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The Terminal, 2004 Flims














뉴욕의 JFK 공항에 발을 내딛은 한 남자의 나라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으깨어진 감자칩처럼 부서져 버린 것은 정확히 말해서 그 남자의 조국이 아니라 그 국가의 국가로서의 기능이다. 이제 막 공항에 내린 남자의 미국 입국을 가능케하는 비자와 여권의 기능이 상실 되었고 남자는 고립되었다. 설정만 들으면 대단히 심각하다. 한 남자의 고독한 투쟁과 사투가 연상된다. 하지만 영화 <터미널>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톰 행크스 주연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 미 이프 유 캔>, 그리고 비록 영화는 아니지만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이은 이 두명의 조합은 여전히 유머를 잃지않고 그들의 일관된 영화 철학, 휴머니즘을 말하고 있다.

톰 행크스하면 <포레스트 검프>를 제일 먼저 떠올릴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 <터미널>은 톰 행크스의 2000년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뉴욕 버전이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무인도에 고립된 한 인간을 연기한 그는 4년만에 다시 <터미널>에서 뉴욕 JFK공항이라는 무인도 아닌 무인도에, 군중속에 홀로 내던져진 남자가 된다. 공항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타인간의 물리적 거리는 그 어느 뉴욕시내보다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들은 모두 멀리있다. 공항은 누구나 곧 이동하고 떠나가고 출발하는 장소이지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톰 행크스를 다시 한번 그 고립무원의 상황에 방치 해두진 않는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님은 이 영화가 외부 세계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이해력 결핍을 시사한다고 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러시아인의 염소약 에피소드나 굽타의 이야기 등은 타국에 대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고지식함이나 몰이해를 꼬집고 있는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정치적 제작 배경은 내게 잘 와닿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본 이 영화, <터미널>은 기다림에 대한 영화다.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미국 입국이 허가되는 그 날까지 마냥 기다린다. '달아날' 기회가 주어져도 그는 우직하게 기다린다. 아멜리아 워렌(캐서린 제타 존스)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유부남을 기다린다. 그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그녀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기다리는 쪽에 선다. 영화에는 수많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엔리케는 토레스의 마음을 먼 발치에서 기다리고, 국장 딕슨은 자신의 골칫덩어리인 빅터가 제 발로 걸어나가기를 '기다린다'. 빅터의 아버지는 마지막 하나의 색소폰 연주자의 사인을 기다리다 눈을 감았다. 그가 미국에 온 이유, 그 깡통캔의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에 와서야 관객들은 영화 처음부터 나왔어야 했지만 깜박 잊고있던 그 요소, 그가 왜 왔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간 그 색소폰주자 앞에서 사인을 바라는 순간, 그는 다시한번 '기다림'을 부탁받는다.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마침내 도착했지만 그 최종점에서조차 그는 한번 더 기다려야 하는 장면에선 정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살고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성취나 달성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 노력한 대가의 결과물일 수도 있으며, 당장 다음주 주말에 잡힌 오랜 친구들과의 술자리일 수도 있다. 아니 이미 삶 자체가 죽음을 기다리는 행위 아닌가.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향해가고 있기에 우리는 그 과정위에서 기다림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기다림의 시간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을 수도 있다. 10대 시절의 첫사랑을 7년간 짝사랑했던 한 미련한 친구가 자신의 베스트 영화로서 이 영화를 내게 추천했던 것이 나는 절대 우연이었다고 생각치않는다. 연락처도 없이 아멜리아를 기다리고 이벤트를 준비하는 빅터의 모습은 그런 기다림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내게 마냥 비난만 하게끔 하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지만,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사실 좀 동화적인 영화다. 실제는 영화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빅터와 아멜리아의 러브스토리는 다소 불필요하게까지 느껴진다. 영화의 갈등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영화에 양념 같은 역할만 하는걸로 끝나버린것 같아서 아쉽다. 실제로는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는 한 이란 남자의 이야기이다. 정치적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당해 망명지를 찾았으나 결국 찾지못하고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1988년부터 10년 넘게 눌러앉은 그의 이야기는 대충 들어봐도 영화만큼 따듯하거나 로맨틱하진 않을것 같다. 영화는 훨신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다. 스필버그와 영화사는 바로 그로부터 마치 저작권료를 지불하듯 30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그가 항상 말하던 그 휴머니즘을, 공항이라는 공간에 모인 다양한 인종과 처지의 사람들로 하여금 실화보다 더 따듯하게 표현해 놓았다.












공항은 그 누구도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 온 모두는 떠나야한다. 빅터가 아무리 공항을 집처럼 편하게 여기는듯 해 보여도 그는 끝까지 자신이 이방인임을 잊지않고 미련을 두지않는다. 오히려 미련을 두는 모습을 보였으면 영화는 굉장히 어색해졌을 것이다. 인도인 청소부 할아버지 굽타가 그에게 몸소 보여주면서까지 그를 공항 밖으로 나아가게 만들고싶었던 것은 빅터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않고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 이곳에 머무르고 기다려야만 했던 이유를 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을 나서 뉴욕시에 한발자국을 내딛었을때 빅터의 기분은 마냥 즐겁기만 했을까. 설혹 그렇지않았다 해도 그는 공항에서, 그 터미널에서 계속 머무를 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고, 그에겐 뉴욕에 온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기다림은 그 어떤 목적과 목표의 과정일 뿐이다. 기다림 그 자체에 익숙해져서 눌러앉아버리는 것을 정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달콤하고 설레이는 기다림이라도 언젠간 그것을 끝마쳐야 한다는 것을 늘 잊지 않고 살아야 함을 말해준 영화, <터미널> 이다.


























덧글

  • 2012/04/17 00: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4/17 20:06 #

    오 그런가요? ㅎㅎ 잘하셨어요 :) 제 거의 모든 영화 리뷰 포스팅에는 스포일링이 좀 많아요 ㅠ 그게 저도 처음엔 그런 누설없이 쓰려고도 해봤는데 그러니 또 영화를 제대로 말하기가 힘들어서 그냥 '영화를 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리뷰를 쓰기로했거든요 ㅋㅋ 그래서 아직 안보신분들이나 보려고 생각중이신 분들에겐 제 리뷰를 읽는것을 추천하지않아요 ㅠㅋ 그래서 최근 개봉작을 포함해서 2~3년내 개봉한 최신 영화들은 보고와도 리뷰를 쓰질않지요..ㅎㅎ 워낙 유명한 몇몇 영화들덕에 곧 이 룰도 깨질것같긴하지만 ㅎ 일부러 많이들 보셨을것같은 옛날 영화를 쓰는 이유예요 ! :)

    비공개님 여행기(!)도 읽어봤어요 :) 두 국가 모두 제가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 best 5안에 드는곳이라 특히 더 부러웠어요 ^_ㅠ 공항에 대한 그런 애착이 있으시다면 이 영화를 저보다 더 새롭게 느끼실 수 있을것같네요 :) 공부하시느라 바쁘시겠지만 가끔 쉬실때는 좋은 영화 만나보시길 바래요 :D
  • 미카엘 2012/04/17 01:56 # 답글

    레비는 무엇을 기다리나요?
  • 레비 2012/04/17 20:06 #

    철학적인 질문이군요 미카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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