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2006 Flims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범죄심리학 용어는 이미 우리에게 꽤 널리 알려져있지만, 리마 증후군이라는 말은 의외로 잘 알려져있지 않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리마 증후군은 스톡홀름 증후군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인질들이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인질범들에게 심적 동화되는 현상이라면, 리마 증후군은 자신이 강자인 인질범들이 약자인 인질들에게 동정심에 기반한 동화가 일어나 그들을 향한 공격적 성향등이 완화되는 현상으로 96년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일본 대사관 인질사건을 그 명명 배경으로 갖고있다. 그들은 인질들을 127일간 억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왜 스톡홀름에서는 인질들이 자신들의 강자에게 동화되고, 리마에서는 인질범들이 자신들의 약자에게 동화된걸까. 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은행에 6일간 인질범들에 의해 잡혀있던 은행원들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음에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은 인질범들에게 그 비일상적인 상황하의 스트레스로 인해 고마움을 느껴버린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종종 분석된다. 그렇다면 리마 증후군의 인질범들은 왜 자신들보다 약자인 인질들에게 감정을 느끼고 동화되기 시작한걸까. 그것은 플로리아 한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영화, <타인의 삶>에서 동독의 비밀경찰 바즐러에게서도 반복된다.










오후 강의가 휴강되어 하릴없이 학교도서관 DVD실로 숨어들어간 나는 오랫만에 시대극이 보고싶은 마음에 검색PC앞에 서서 한참을 뒤적거렸다. 케이트 블란쳇과 케이트 윈슬렛의 이름이 몇번 눈에 지나간 뒤에도 고르지 못하고 있던 내 옆으로 우연히 한 여학우가 반납하기 위해 카운터로 가져가던 타이틀은 <타인의 삶>이었다. 몇번은 들어봤을 법하게 낯익은 단어들이지만 정작 제목 이외에는 아무것도 짐작하기 힘든 영화. 나는 해가 아직 떠있는 수요일 오후에 낯선 영화를 고르기에는 차라리 그렇게 우연에 맡기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있었다. 그래서 뒤쫓아간 카운터에서 나는 방금 반납된 그 영화를 다시 집어 보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때 마지막 대사와 그 마지막 씬에서, 좌우 옆자리에 다른 학우들도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신음같은 탄성을 뱉었다. 이런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보지못한게 아쉬운 까닭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때 박수를 쳐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분단독일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기억을 더듬어보니 접해본 적이 드물었다. 2003년작 <굿바이 레닌> 정도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의 독일은 우리나라와 더불어 유일한 분단 국가였던 만큼, 동서독의 갑작스러운 통일과 그 이후의 과정들은 우리가 중고등교육 과정에서도 교과서에서 여러번 마주한 스토리지만 정작 지구 반대편의 그 국가에 대한 이미지는 몇번의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여전히 멀다. 이 영화의 감독, 플로리아 한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다른 작품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2010년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라는 두 배우, 그리고 베니스라는 로케이션을 가지고도 나를 크게 실망시켰던 영화 <투어리스트>가 있었다. 그의 차기작이자 현재 다른 작품의 소식은 없어보였다. 영화는 심지어 주연 배우들마저 모두 낯설었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일종의 '이미지'를 씌운채 영화보기를 자주하는 내게 오히려 낯선 감독과 낯선 배우들은 이 영화를 그 스토리만에 몰입하기 더 쉽게 만들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 이후 포스팅에는 영화 스토리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특성상 미리 내용을 알고 보면 재미가 급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 <타인의 삶>은 1984년, 통일 6년전부터 이후 통일까지의 동독이 배경이 된다. 공산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동독의 특성상 주된 배경은 잿빛이고, 오브제들은 투박하며, 영상은 그래서 회색이 많다. 주인공의 표정을 담는 샷들과 인물들의 대화 말고는 딱히 급박한 장면 전환들이 없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국민들의 삶을 감시하고 조사하는 동독의 비밀경찰들 중 하나인 비즐러 (울리쉬 뮤흐)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 (세바스티안 코치) 과 그의 연극 출연 배우이자 연인인 크리스타 (마르티나 게덱) 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색출하고 감시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우수한 경찰인 비즐러는 과연 드라이만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삶에 낱낱이 접근한다. 그는 드라이만의 아파트에 자신의 감시 베이스를 차리고 집안의 모든 소리를 감청하며 하루하루 드라이만의 삶을 보고서로 써내려간다. 영화 초반부터, 경찰학교 학생들에게 답하는 대사들이나 혹은 드라이만의 이웃을 눈썹하나 깜빡이지않고 위협하는 장면들에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것 같은 이미지로, 비즐러는 관객들에게 그가 이 영화의 전형적인 악역이고 드라이만을 향하는 그의 감시에 반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크리스타에게 개인적 감정으로 접근하는 햄프 장관(토머스 디엠)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나서지 못하자 드라이만으로 하여금 햄프 장관의 추파를 직접 눈치챌 수 있게끔 돕는다. 특히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던 비즐러가 작은 의자에 밤샘 감시후 쓰러질듯 꾸벅꾸벅 졸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바로 이어지는 창녀와의 아무 애정 없는 섹스 후 공허함에 외로워하는듯한 그의 모습은 그도 결국 한 인간이다라는 걸 조금씩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드라이만의 집에서 그가 읽던 책을 꺼내와 읽어보기도 하는 모습은 자신의 삶도 없이, 드라이만을 감시하는데 하루하루를 쓰고있는 비즐러가 차차 그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그런 행동들은 정부 탓에 동료 예술가를 잃은 드라이만이 슬픔에 연주하는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를 감청하던 중에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 후로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동화됨은 점점 더 가속된다. 햄프와 드라이만 사이에서 갈등하던 크리스타에게, 우연히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비즐러는 대담하게 접근하여 예술을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신념을 잃지말라고 조언하기까지 한다. 그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대화를 매일같이 들으면서 그들의 행동들과 상황에 동정과 이해를 얻게된 것이다.









비즐러는 점점 변해간다. 서독에서 익명으로 출판할 기회를 얻은 드라이만이 동독의 자살률을 폭로할 글을 쓰고 서독으로 보내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그는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니다. 교대근무로 일하는 다른 한 사람마저 상부에 요청하여 작전에서 빼버림으로서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보호하고 보고서를 거짓으로 조작한다. 상관이자 친구인 구루비츠에게서 듣는 정부의 조치나 정책들도 이젠 그에게 더이상 옳지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상부는 결국 서독에 출판한 그 익명의 작가가 드라이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비즐러에게 증거를 확보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의심을 사면서까지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다. 허나 정부는 크리스타를 구금하고 증거물인 타자기에 대한 증언을 확보하지만 비즐러는 한번 더 드라이만을 구한다. 비록 크리스타는 구하지 못했지만. 나는 영화가 그 시점에 끝나더라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영화의 진정한 감동은 마지막에 있다. 2년 뒤, 비즐러는 그가 증거를 숨겼다고 믿는 상관에 의해 우편물 검열을 하는 직위로 좌천되고 남루한 삶을 살고 있고, 크리스타를 잃은 드라이만은 통일독일에서도 여전히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드라이만은 통일 이후에도 자신이 동독 시절 감시 당하고 있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감시 당했음에도 왜 자신은 살아남고 그들은 타자기를 찾지 못했을까를 궁금해한 그는 자신에 대한 정부의 보고서를 찾아보던 중 비즐러의 요원코드를 발견하고 맨 마지막 장에 그의 손에 의해 보고서에 묻은 붉은 먹 자국을 발견한다. 그의 그 타자기는 붉은 먹을 사용했었던 것이다. 비즐러를 직접 만나고자 했던 드라이만은 그의 눈앞에서 마음을 돌리고, 대신 2년 뒤 책을 출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 












이 영화 <타인의 삶>은, 한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비인간적이었어왔던 자신의 일(국민들을 감시하고 심문하는 일)을 하던 중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다. 자신이 감시하게끔 되어있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아무 감정이 없던 얼음같은 감시자는 자신이 평생 충성하고 실행해왔던 일에 회의를 느끼고 그 얼음은 조금씩 녹아간다. 그래서 영화의 색은 무겁고 도시는 회색이며 사람들은 웃지않지만, 그 어느 드라마 못지않은 따듯함이 있다. 삶을 나 자신으로 채워넣고 살아가는 것. 머리가 벗겨져가는 경찰학교에서의 비즐러는 그동안의 삶을 당과 국가에 충성했지만 그 세월에 자기 자신은 없었다. 그는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깝고, 그의 삶에 사랑이나 온정, 따듯함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마음에 감동적인 한쌍 연인의 삶이 들어올 여지가 더 많았던건 아닐런지. 자신이 감시를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맡았던 드라이만 덕에 비즐러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있던 조직, 국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마저 갖는다. 그는 좌천된 이후로 통일 후에도 계속 그때의 일을 하지만 과거 장교나 상관으로서 타인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을 했을때보다 그편이 더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던게 아닐까.


진짜 자신을 찾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속 비즐러를 보면서, 나는 그가 참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우연으로 시작된 계기이긴 했지만 그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뒤늦게나마, 그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방향 바꾸고 진정 인간다운 삶을 찾았다. 꼭 인간미의 많고 적음으로 그 삶의 가치를 가르는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이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타인'에 의해 보여지고, '타인'으로부터 들리고, '타인'에게 이끌려져 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많은 부분, 그리고 '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얼마나 온건히 '자기 만의 것'인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망설일 것 같다. 27년을 살아오면서, 동독정부에 충성했던 비즐러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 역시 많은 부분 남에게 의지하고 타의에 의해 행하고, 살고, 정해온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에 안타까워졌다. 물론 내가 현재 비즐러 같은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런 계기를 비록 '관음'으로 얻게 되었더라도 나는 그런 변화를 맛볼 수 있던 비즐러가 부럽다는 말이 하고 싶다. 남에게 비추어 나를 바꾸는 것. 그것은 꼭 비인간적인 감성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볼만한 값진 경험일 것이다.









주인공 비즐러를 연기한 울리쉬 뮤흐는 이 영화로 독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공개된 후 그 다음 해인 2007년, 울리쉬 뮤흐는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작이 된 이 영화에서 그는 안면근육의 변화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표정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눈빛만으로도 모든 감정을 표현한다. 경찰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할때의 그 기계같은 냉정함, 식당에서 당을 모욕하는 소위의 유머를 들으면서 그 웃음소리들 속에서도 큰 눈을 치켜뜨고 대사 하나 없이 있는 그는 표정만으로 말한다. 크리스타를 직접 만나 자신을 잃지말라고 '팬으로서' 설득할 때나, 후에 심문관으로서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같아보이지만 그의 눈은 간절해진다. 크리스타를 붙잡은 정부가 그녀를 구금하고 원치않게도 심문관으로 그녀와 재회한 비즐러는 '관객들을 생각하라'는 문장를 다시 써가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위협하고 있지만 그녀가 신념을 지키기를 대사와는 정반대인 표정으로 말한다. 이후 타자기를 숨겨 드라이만을 구했을 때도, 차에 치인 크리스타에게 제일 먼저 달려갔을 때에도, 심지어 친구로부터 좌천을 경고받는 그 순간에도 그의 표정은 같지만 관객들은 미묘한 슬픔과 긴장을 느낀다. 그래서 마지막 그 씬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가 '웃었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뛰어난 배우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표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짐 캐리의 연기력를 폄하하는건 아니다.) <브이 포 벤테타>의 휴고 위빙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단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채 가면을 쓰고 억양과 대사와 제스쳐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기술'을 선보여서 나를 감탄토록 했는데, 이 영화의 울리쉬 뮤흐에겐 가면 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얼굴 그 자체가 가면이었다. 정말 대단한 연기력에,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 조차 무표정으로 흘리는 그의 마지막 연기를 이런 기회로 볼 수 있게 된건 어느 수요일 오후의 행운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바로 DVD를 구입했다. 이런 영화는 오래 간직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덧글

  • 루얼 2012/05/24 23:53 # 답글

    이런 영화가 두고두고 보기에는 참 좋은 것 같아요.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는...ㅎ
  • 레비 2012/05/25 00:42 #

    이런 영화는 보기전엔 조금 모험이죠 ㅋㅋ 자칫하면 엄청 지루할수도 있거든요 :)
    영상이 화려한 영화나 소모성 오락영화는 보는 중은 즐겁지만 다 보고나면 할말이 없고,
    오히려 이런 영화는 보고있을땐 시각적 즐거움은 없어도 다 보고나면 오래남는다는 장점이 있죠 ㅋㅋ

    아참, 그 콘서트는 우리 학교 계절학기 중간고사가 6월 30일이래서 (하필 생일에 중간고사를..-_-) 불투명해졌어요 ㅠ_ㅠ...
  • 루얼 2012/05/25 01:06 #

    아, 계절학기가 있었군요.........ㅠㅠ
    그나저나 중간고사를 토요일에 보다니ㅠㅠ 잔인한 학교ㅠㅠ
  • 레비 2012/05/25 01:08 #

    계절 몇년만에 하는거라 잊고있었는데 월~토 더라구요? ㅠ
    월~금인줄알았는데... 자비없음..;
  • 엠보싱 2012/05/25 06:48 # 답글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엔딩크레딧 올라가는순간에 저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뚝하고 떨어지더라구요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에요 이영화 보고 독일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번역된 자막 말고 진짜 그 대사 그대로 감동을 느끼고 싶ㅇㅓ서 ㅋㅋㅋㅋ
  • 레비 2012/05/25 21:29 #

    신기하죠? 저도 맨 마지막장면이 그렇게나 다른 영화들속에서 보아오던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장면이 아닌데 정말 가슴 깊이 뭔가 쿡 찌르길래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어요. 또 그 대사를 마침과 동시에 더 시간을 두지않고 바로 프레즈프레임으로 영화를 끝낸 감독의 센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독일어까지 공부하고 싶으셨다니 ㅋㅋ 많이 감동받으셨나봐요 :) 반갑습니다. ㅎ
  • wonhee0118 2012/05/25 13:21 # 답글

    진짜 재미있게 본 작품이에요. 음악도 찾아듣고 말이죠. 창녀를 불러오는 장면에서 인간성을 점점 회복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참, 좋더군요. 감동에 휩싸이는게 아니라 찬찬히, 젖어드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ㅎㅎ
  • 레비 2012/05/25 21:30 #

    음악도 좋죠 :) 저도 저 소나타가 실존하는 곡인지 찾아봤는데 그냥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 작곡한 곡이더라구요 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좋습니다. 천천히 서서히 밀려드는 영화예요 :)
  • 계피 2012/05/26 07:41 # 답글

    오래전에 봐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좋았어요.
  • 레비 2012/05/26 16:46 #

    저도 잊을만하면 다시 보게될 영화 같아요 :) ㅎㅎ
  • smilejd 2013/01/20 19:55 # 답글

    글 잘보았어요. 주인공이 남우주연상을 탄 다음 해에 사망했다는 것이 너무 아쉽네요. 유작이라니.
    다른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를 보았으면 좋았을텐데요..
  • 레비 2013/01/21 00:28 #

    아 맞아요. 저도 영화를 보고나서 리뷰를 쓰다가 알았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영화안에서도 화려하지 않았고 말년도 쓸쓸한 모습이었는데.. 왠지 그게 그대로 유작이 되었다니, 이름조차 처음 들은 배우였지만 더이상 다른 영화에서 못본다니 아쉬웠어요.
  • 다미 2013/08/16 17:25 # 답글

    독일어 공부 차 자막없이 봐서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글 읽고 정리가 되었습니다.
    남에게 비추어 나를 바꾸는 것.
    개인적으로는 주변 타인들의 삶들이 선하다기보다 수동적으로 먹고사니즘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리마 증후군 같은 동화의 경험이 흔치 않네요. 모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살아내고 있는지들... 남에게 비친 내 자신도 남과 똑같고, 모두 획일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기에 답답합니다.
    영화를 본 후 선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 사회가 좀더 다양해지고 나를 비추었을 때 먹고사니즘과 안정이라는 단어가 눈가 주위에 거무튀튀하게 쌓여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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