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 Gattaca, 1997 Flims









당신이 누군가에게 가장 작품성있고 잘 만들어진 최고의 SF영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참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 몇 가지 반복된 제목들을 듣게될 확률이 높다.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고 하는 사람도 꽤 있을것이고, 당연히 <스타워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끔 <혹성탈출>시리즈를 듣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뤽베송의 <제5원소>가 거론될 수도 있겠다. 어떠한 질문에 대해 '최고'를 꼽는건 사실 대단히 모호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그 질문안에 '최고'를 구분짓는 기준이 함께 제시되어있지 않는 한 그것들은 서로 각기 다른 기준에 의해 선정된 대답일 것이다. 그래서 그 대답의 객관성을 배제한채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래도 그 질문에 대답할 영화 한편 정도는 가지고 있다. 작년말 국내 개봉했었던,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저스틴 팀버레이크 주연의 <인 타임>의 감독이자, 98년 그 유명한 <트루먼 쇼>의 각본을 맡아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와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던 앤드류 니콜의 데뷔작, <가타카>가 그것이다.










영화 속 거대 우주항공회사의 이름이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타카 Gattaca 는 DNA의 네가지 염기서열인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 의 4가지 알파벳으로만 만들어진 단어이기도 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4개의 알파벳이 강조되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엔딩크레딧에서도 비슷한 처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에단 호크와 주드 로는, 내 생각으론 사실 별로 닮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에선 대단히 서로 닮은 척을 한다. 둘다 약간 시크하고 샤프한 이미지는 공통적으로 갖고있지만 이 영화는 <페이스 오프>가 아니다.


영화는 여느 SF영화들과 다르지않게 '머지않는 미래'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벌써 15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라 그런지 그들이 그리는 미래 세계는 사실 약간 조악하다. 집안은 90년대 말의 여느 가정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회사 '가타카'는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미래적이다. <아이 로봇>에서 본듯한 그런 거대 미래 기업의 모습이랄까. '가타카'는 몇십년만에 한 주 우주로 항법사들을 쏘아보낸다. 그 우주여행의 목적이나 그들이 왜 그런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 우주탐사가 배경이되는 미래 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이나 위상도 나와있지 않다. 관객들은 조금은 막연하게 주인공 제롬의 꿈과 우주탐사를 일치시킬 뿐이다. 다만 그 우주탐사는 경쟁률이 대단하며 선택받은 우수한 극소수만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주탐사가 갖는 의미를 대강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런 설정들이 갖는 티는 사실 흠잡을 만한게 아니다. 영화는 애초에 이런 미래사회를 뛰어나게 구현하는데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다른데에 있다.













유전자 DNA를 조작하여 불치병이나 선천적 장애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 못지않게, 미래에서는 아예 태어났을때부터 그런 걱정이 없는 아이들, 즉 결점을 미리 알고 그것이 제거된채 태어나는 후손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우리는 쉽게 들어왔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이미 세상에 발을 내딛기 전부터 그 아이들의 능력과 조건이 조작되고 수정되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히 유토피아적 환상과도 같다. 인간은 점점 완벽에 가까워진 개체들로 구성될 것이고 집단과 사회는 더 빠르게 발전하고 더 나은 효율을 낼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런 미래는 디스토피아다. 현대의 인간은 신체적 조건이나 혹은 선천적인 사회적, 경제적 조건. 그리고 계급이나 신분, 혹은 인종의 차이까지 겪는 등 이 세상은 이미 '차이와 차별'로 가득하다. 미래의 우리는 그곳에 하나의 차별을 더 더할지도 모른다.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지(1953년) 50년만에 인류는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2003년). 이제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유전정보를 미리 알고 질병을 예측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더 나은 우성 유전자를 가진 자손들을 기대해 볼수 있는 날도 머지않은것 같다. 영화 <가타카>는 이미 그것이 현실화된 세계의 이야기이다. 허나 그 세계엔 여전히 '낡은 방식'으로 잉태된 사람들도 있다. 유전정보를 미리 조작하지 못해, 운명대로 '신이 정해준' 대로 태어난 자들.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는 그렇게 태어났고 불행히도 그의 삶에는 많은 질병들과 비관적 예측들이 놓였다. 빈센트의 동생 안톤은 '새로운 방식'으로 태어났다. 모든 우수한 조건들을 다 갖춘채 태어난 동생과 그렇지 못한 형의 엇갈린 미래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토성에 가는 우주비행사가 되고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다리가 다쳐 희망을 잃은 수영선수 제롬(주드 로)의 모든 신상정보를 '거래'하는 것으로 회사 '가타카'에 기어코 들어간다. 신상정보를 사서 빈센트가 제롬으로 살아간다해도 제롬의 유전정보까지 얻게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과 신분, 심지어 신체조건까지 최대한 제롬과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그의 약한 심장과 내제된 폭력적 성향, 몸안에 흐르는 열성의 피까지 제롬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영화는 빈센트가 최대한 제롬이 되어 살아가려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그려지지만 한편으론 언제 들통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여전히 놓지 않는다. 영화는 토성탐사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 가타카 내의 한 간부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주요 플롯을 삼는다.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형사에 의해 제롬이 되어있던 빈센트는 위기를 느낀다. 일촉즉발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꿈에 그리던 토성탐사까지 일주일 남은 그는 자신을 용의자로 생각하고 조여드는 수사망을 긴박하게 피해간다. 그와중에 동료 여항법사 아이린(우마 서먼)과의 사랑이 싹트고 그는 여러번 자신이 우성한 제롬이 아닌 열성인 빈센트임을 애써 숨긴다.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은 이 영화를 계기로 1998년 결혼했다. 하지만 2003년 둘은 이혼.) 















어린 시절, 빈센트와 동생 안톤은 해안에서 최대한 멀리 헤엄쳐가다가 먼저 겁이 나 돌아가는 사람이 지는 '겁쟁이 게임'을 한다. 뭐든 우수한 조건을 가진 안톤은 늘 빈센트를 이기지만, 어느날 빈센트가 이기는 일이 벌어진다. 지는것이 당연한 빈센트가 완벽한 안톤을 이기는 그 순간, 그는 희망을 본다. 심장질환 발병률 99%에 예상 수명이 30세 였던 빈센트는 우주를 공부하고, 항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거기에 제롬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꿈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 영화 내내 그려진다. 그 모든 역경들을 극복하고 그는 토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지만, 끝내 자신이 신분을 위조해 들어온 빈센트임을, '가타카'에 있던 동생 안톤에 의해 들키고 만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조건을 갖추고 성장한 안톤은 형에게 그의 한계를 설파하려하지만 빈센트는 노력으로 극복했다고 되받아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형제의 '겁쟁이 게임'. 빈센트는 다시한번 안톤을 이겨보인다. "넌 다시 돌아갈 힘을 남겨뒀지만, 난 다시 돌아갈 힘을 남겨놓지 않았어." 그래서 열등한 빈센트는 완벽한 안톤을 또 다시 이길 수 있었던 것이고, 돌아갈 힘을 남겨두는 한 안톤은 빈센트를 이기지 못 할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노력을 행하는 인간의 자세를, 이 영화 <가타카>는 빈센트의 저 한마디 대사에 압축하여 말한다. 태생적 불리함과 앞에 놓인 '완벽성'이라는 장애물들을, 빈센트는 꿈 하나만 간직한채 이런 강인한 의지로 모두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것이 SF영화라고 단정짓기 힘들다는걸 알 수 있을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이 영화를 최고의 SF영화로 꼽는다는 것은 그래서 거짓말이다. 이 영화는 SF적 요소들을 빌려오긴 했지만 (그리고 SF영화의 일련의 정의에 부합되긴하지만),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메세지로 그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내겐 더이상 SF영화가 아니다. 토성으로의 우주여행이 등장하고 유전자 조작 등 과학적 공상이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속에서 타고남을 뛰어넘는 인간의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을 말한다. 나는 고등학생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어떤 감동적인 극복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었던 더한 감동을 받았었다. 주로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 등에 많이 쓰여온 메세지이지만, 이런 SF적 요소들이 미래사회에 던지는 경고를 넘어, 그 과학의 어두운 단면을 뛰어넘는 인간 본연의 의지와 능력을 함께 말하고 있는 명작는 두번 다시 만나기 힘들것 같다. 















덧글

  • 2012/06/06 21: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6/06 21:26 #

    오 비공개님이 제 영화 리뷰 포스팅에 덧글 달아주시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ㅎ 이걸 보셨다니 의외이기도하고 반갑네요 :) 제게도 좀 해묵은 영화의 거리감이 있는데 비공개님께는 더 어릴때 개봉한 영화 아닌가요 ㅎㅎ 알고계시다니 기쁘네요 :) 저도 정통한 느낌의 SF는 잘 안보게되는데 이 영화는 말씀하신 그런 느낌들이 참 좋죠 :)

    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직 못보셨군요 ㅎㅎ 하지만 그런 사연(?!)이 있다면 저라도 왠지 안봤을것같아요 ^_^;; ㅋㅋㅋ 아참, 제가 링크한 블로거분들 중에 라이프로그를 쓰시는 분이 비공개님 뿐이셔서... 얼마전에 몇개 영화 별점 매겨놓으신걸 우연히 봤어요 :) 그때보고, 저도 좋아하는 영화라, 다음번 포스팅은 그 영화로 하려고해요 :)

  • 미카엘 2012/06/06 23:33 # 답글

    영화 [가타카]의 연출, 앤드류 니콜 감독은 저 역시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최근에 레비님께서 포스팅 하신 영화 [터미널]을 비롯 [트루먼 쇼], [시몬], [로드 오브 워] 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더니 영화 [인 타임] 으로 싹 말아드셨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초심으로 돌아가 5년 만에 제작하는 영화가 바로 SF 장르라고 하는데요,
    [가타카]의 영광을 기대해보며, 언제나 레비님 포스팅을 즐겁게 구독합니다.
  • 레비 2012/06/07 01:36 #

    <인타임>을 안봤는데 말아드실 정도였군요. <가타카>같은 데뷔작을 가진 감독이라면 확실히 부담이 있었을텐데 사실 <인타임>도 같은 선상에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었는데요..ㅋㅋ

    언제나 즐겁게 구독해주신다니 어잌후. 영광입니다. ^_^
  • 호앵 2012/06/07 19:30 # 답글

    저도 가타카 정말 인상깊게 봤었습니다.... 근데 동생 파트는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 ㅠ.ㅠ 본지 너무 오래되었나.
  • 레비 2012/06/08 00:26 #

    ㅎㅎ 확실히 많이 오래된 영화죠 ! 저도 포스팅쓰느라 아주 몇년만에 봤더니 주요장면만 기억나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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