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 The Dreamers, I Sognatori, 2003 Flims












프랑스 여배우들이 내게 주는 이미지는 매력적이다 못해 위대한 느낌마저 준다. 소피 마르소부터 오드리 토투까지. 줄리엣 비노쉬에서 마리온 꼬띠아르까지, 그녀들은 국경이 무의미해진 헐리우드 안에서 동화되면서도 여전히 그 특유의 독특한 빛을 간직하고 발한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그만큼 포진해있는 프랑스 여배우들이지만 내게 가장 독특한 캐릭터로 관심이 가는 배우는 에바 그린일 것이다. 그녀는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해븐>에선 예루살렘의 공주였고, 영화 <황금나침반>과 미국드라마 <카멜롯>에선 각각 마녀와 팜므파탈로 등장했으며, 영화 <300>의 후속작으로 관심을 모으고있는 <300: 배틀 오브 아르테미시아>에서 여주인공인 페르시아의 여장군 아르테미시아 역으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그녀의 영화들을 따라가다보면 유독 시대극이나 공주의 이미지가 많은데, 그것은 그녀가 가진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늘 그렇게 도도하고 그 아름다운 파란 색 눈동자를 빛내며 얌전한 연기만이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최근 개봉작 <다크 섀도우>에서 팀 버튼이 그녀를 캐스팅했을때, 나는 늘 보고싶었던 에바 그린의 코믹연기를 볼 수 있게되서 기뻤다. 지금껏 언제나 진지하고 몽환적인 역할의 그녀였지만 코믹한 연기에도 아주 잘 어울릴것 같다고 생각해왔었고,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표정이 헬레나 본햄 카터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들을 할수 있게끔 바탕이 되어준 영화는 앞서 언급했던 그녀의 전작들이 아니라, 에바 그린의 화제의 데뷔작이었던 베르나도르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었다.











이 영화의 이탈리아어 원제는 I Sognatori,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제멋대로이기 일쑤인 외국제목의 한글번역들과는 달리 나는 이 "몽상가들"이라는 제목은 너무나 잘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Dream' 이라는 단어보다 좀 더 영화에 접근성이 쉬운 '몽상'이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로드 베르톨루치의 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미국인 파리 유학생 매튜 (마이클 피트) 는 파리12구에 현재까지 현존하는 가장 큰 프랑스 영화 산업의 상징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탐닉한다. 그곳에서 만난 쌍둥이 남매 테오(루이스 가렐)와 이사벨(에바 그린). 영화를 매개로 만난 남매는 매튜에게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동안 자신들의 집에 들어와 함께 살 것을 권유하고 매튜는 수락한다. 아름다운 외모의 쌍둥이 남매와 동거를 시작한 매튜는 그들의 영화적 취향을 공유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테오와 이사벨이 함께 자고 씻는 것을 목격할 뿐만아니라 그들이 외모만 닮아있는게 아님을 알아간다. 그들은 마치 한 부모의 태내에서 태어난 쌍둥이답게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서로를 놓지못하는 관계이다. 성적행위를 함에서도 아무 거부감이 없는 이 남매는 테오에게 게임을 빌미로 이사벨과 성관계를 요구하고 매튜는 이상함과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향한 감정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렇게 연인관계로 한발짝 나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튜는 이 둘이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 둘은 서로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며 자신들의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몽상'을 실현해 나갈 뿐이었다.












매튜도 처음부터 이들의 관계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 질주장면은, 장 뤽 고다르의 1964년 영화 <국외자들>에 바치는 오마쥬이다. 고다르의 영화속에서 9분 43초에 완주한 세명의 기록은 이 <몽상가들>의 세명에 의해 9분 28초로 깨진다. 이렇게 영화는 많은 고전들을 빌려와 이들의 '몽상'을 실현해 나간다. 영화속 장면들을 서로 맞춰보고 따라해보면서 차차 그들은 사회적 현안이나 문제로부터 외면하고 관심을 돌린다. 테오는 대학에서 친구들의 요구에도 고개를 돌리고, 그저 집안의 이사벨과 혁명의 겉멋만이 그의 관심사일 뿐이다. 이사벨은 '정상적인' 연인관계를 원하는 매튜의 요구에 처음으로 테오없이 '데이트'라는 것을 해보러 나서지만 결국 자신이 집착하는 것은 쌍둥이 오빠인 테오라는 것을 울며 표출해버린다. 그리고 서서히 이 두 남매에게 회의와 환멸을 느끼는 매튜. 그는 둘과 함께 목욕을 하고 게임과 장난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체모를 면도하려는 그들에게 소리친다. 처음으로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이 장면 이후로 매튜는 테오와 혁명의 의미를 놓고 의견충돌을 빚고, 이사벨로부턴 테오없는 둘만의 진정한 사랑을 얻기 힘들다는걸 알아간다. 하지만 이사벨에겐 그저 지금 이대로, 이 세명의 관계가 좋을 뿐이고 영원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는 이런 비현실적 몽상을 지속하기위해, 부모님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알자 가스로 동반자살을 시도하려 하기까지 한다. 우연히 그들의 창문을 깨고 날아든 시위대의 돌에 거리로 나선 셋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매튜가 남매에게 두번째로 폭발하는 장면인 그 순간, 혁명이라는 대의조차 진지한 고찰없이 충동적으로 합류해버리는 테오와 이사벨에게 실망한 매튜는 돌아선다. 집안에 틀어박혀 그 둘만의 '몽상'을 실현해오던 남매는 거리라는 '현실'에 나와서도 역시 똑바로 보는 눈을 잃었다. 결국 합의점을 찾지못한 매튜는 힘없이 시위대의 뒤쪽으로 사라지고 테오와 이사벨은 전경들을 향해 화염병을 들고 전방으로 나선다. 이렇게 그들은 갈라서고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에띠드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 이다. 테오와 이사벨이 몽상으로부터 눈을 뜨고 함께 어른이 되길 바랬지만 뜻을 이루지못했던 매튜 뒤로 흐르는 이 곡은, 그들의 '몽상'에 함께 했으나 끝내 발을 빼고 나온 매튜의 메세지가 아닐런지. 사납게 뛰어오는 전경들의 슬로우모션과 이 아름다운 샹송의 엔딩씬은 참 인상적이다.











영화는 과거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들과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기이한 행동들로 인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담고있는 사회적 배경, 즉 프랑스의 68혁명(5월 혁명)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게임에서 졌다고 해서 오빠에게 눈앞에서 자위행위를 할것을 요구하는 이사벨이나, 매튜로 하여금 여동생 이사벨의 첫경험의 대상이 되도록 한 뒤 돌아서서 계속 달걀을 깨뜨리는 테오 등 영화는 수많은 은유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의 메세지는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행복을 위해 현실을 거부하는 청춘들을 가져와, 환상과 몽상에 빠져 안주하고자하는 심리를 경고한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거실에 이사벨이 만든 텐트같은 은닉처는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절정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집안에서조차 한단계 더 아지트를 만들고 혼숙하면서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동떨어지고 외면하고자 한다. 이런 상상속에 빠져있는 남매를 현실로 데리고 나오려던 매튜의 시도는 그래서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남매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신 이웃블로거(?)분께서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땐, 그간 보아왔던 최고의 영화로 오랫동안 자신에게 남아 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본 <몽상가들>에선 과거에 맨 처음 보았던 그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내게 말했다. 이 영화를 조금 더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몽상을 갖고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에는 언제나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 행복은 대체적으로 현실보다 몽상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늘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힘든 하루가 예상되는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이대로 세상 모든것과 단절되어 하루종일 누워있고, 아니 잠든채 내일 다시 깨어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실제로 실천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은 '몽상'에서 머문다. 우리에겐 살아가야될 현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몽상을 실천할 수가 없다. 몽상은 그 순간 행복한 시간과 만족을 선사해줄지는 몰라도 현실로부터 자신을 동떨어지게 만든다. 테오와 이사벨은 그들의 몽상을 실천하고 누렸으므로 정녕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 생각없이 현실로, 거리로 떠밀려 나서게된 그 남매가 과연 진정 행복한 몽상가들이라고 마냥 부러워 할 순 없는 이유다. 참으로 슬프게도, 우리는 몽상가로 남아 살아갈 순 없다.

















+

































덧글

  • 1 2012/05/26 19:13 # 삭제 답글

    프랑스 여자들이 갈색머리가 많고 덜 느끼하게 생겼죠.
  • 레비 2012/05/27 12:10 #

    오 오늘도 이렇게 새로운 사실을 알아갑니다...
  • 루얼 2012/05/27 00:52 # 답글

    역시 에바 그린 예쁘네요. 부럽부럽...ㅎㅎㅎ

    영화는 보지 못 했지만, 테오와 이사벨이 그들만의 세계에 같힌 것이 현실의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자기 방어의 기제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혁명이 일어날 정도의 프랑스라면, 충분히 외면하고 싶을 만큼의 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 레비 2012/05/27 12:13 #

    에바그린 이쁘죠 -ㅠ- 츄릅...ㅋㅋ

    영화를 안보셨음에도 일종의 방어 기제 같다는 생각을 하시다니 일견 일리가 있네요 :) 일단 그 남매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것은 크게 나오진않지만 영화 초반부터 영화에 푹 빠져서 그 영화속 장면들이나 대사들을 현실에 가져와 그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장면들이 꽤 나와요. 그리고 매튜를 집에 초대한 첫날 식사중에 테오가 아버지와 가치관 차이로 다투는 장면에서도 어느정도 암시가 있었던것 같아요. 그들이 몽상속으로 들어가게된 이유같은 것들이요 :)
  • 2012/05/27 01: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5/27 12:13 #

    음 고딩때 봤으면 좀 그럴만도 했을듯.. ㅋㅋ 일단 옛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가 많아서 그 영화들을 하나도 모른채로 본 나도 그 점이 조금 아쉬웠어 ㅠ
  • spodery 2012/05/27 01:22 # 답글

    저도 인상적으로 본 영화에요~
    특히 아직도 바나나를 먹을 때면 영화 속에서 바나나 3등분하는 장면이 떠올라요ㅎㅎ
  • 레비 2012/05/27 12:14 #

    바나나 장면을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아요 :) 그런데 전 그거 보면서 손가락으로 자르다니 엄청 비위생적인데? -_- 라고 생각했었죠 ㅋㅋ 기발하긴 했죠 ㅎㅎ
  • runtyamy 2012/05/27 04:03 # 답글

    세 명 다 넋놓고 바라볼 분위기와 미모들.. 이 영화 보고 한참이나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ㅜ.ㅜ 개인적으로는 환상을 깨는 것 같아 다크 섀도우에 나오는게 못마땅했습니다만 ㅋㅋ 배역에 잘 어울리긴 하더군요 ㅋㅋ
  • 레비 2012/05/27 12:15 #

    전 에바그린이 미모에 어울리지않게 그런 엉뚱한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전부터 느껴왔거든요 ㅎㅎ 그런데 외모덕에 자꾸 얌전한 이미지만 캐스팅되는 것 같았는데 다크섀도우에서 새로운 모습이자 숨겨왔던 코믹 연기력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기대했어요 :)
  • 오엠지 2012/05/27 13:06 # 답글

    에바그린 하악하악
  • 레비 2012/05/28 18:56 #

    하악하악 -ㅠ-
  • 데빈 2012/05/27 16:21 # 답글

    몇번 본 영화인데도, 이글을 읽고서야 영화의 의미를 이해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2/05/28 18:57 #

    우와 제 글이 누군가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는건 영화리뷰 블로거로선 제일 듣고싶은 칭찬이죠 ! :)
    감사합니다 !! (__)
  • 훌리안카락스 2012/05/28 14:12 # 답글

    68혁명과 많이 관련된 영화죠 ㅋ 네이버에 에바그린관련된 커버스토리같은거 올라왔던데 그것도 한번봐요 완전 매력적인 여자에요 ㅋ
  • 레비 2012/05/28 18:58 #

    사실 68혁명에 대해선 영화를 보고나서야 알게되었어요 ㅎㅎ 서양근대사엔 무지해서 ..ㅠ
    다크섀도우 덕에 에바그린이 잠시나마 주목받은 것 같긴 하네요 ㅎㅎ 프랑스는 참 매력적인 여배우들이 많아요 :)
  • 2012/05/29 13: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5/30 00:56 #

    아 물론입니다. ㅋㅋ 비공개님 이야기지요 :) ㅋㅋ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비공개님이 해주신 말을 다시 떠올리고, 우리가 이미 너무 커서 더이상 이 영화가 로망이 아니게된게 아닐까 싶어서 저렇게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덧글을 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 어렸을땐 어렵고 뭔가 있어보였던 것이 커서 다시보면 별게 아니라서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있죠..ㅎㅎ

    요즘 소식이 뜸하셔서 바쁘신것같구나- 라고 짐작은 하고있었습니다 :) 늘 말씀드렸지만 언제나 현실세계가 블로그보다 우선되어야 하니까요. 저도 몇주뒤면 기말고사라 다시 포스팅 템포를 줄여나가야해요...ㅎㅎ

    아마 저희가 가장 최근에 만난게 다크섀도우 개봉전일거예요. :) 어린이날에 뵙지 않았던가요? ㅎ 그 영화 보고오셨군요 ! ㅋㅋ 전 오히려 에바그린의 그런 연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ㅋ 그리고 은근히 본인도 자신의 이미지에서 오는 고정관념을 깨는 그런 연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느 배우든, 바라던 연기를 하는것과 그렇지 않고 고생고생해서 연기한 것에는, 스크린에서 그 차이가 보여요 ㅎ 저도 프랑스 여배우들은 많이 좋아합니다. 제일 좋아하는건 마리온 꼬띠아르구요 :)
  • 2013/10/23 03: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0/27 21: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28 02: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28 12: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28 16: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28 20: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29 01:5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31 14: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2 00: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4 01: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4 10: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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