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즈, Singles, 2003 Flims










故 장진영이 우리 곁을 떠난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여배우의 이름에 그녀와 배두나를 두고 고민하곤 한다. TV광고로,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인기 시트콤이었던 <순풍 산부인과>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장진영이 우리에게 남긴 영화는 많지않다. 하지만 그녀의 짧은 필모그래피는 두 차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우리로 하여금 배우 장진영을 기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녀의 마지막 삶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영화 <국화꽃 향기>를 사람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꼽곤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이미지의 대부분은, 내가 스무살때 봤던 스물아홉들을 위한 영화, <싱글즈>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녀를 추억할때 이 영화를 떠올릴수밖에 없다. <싱글즈> 속의 장진영은 그녀의 영화들 중 가장 밝고 명랑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이 원작이자, 일본 드라마로도 있다고 하는데, 조금 검색해보니 한국에서 영화화 한것이 훨씬 낫다는 평들이라 더 이상 찾아보진 않았다. 재밌는 것은 불과 9년전 영화라고 해도 지금의 배경과는 조금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딘지 모르게 (그리고 일부러 그런 면도 없진 않아보이지만) 촌스러워보이는 패션이나 살짝살짝 보이는 옛 추억의 브랜드들, 피처 폰 등 영화속에서 보이는 오브제들은 2003년이 결코 오래된 과거가 아님에도 지금의 현재가 너무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하지만 스물아홉살이라는 나이는, 그리고 그 나이의 남녀들은 2003년에도 있었고, 2012년에도 있고, 내가 스물아홉이 되는 2014년에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메세지는 그래서 결코 낡고닳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친구, 나난(故장진영), 동미(엄정화), 정준(이범수)과 나난에게 폭풍대쉬하는 남자 수혁(김주혁)은 모두 스물아홉의 싱글들이다. 따라서 이 영화속에는 이십대 후반들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공감코드들이 들어차있다. 흔히들 아홉수라고 부르는 나이. 그러면서도 연애와 결혼, 직장과 연봉이 신경쓰이고 꿈을 품은 대학졸업자이자 현실에 마주한 사회 꼬꼬마가 되어야하는 그 애매한 나이에는 풋풋한 로망과 씁쓸한 현실이 공존한다. 나난과 두 룸메이트 친구가 마당에 나와 밤하늘 아래 술을 마시며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그러면서도 그중에서 집을 나왔다는거 하나는 이뤘네!- 하면서 웃는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무래도 우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밝고 유쾌하게 그린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서 그런것 같다.







주인공 나난에게선 자신의 길과 직업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즉, 많다고 할 수도 없는, 분명 이제 시작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동미에게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구속과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마음. 거기에 임신이라는 문제가 더해졌을때 급속도로 줄어드는 선택의 폭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정준에게서는 슬슬 능력으로 연애시장에서 평가받기 시작하는 남자들의 나이에 더없이 공감하고 슬퍼했고, 수헌에게서는 번듯한 직장인이지만 연애와 결혼의 시작 앞에 순수함과 어설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이십대 후반들에게는 더없는 공감을, 혹은 그 시절을 지나보낸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선사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처음봤을때 스무살이 었던 당시의 내게 역시 많이 생각해 볼만한 화두들을 던져주는 영화였다. 영화는 사랑과 직업을 한꺼번에 담는다. 하지만 중구난방이 될 수도 있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없이 영화가 시종일관 경쾌한 리듬속에 흐를 수 있는것은 시나리오와 감독의 덕이라고 본다.


나는 사실 이 영화를 두세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볼때마다 정준의 캐릭터가 제일 부러웠다. 남녀간의 우정이라는 것은 실존한다고 믿고 있는 내게, 저런 나난과 동미 같이 대할 수 있는 친구가 한 명뿐이라는게 아쉽다. 이렇게 영화에는 한편으론 비현실적인 요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동미와 정준같은 룸메이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가 요즘 세상에 몇명이나 될까. 적어도 주위의 부정적 시선과 편견 없이 말이다. 게다가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준을 위해 사실을 숨기고 싱글맘이 되기를 각오할 수 있는 사례는 또 몇이나 될까. 아니, 그 애틋한 마음을 일단 떠나서 직업이 없는 동미가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비록 영화에서는 나난과 동미의 우정을 특히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쓰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즐기진 못하더라도 차차 정을 붙여가던 직업을 위해 수헌의 청혼도 거절하고 한국에 남는 나난의 이야기가 가장 현실성 있어보였다. 사랑과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커리어 우먼들의 경우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영화들에서도 숱하게 봐왔으니까. 









좋은 대학으로의 입학만이 최대 인생 목표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들어가자 그때부터는 연애와 학점, 단 두가지만 잡으면 20대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제대를 한 이후에는 취직을 잘하면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인생이 진짜 꽃피기 시작하는 것은 30대라고 생각한다. 다들 20대가 가장 가능성이 많고 꿈도 많으며 그것을 현실로 바꿀 기회가 가장 많은 시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20대는 30대를 위한 시간인것 같다. 하긴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20대는 그렇게도 악착같아 질 수 밖에 없는걸까. 이 시대의 스물아홉이 주는 느낌은 그런것 이었다. 그런 20대의 끝, 다해버린 준비 시간. 마치 30세가 된 첫날부터 자기 앞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그 마지막 시간. 비록 여성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영화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남자들이 보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종종 피식하며 웃게만들고, 적나라한 현실에 긴장하게도 만들지만 캐릭터들의 밝고 명랑함에 영화를 다 보고나도 우울함은 남아있기 힘들다. 성공과 사랑을 꼭 서른이 오기전에 완성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포기해야할 것들도 많고 선택의 기로에서 가끔은 잘못된 선택이나 원치않은 길로도 걸어 들어가야할 순간들이 오겠지만, 20대의 마지노선이라는 것 앞에 벌써부터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면 너무 안일한 생각일까. 하지만 영화속 나난의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30세는 29살의 그 다음 해일뿐이라고 일단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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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자주빛 하늘 2012/06/14 01:43 # 답글

    30대를 준비하기 위한 20대라는 말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ㅜ 너무 헛되이 보낸 것 같아서...
  • 레비 2012/06/14 04:11 #

    저도 딱히 충실히 보내고있는건 아닙니다... ^^;;;
  • 루미 2012/06/14 10:57 # 답글

    저도 이 20살 초반에 본 이 영화가 3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 가장 마음속에 남는 영화예요.
  • 레비 2012/06/14 15:03 #

    ^-^ 스무살 이후로 한국영화를 많이봐도 이 영화는 계속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 중 탑랭크안에 머무르더라구요:) 군더더기없이 참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잘 만든 영화같아요.
  • 2012/06/14 17: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6/15 00:07 #

    아 배경에서 쓰인 소품들도 예쁜게 많았죠 :) 특히나 나난의 집은 더욱 그랬던것 같아요 ㅎㅎ
    나이를 들어서 볼수록 더 생각해볼게 많은 영화같아요 :)
    여자분일수록 더욱 그런 시선을 받죠..ㅠ 아무래도 .. 그래도 비공개님처럼 서른을 두근두근 기다리며 사는 것도 참 좋은것같아요. 저 역시 흐르는 시간을 잡으려고 애쓰기보단 그런편이 더 좋을것같구요 :)
    디데이는 저도 해놔야겠네요 :D ㅎㅎ 비공개님도 오늘 좋은 하루 되셨길 바래요 !
  • 2012/06/14 19: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6/15 00:16 #

    앗 또 ㅠㅠ ㅋㅋ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적 아름다움을 말씀하신게 아닐까요 :) 그런데 보통 내적으로 성숙하면 외향적으로도 발산되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는것 같아요. 저 역시 말씀대로 그런 나이에 맞는 매력을 갖춘 사람이 좋아요. 여자든 남자든지간에요. 소위 동안이라고 하는, 나이를 안먹는듯한 어린 외모는 그렇다치더라도, 속까지 나이를 먹지않으면 그건 그냥 철이 덜든거겠죠..ㅋㅋ 저도 말은 이렇게하지만 아직 철이 덜든것같아서 걱정이예요 ㅠ_ㅠㅋ
  • 2012/06/17 00: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6/18 01:59 #

    음 여유는 생겼지만 비바람이라니 ㅠ 뭔가 저도 두렵네요 ..ㅎㅎ
    네 :) 그냥 일부려니 하고 저도 받아들이려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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