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라 런, Lola Rennt, 1998 Flims











2006년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있었다. 인기에 힘입어 2010년에 나카 리이사의 주연으로 영화로도 제작된 이 이야기는 1967년에 쓰여진 SF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나는 오늘 포스팅할 이 독일 영화가 지구 반대편에서 쓰여진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왔으리라고 함부로 단정짓기가 좀 어렵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가 '달리는' 모션으로 타임리프를 자유의지로 발동시키는것에 비해 이 롤라라는 이름의 독일 소녀에겐 시간을 되돌리는 행위자체는 중요한것이 아니다. 마코토의 이야기에 애절한 로맨스가 있다면 롤라의 남자친구 마니와 그녀 사이에 놓인것은 목숨을 건 10만 마르크와 20분의 시간, 그리고 주어진 세번의 기회뿐이다. 어째서 세번이나 반복될 수 있는지, 시간을 되돌리고, 그녀의 알수없는 고음 목소리의 근원은 무엇인지는 영화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않는다. 강한 비트의 테크노 음악에 맞추어 80분여간 롤라는 뛰고 또 뛸뿐이다. 당시 톰 튀크베어의 영화 <롤라 런>은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독일 영화 중 하나였고 이것이 데뷔작이 된 롤라 역의 프란카 포텐테는 이 영화 이후 헐리우드에도 진출, 2002년 <본 아이텐티티>에선 맷데이먼의 상대역으로 여주인공을 맡기도했다.  










우리는 탐험을 중단하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탐험의 끝은 처음으로 돌아가 그 시작을 알려줄 것이다. - T.S 엘리엇
게임의 끝은 곧 게임의 시작이다 - S. Herberger.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두 격언이 앞으로의 이 80여분짜리 짧은 영화가 한편의 게임과 같음을 암시한다. 마치 슈퍼마리오 게임을 할 때 목숨이 3개가 주어지는 것처럼 영화 속 롤라(프란카 포텐테)는 세번의 기회를 가지고 하나의 미션을 세번 다르게 경험한다. 시계속으로 들어가며 시작되는 인상적인 장면이 지나면 군중들의 실루엣 속에서 등장조연들이 살짝씩 보이며 철학적인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철학하면 떠오르는 나라인 독일 영화답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이유를 그 질문의 반복과 해답의 연속이 아닐까라면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롤라가 뛰는 오프닝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영화는 게임을 시작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미션을 던져준다. 남자친구 마니의 일이 자신의 사소한 우연과 그의 실수로 인해 꼬이고 그녀에겐 그녀의 애인의 목숨이 걸린 10만마르크를 구해야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제한시간은 20분. 공중전화부스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게했지만 20분이 지나 정오가 되면 초조한 그는 슈퍼마켓을 털러 들어가겠다고 한다. 롤라가 전화를 끊은 11시 40분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10만 마르크 구하기'는 그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의 그 20분이 세번 각각 다르게 반복된다.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롤라와 함께 뛴다. 음악은 영화에 속도감과 촉박함을 더한다. 롤라가 뛰는 동안 거리에서 스쳐지나가거나 마주치는 사람들은 (롤라가 지나치는 사람중에는 문제의 그 10만 마르크를 가져간 노숙자도 포함되어있다) 총 세번 반복되는 같은 상황들 속에서 그들의 앞으로의 미래와 평생의 모습이 짧은 플래쉬로 지나간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롤라가 반복하는 세번의 상황에서 매번 다른 삶을 살아가게된다. 작은 선택이나 변화가 미래 전체를 바꾼다는 영화의 메세지를 감독은 그곳에도 심어놓았다. 













롤라는 총 3번의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는 은행에 있는 아버지에게 달려갔지만 그의 불륜을 목격하게되고 되려 문전박대 당한다. 빈손으로 남자친구에게 달려가지만 이미 시간은 정오. 남자친구 마니는 권총 한자루로 슈퍼마켓을 털러 들어가지만 그녀는 저지하지못하고 급기야 범행에 동참한다. 하지만 곧 경찰에 포위당한채 롤라는 오발에 맞아 쓰러지고 마니의 손에서 '빨간색 주머니'에 담긴 돈은 공중으로 던져진다.

다시 분기점인 11시 40분으로 되돌아온 롤라는 두번째 기회를 갖는다. 그녀와 스쳐지나갔던 사람들도 첫번째에서 봤던것과는 또 다른 삶을 산다. 그녀가 계단에서 다치며 조금씩 늦게 출발한 까닭에 그녀와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바뀐것이다. 또 다시 은행에서 아버지와 만난 그녀는 이번엔 곱게 물러서지않는다 경비의 권총을 빼들고 아버지를 협박하여 10만 마르크를 은행으로부터 훔쳐 마니에게 달려간다. 이번엔 가까스로 슈퍼마켓을 털려는 마니를 제 시간에 도착해 저지하지만 첫번째 기회에서 사고를 내지않고 무사히 지나갔던 앰뷸런스에 이번엔 마니가 치어 죽는다. 그녀의 손에선 '초록색 주머니'에 담긴 10만 마르크는 맥없이 도로에 떨어진다.

그녀에게 주어진 세번째 기회에선 그녀는 계단에서 마주치는 불량배와 개의 방해를 이번만큼은 거부한다. 이 장면은 세번 모두 심슨 애니메이션 처럼 처리되었는데, 첫번째에선 사나운 개에 놀라고 두번째에선 불량배의 악의적인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지만 세번째의 그녀는 둘다 뛰어넘는다. 다시 또 다른 상황들이 그녀에게 펄쳐지고 그녀는 다시 20분간 10만마르크를 위해 뛰기 시작한다. 그 작은 시간차가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인 마이어의 차가 사고를 당하는 것을 막고, 그 돈을 가져간 노숙자가 자전거를 타게끔 만들었으며 그 모든 작은 요소들이 롤라와 마니의 운명을 바꾼다. 사고를 내지않은 마이어가 롤라의 아버지를 차로 데리러온 덕에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한다. 빈손인 롤라는 아무것도 하지못한채 그저 뛰기만을 반복하지만 카지노를 들어가 자신의 의지 하나로 10만 마르크를 따낸다. 첫번째는 마니의 의지대로, 두번째는 아버지의 의지에 힘을 빌어 돈을 얻어냈지만 세번째에선 마침내 그녀 자신의 의지를 따른다. 가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긴하지만 감독이 그녀에게 기회를 세번씩이나 줘가면서 말하고자 하고싶은것은 이런 각기다른 과정과 결과들속에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황금색 주머니'에 돈을 담아 마니를 찾아가지만 노숙자를 붙잡아 돈을 되돌려받은 마니는 이미 보스에게 10만 마르크를 건넨 이후. 세번이나 반복한 끝에 그녀는 앰뷸런스에 의한 사고도, 슈퍼마켓을 터는 일도 없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영화에는 앞서 언급한 중간중간 숨겨있는 요소들 외에도 수많은 '찾아볼 거리'를 심어놓았다. 우선 첫번째 기회에서 실패를 하고 두번째 시작 사이에는 붉은 색체의 화면에 롤라와 마니가 침대에 누워있는다. 두번째와 세번째 사이에도 같은 장면이 등장하지만 대화내용은 다르다. 전자에선 롤라가 마니에게 사랑을 묻고 확신을 요구한다. 롤라가 죽은 첫번째 상황이 끝나고 나오는 이 상황에선 그래도 헤어지기 싫다- 면서 다시 두번째 기회를 시작한다. 마니가 죽고난 다음 보이는 후자에선 반대로 마니가 롤라에게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할것인지를 묻는다. 이 장면에서 역시 돈봉투가 하늘을 날다 떨어지는 수화기와 겹쳐진다. 그렇게 서로 한번씩의 목숨을 다시 시작하고 세번째를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시간을 되돌린다는 장면이 굳이 있다면 이 중간에 나오는 두번의 배드씬이 아닌가 싶다. 이 외에도 왜 뛰는건 롤라(여성)이고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못하는것은 마니(남성)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롤라가 주인공이긴하지만 그녀만 뛰게 만들필요는 없지않았을까. 그 외에도 그녀의 초인적인 목소리 힘이나 세번 모두 바뀌는 아버지와 내연녀사이의 관계. 그리고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은행 경비원의 까메오같은 첨언들도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것을 담고있는 듯하다. 그는 영화 시작할때 축구공을 하늘로 차올려 게임을 시작시켰다. 심판이나 진행자 같은 역할일까.











작은 선택의 변화가 결과를 크게 바꾼다는건 영화 <나비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롤라런에서의 '변화'는 나비효과의 그것보다 훨신 세세하고 미세하다. 단지 집에서 몇초 더 빠르게, 혹은 늦게 나온것이 그녀가 뛰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미래까지 바꾸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녀와 마니에게 되돌아온다. 우리의 삶은 분명한 시간적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하고만 있기때문에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해 늘 궁금해한다. 그레서 이런 변화가 미래를 바꾸는 것, 그리고 그 바뀐 여러가지 미래를 비교해보는 영화들 흥미를 느낀다. 비슷한 주제들의 컨텐츠가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곳곳에 심어놓은 독특한 구성들과 영화적 기법들이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번보고 전부 이해하기 쉽게 만들지도 않은 까닭에 보면 볼수록 감독이 숨겨놓은 의도를 천천히 파악해가는 재미도 있는 영화다. 이것은 독일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왜 뛰는가, 그 자체가 영화 <롤라 런>이다.













































덧글

  • 2012/05/10 08: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5/10 10:50 #

    아 어릴때 보셨군요 ㅋㅋ 저도 이번에 처음본건 아니었는데 처음봤을땐 이해가 잘 안됬던것같아요. ㅎㅎ

  • 2014/05/29 23:1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4/05/29 23:18 #

    감사합니다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00
0
0

웹폰트 (나눔고딕)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