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Taipei Exchanges, 2010 Flims









사춘기와 궤를 같이하던 나의 10대 시절,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막연하고도 이상적이지만 하나의 로망과도 같던 꿈이 내게도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카페를 갖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카페가 아니라, 한쪽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 매일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카페를 말이다.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에, 그리고 그 안정됨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들어오고 나가는 그런 공간이 막연히 좋았다. 커피라는 음료가 갖는 어떤 철학적 의미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는 그런 내 공간을 꿈꿨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아직도 완전히 포기한 꿈은 아니다. 그곳을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음악들로 채워놓고 나의 오래된 친구들과 새로운 인연들을 초대하고, 가끔은 밤새 문을 닫고 칵테일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시네마테크에서 매년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처럼 나도 내 주위 지인들에게 백지수표를 한장씩 주고 그들이 적어내는 영화들을 모아 영화제를 열고 싶다. 카페 이름은 Cafe Blueberry Nights 쯤이 좋겠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국내 남성 팬들에게 확실히 어필한 대만의 여배우 계륜미도 처음엔 그런 소박한 꿈을 가진채 시작하는 맏딸로 이 영화에 등장한다. 얼마전에 포스팅했던 <쓰리 타임즈>의 감독 허우 샤오시엔이 제작을 맡고, 그의 제자 샤오 야 췐이 감독을 맡은 영화, <Taipei Exchanges>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라는 좀 더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제목으로 작년에 국내 개봉했다. 2011년 7월초에 국내 개봉했던 이 영화는 그 당시 여름에 함께 개봉했던 <트랜스포머3> 와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 2부>에 묻혀버렸다. 계륜미를 전면에 앞세운 것 외에는 딱히 흥행요소가 없었던 영화였지만 사실 계륜미는 모든 영화에서 다 예쁘게 나오는 배우는 아니다. 유독 '그 영화'에서 교복을 입고 베시시 웃는 표정이 아주 매력적이었을 뿐, 이 영화에서도 그토록 아름답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순전히 그녀의 팬으로서 이 영화를 본다면 그 높은 기대치 때문에 아주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83년생 계륜미와 90년생 임진희는 정말 실제 자매처럼 닮았다. 나는 오히려 동생 역의 임진희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 (임진희의 헤어 스타일이 보이쉬한 컷이라 이러는거 절대절대 아닙니다 ... ) 두얼(계륜미)는 오랜 꿈이었던 자신의 카페를 개업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오픈 첫 날과는 달리 손님은 잘 오지않고 카페를 채우고 있는 것은 개업날 친구들이 '정말로 가져온' 쓸모없는 물건들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두얼의 동생이자 함께 카페를 운영하던 창얼(임진희)은 그 카페안의 잡동사니에 관심을 갖는 손님들을 보고 판매보다 물물교환을 제시한다. 쓸모없던 물건들이 또 다른 잡동사니들로 교환되고 바뀌어나가면서 서서히 카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35개의 비누를 교환하길 원하는 남자가 나타나고, 두얼은 그 남자의 35개 세계 각 도시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각 이야기마다 삽화같은 그림을 그린다. 마치 그 이야기에 대한 물물교환을 하듯 그녀는 그림으로 답한다.  











영화는 2006년의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과 닮았다. 허나 침체를 겪던 매장이 독특한 철학과 운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서서히 북적거려지는 구도는 확실히 유사하지만 두 영화의 결정적 차이는 각각의 영화에서 포커스를 맞추는 가치 대상에 있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주인 사치에의 주먹밥이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달래는 주요 소재가 되지만 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선 두얼의 커피나 디저트는 사실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 곳 두얼의 카페에서는 손님들의 물물교환이라는 행위가 그 따듯한 교류의 기능을 대신한다. 어설픈 사랑 이야기로 빠질까봐 걱정했지만 처음부터 일관된 메세지를 끝까지 잘 유지해 영화는 균형을 잘 잡았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영화 외적, 시민들의 인터뷰 영상들도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화두를 인터뷰 형식으로 마치 간주처럼 삽입하여 관객들이 헤매지 않도록 방향을 친절하게 잡아준다. 주된 테마 음악이 되어 내내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동화적인 이 이야기에 아주 잘 어울린다. 카페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자연스럽게 좋은 영상미를 가진다. 두 자매가 서로 번갈아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나 주장을 펼치는 장면들이나 함께 긴 쇼파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들이 심플해 보이지만 또렷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잔잔하다. 굵직한 큰 사건이나 어떤 급류를 탄 전개 없이 천천히 마음속에 스며든다.










영화 중반, 창얼이 스튜어디스 세 명에게 털어놓는 두얼과 자신의 이야기는 자매인 둘이 어떻게 그렇게 다른 캐릭터가 되었는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영화 전반부엔 창얼을 이해할 수 없던 두얼을, 그리고 후반엔 두얼의 결심을 보고 놀라는 창얼을 잘 설명해준다. 카페의 성공을 위해 물질적인 가치를 물물교환이라는 의미에 두지못한 두얼과 공부보다 세계여행으로 세상을 배운 창얼의 확고한 물물교환설은 정면으로 대립한다. 비록 자신의 정성어린 커피와 케이크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론 사람들을 모으는데 성공한 창얼의 방식에 두얼도 차차 순응해간다. 여행보다는 공부로만 세상을 알아온 두얼은 비누를 가져온 남자로부터 35개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36번째 이야기를 앞으로 자신이 직접 세계로 나아가 본,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는 ' 36번째 이야기(第36個故事) '이다. 두얼이 카페를 운영하면서 깨달은 것, 그녀가 결국 교환한 물건들은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찾으러 떠나는 것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그래서 끝까지 우리들의 진정한 가치를 묻고, 그것을 찾을수 있기를 응원해준다. 그리하여 이번 여름방학이 오면, 나의 오래된 한 친구와 함께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공대생이 자소서에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 라고 적어내면 취업 면접 때 뭐라고 대답할거냐는 친구의 질문에, " 부장님 커피를 맛있게 타드리기 위해 땃습니다 ! " 라고 대답하겠다고 했다. 꿈은 꼭 실현되어야만 기쁜 것은 아니다. 그것을 향해 다가가는 한걸음 한걸음은 그 자체로 설렘과 행복이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의 두얼이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카페를 뒤로 하고 새로운 첫 출발을 내딛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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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얼 2012/05/31 01:33 # 답글

    카페 창업을 꿈으로 가진 사람은 참 많죠. 저도 그 중 하나고요ㅋ
    커피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가 가장 즐겁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언젠가는, 다시 커피를 만들고 싶어요.

    미래를 설계하는 차원에서 이 영화는 꼭 보아야겠네요 :D
  • 레비 2012/05/31 23:46 #

    자신만의 카페에 대한 꿈이 있으시다면 그 점만으로도 흥미롭게 볼수 있을 영화예요 :) 잔잔하고 메세지도 좀 진부하긴 하지만 명확해서 따듯한 영화랍니다 :D

  • 자주빛 하늘 2012/05/31 09:47 # 답글

    감상평이 너무 좋네요. ㅎ 바리스타 자격증 화이팅입니다!!
  • 레비 2012/05/31 23:46 #

    감사합니다 :) 헤헤. ㅎㅎ
  • Fabric 2012/05/31 10:00 # 답글

    이 영화 2년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봤었는데, 참 좋았어요 큰 부산극장에서 상영했는데 상영관 분위기도 따뜻했고 ㅎㅎ 영화제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내용보다는 이미지로 남아있는 영화이지만 아직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네요

    + 하지만 그때 만추를 예매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아직도 ㅠㅠ
  • 레비 2012/05/31 23:48 #

    아 그래요 :) 부산국제영화제에 왔었던 영화라는걸 포스팅하면서 알았네요 ㅎㅎ 전 아직 PIFF는 한번도 안가봤어요 ㅠ 올해는 꼭 가보려고 합니다 :D

    저는 아직 <만추>를 못봤는데 그때 당시에도 평이 굉장히 좋았더라구요 ㅎ 그런 영화들은 다시 영화관에서 볼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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