돌면하면서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발레리에게 자신은 확실히 정상은 아닌것 같다면서 털어놓는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그동안 외면하고 회피하려고만 했던 자신의 무책임한 10대의 시간들을 바라볼 용기를 갖게 해준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리사가 정상이 아니고 그녀의 마음은 병들어있으며, 오랜 병원생활과 반항적인 마인드로 인해 냉정해진 그녀의 마음은 오래전에 죽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에 있다. 그래서 병원을 나가기 전날밤 지하실에서의 수잔나의 외침은 그녀가 받았던 충격만큼 리사의 마음에도 그대로 꽂혀 무너지게 만들었다. 리사 역시 수잔나와 다름없는 현실도피와 외면을 반복하던 소녀였던 것이다. 












60년대말의 그 시대적 배경은 베트남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미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반전反戰의 메세지보단 외려 10대 소녀들의 현실도피와 사회적 무관심이 주를 이룬다. 그러한 까닭에 60년대의 급박하고 치열한 현실을 소녀의 지루한 감상과 냉소로 일축했다는 혹평도 받았지만,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소녀가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볼 수 있다면 이 영화에서 굳이 그런 정치적 색깔을 찾아야만 하는지 나는 되묻고 싶다. 처음 클레이무어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택시기사를, 수잔나는 퇴원하는 길의 택시안에서 다시 만난다. 결국 처음과 끝은 모두 같아졌지만 수잔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10대의 성장영화라고만 국한해서 볼 필요도 없이, 이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는 우리가 누구나 조금씩은 앓고있는 소위 '정신적 문제'에 대한 획일화된 사회적 기준과 시선, 그리고 힘든 현실로부터의 무책임한 도피와 외면에 대한 교훈적인 메세지들을 두루 담고 있다. 비록 전개는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속에는 같은 처지의 동성들간의 우정이나, 한 밤의 복도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함께 부르는 낭만이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정신병자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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