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Chloe, 2009 Flims










중년의 부부와 젊고 예쁜 여자 하나. 거기에 지독하게 빠져든다라는 수식어구.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이 영화는 불륜을 다루거나 치정싸움, 그로인해 무너져내리는 한 가정의 모습이나 혹은 그런 고비를 겪고 이겨내는 감동의 부부애를 그린 그런 영화라고 섣불리 판단하게 만들기 쉽다. 일단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식어버린 남편에게 버림받음을 걱정하는 40~50대의 아내로 캐스팅하기에 줄리안 무어는 최적의 선택이었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중년의 남편. 줄리안 무어의 영화 속 대사처럼,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멋있어지고 하나 둘씩 보이는 백발이 매력을 더해주는 50대의 남편역으로 리암 니슨 역시 딱히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권태기가 찾아온 부부를 연기하는 이 50대의 두 배우는 영화 <테이큰>에 등장한 리암 니슨의 헌신적인 아버지와, 영화 <디 아워스>에서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겉으론 문제없는 가정안에서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는 우울한 아내 역할의 이미지 덕분에 내겐 이 영화 안에서의 그들의 배역에 시너지 효과를 내듯 몰입을 쉽게 해주었다. 하지만 2008년 영화 <맘마미아>의 주연으로 존재감을 알린 85년생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 후 1년뒤의 영화 <클로이>에서 두 노련한 배우들 틈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약간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내 걱정은 이 영화에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에 가려져 금새 기우가 되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여성 연출가 앤 폰테인 Anne Fontaine 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 <나탈리... Natalie...>가 원작임을 엔딩 크레딧에서 밝히고 있다. 그녀는 2009년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 <코코 샤넬>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영화 <나탈리...>는 찾아보니 이 영화와 거의 같은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몇몇 요소들에서 차이점 또한 보인다.


영화는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불륜과 가정파탄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사실 영화 중반부까지 나는 이 영화를 '그런 부류의' 영화로 보고 있었던것이 사실이다. 아내 캐서린(줄리안 무어)이 남편 데이빗(리암 니슨)의 바람기에 의심을 품고 우연히 만난 콜걸, 클로이(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남편 데이빗을 유혹해보고 시험해줄 것을 의뢰한다. 클로이는 시킨대로 데이빗을 유혹하고 캐서린에게 자주 경과를 보고하지만, 캐서린는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전해듣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클로이는 캐서린에게 매력을 느끼고 캐서린 또한 남편으로부터 받지못한 애정과 욕망을 클로이를 통해 분출하려한다. 두 여배우의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동성애씬이 지나고나서 영화는 후반부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적어도 나에게는) 반전을 가져온다.  











사실 내게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것은 피가 많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것 만큼 힘들다. 특히나 젊은 커플의 부정보다 중년부부의 불륜을 보는것은 보다 더 소름이 끼친다. 부부관계의 권태로움은, 결혼 생각은 먼나라의 일인것 같은 현재의 내게, 이것은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그런 경우를 접할때마다 마치 내 경우가 된 것 마냥 미래의 결혼생활에 회의와 걱정을 심하게 느껴왔던 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초반내내 조금 불편하게 보았던것은 사실이지만, 감독은 남편 데이빗의 상황을 영화 중심에 두진않은채, 두 여자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다.


영화의 제목은 '클로이'지만 영화의 시각은 '캐서린'으로부터 구성된다. 누가 과연 주인공이고 누구에게 감독의 메세지가 담겨있을까를 영화 후반까지 고민하면서 보던 나였고, 결국 영화를 다보고나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걸 멍하게 지켜보면서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벌고나서야 나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얼핏 캐서린이 주인공이 되어 그녀의 시각과 감정이 중심이 되어 풀어나가는듯 하다. 남편을 향한 그녀의 집착과 불안감, 그것이 중반부로 흘러가면서 클로이에 대한 대리적 욕망으로 바뀌어간다. 캐서린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녀가 어떤 분야의 의사인지를 판단케하는 장면은 맨 처음에 등장한다. 한 여성 환자로부터 받은 오르가즘에 대한 질문을 'nothing mysterious, nothing magic한 신체적 근육수축현상일 뿐' 이라고 대답해주는 것으로 그녀가 산부인과, 혹은 여성과 관련된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설명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섹스를 대하는 캐서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맨 처음에 등장하고 지나가버린 이 씬은 영화 중반까지 가서야 그녀가 그토록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외로워하는 것을 과연 남편 데이빗의 바람기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한다. 그녀의 대답으로 미루어보건데, 그녀부터가 성적으로 단편적이거나 제한적 혹은 억압된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부부생활을 해온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간간히 나오는 데이빗과의 애정을 보이는 장면은 상당히 의례적이고 그다지 깊지 않아보인다. 당연히 둘 사이의 진한 로맨틱한 장면은 영화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데이빗과 캐서린이 "우리가 언제부터 공항에 마중을 나오지 않게 되었지?" 를 가지고 하는 대화로 추측컨데 이 부부의 관계는 그 식어감이 뚜렷했을 것이다. 캐서린이 클로이로부터 식물원 안에서 남편과 첫 성적행위를 한 것을 전해듣고나서, 그날 밤 샤워부스 안에서 그 장면의 상상만으로 성적흥분을 느끼는 모습이 데이빗과 클로이의 장면과 겹쳐진다. 캐서린은 이미 그때부터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클로이를 통한 대리적 욕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섹스장면을 클로이로부터 전해듣고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클로이의 키스를 바로 거부하질 못한다. 캐서린은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 즉 남편과의 성행위를 자신이 고용한 여자가 대신하고 있음에 오히려 흥분을 느낄만큼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잃어버린 여자다. 자신도 그것이 비정상적인 것임을 알지만 남편의 외도에 이미 무너져버린 아내의 마음은 겉잡을 수가 없다. 결국 캐서린은 데이빗 대신, 그와 섹스를 한 클로이를 통해 성적욕망을 경험하려는, 선을 넘어버리고 말지만 클로이에겐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 되고만다.










영화는 캐서린의 시각만으로 채워져있진 않다. 클로이와 캐서린의 만남은 한 고급 식당의 화장실에서부터 였다. 남자를 욕하는 그녀에게 위로을 하고 휴지를 건네준 캐서린을 향한 클로이의 호감은 그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첫 만남때부터 그녀가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머리핀을 떨어진 물건인 척하고 캐서린에게 주려는데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 머리핀은 이후 결국 클로이의 부탁에 캐서린에게 건네지고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도 등장한다. 클로이는, 자신과의 성적행위로 더 가까워짐을 두려워하고 걱정하게 된 캐서린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제는 다시 나타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받고나서부터 분노와 함께 더 깊은 욕망을 느낀다. 영화 후반부 클로이는, 돈을 받고 사라져 달라고 하면 사라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면서 캐서린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 장면은 그녀를 다른 남자들 같이 콜걸이라고 생각하는 캐서린에게, 클로이는 그녀가 캐서린에게 기대했던 진정한 애정을 받질 못하자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애정과 사랑을 캐서린으로부터 얻어내려고 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했을뿐인 캐서린에게 클로이는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을것이다. 어쩌면 클로이는 캐서린을 따듯한 어머니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그녀로부터 모성애를 갈망한걸지도 모른다. 남자를 상대하고 성을 파는 클로이는 캐서린이 비결이 뭐냐고 물을 만큼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여자이지만 그녀 역시 캐서린과 같다. 지독히도 애정을 바란다는것. 그래서 영화 중반, 호텔방에서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본 두 여자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서있는 것과 다름아니다.











이 포스팅에서 영화의 반전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평소 스포일링에 신경쓰지 않고 불친절한 영화 리뷰 포스팅을 쓰곤했던 나지만, 굳이 반전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 영화를 두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다만 맨 마지막씬, 캐서린이 집안의 파티자리에서 아들을 한번 바라보고, 남편을 바라보고 지은 미소는 과연 모든것이 다 끝난 뒤의 흡족의 의미였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내 눈엔 사람들 속에 서있는 그 세 가족구성원이 왜 그리 멀고 어색해 보였을까. 나는 그 가정에 진정한 평화와 사랑이 찾아오진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돌아선 그녀의 머리엔 클로이로부터 받은 머리핀이 꼿혀있다. 캐서린이 클로이를 잊지않음을 의미하는 그 상징은 적어도 그 가정이 그녀가 꿈꾸던 상태로 되돌아가진 못했을지라도 캐서린은 자신의 삶에 들어왔던 클로이를 통해 변화했음을 알리고 있는듯 하다. 캐서린에게 클로이는 악몽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울 속 자신의 또 다른 모습과도 같은 클로이를 보며 그녀는 오직 두려움만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캐서린의 또 다른 모습이었고 그녀의 바람이었고 투영이기도 했으니까.












영화를 보기전에 시놉시스조차 읽지 않는 내 버릇은, 영화가 이렇게 예상했던것과 달랐을 때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불륜과 가정의 위기를 다룬 영화인줄로만 알았던 내게 <클로이>는 서로 다른 애정을 갈망하는 두 여성의 심리 드라마였다. 많이 허락해줘서 스릴러라고도 표현해도 좋겠다.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갈구한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한때 겪어봤던 짝사랑조차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사랑을 얻고픈 누군가가 있는데, 내가 그 앞에 나서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했을때의 절망감과 괴로움은 나를 대신하는 그 다른 이에게 질투를 느끼게만들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캐서린이 클로이에게 느꼈던 것처럼 그 감정은 극적으로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있고 싶다는 대리만족의 욕구로 변화할 수도 있음을 이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백번양보해도 슬픈 감정이다. 참으로 슬픈 마조히즘적 사랑이다. 















덧글

  • 2012/05/11 04: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5/11 17:47 #

    또 다른 포스터에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만 나온 버전도 있던데 그것도 예쁘더군요. 그런데 저 포스터가 더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는것같아서 저걸 사용했습니다 :) 반전..부분에선 전 순간 클로이가 데이빗이 아닌 다른 남자와 처음부터 그러고있던게 아닐까, 그래서 데이빗의 얼굴을 보고 놀란게 아닐까 (!!!!) 우와 -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그러면 장르가 코미디가 될것같더군요 (...) ㅋㅋ 지금껏 비공개님이 추천해주신 영화들 보면 화려한 볼거리없이도 감정의 흐름이 주가되는 영화들이 많은것같아요. :) 그것이 바로 취향이라는 거겠죠 !ㅎㅎ
  • 2012/05/12 04: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5/12 11:57 #

    칭찬 감사합니다 ! :D 저도 어제 새벽까지 영화 두편을 몰아보고 잤네요 ㅠㅋ 왕가위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화양연화>의 메타포를 볼 수 있다는 글을 읽고, <화양연화>에 대한 리뷰를 쓰려다가 그 후속작 격이라는 <2046>을 보고 써야지 했는데, 그 영화가 <화양연화>뿐만 아니라 <아비정전>의 내용으로부터까지 연결된다는 소리에 <아비정전>과 <2046>을 다 보고 잤네요 =_=;; 무슨 "왕가위 트릴로지"도 아니고....ㅋㅋ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 2012/05/13 01: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5/13 17:00 #

    줄리안 무어를 좋아하시는군요 ! :)
    뭔가 그늘지고 씁쓸한 여운이 남는 미소를 참 잘짓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ㅎㅎ
    저와 같은 의식의 흐름(?!)으로 이 영화를 보신것같은데요 :) 저도 처음엔 캐서린의 시각으로만 전개되나 싶었는데 다 보고 생각해보니 캐서린의 시각과 더불어 비록 시점은 다르지만 클로이의 감정과 교차되서 다른듯 하면서도 닮은 두 여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봤습니다 ㅎㅎ
    피드백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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