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Swallowtail, 1996 Flims








이와이 슌지하면 영화 <러브레터 Love Letter>를 떠올릴 분들이 많다. 어떤분들은 <러브레터> 이후로 <하나와 앨리스 Hana & Alice>나 <4월 이야기 April Story> 같은 애절하고 잔잔하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들이 연상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SM스러운 요소가 다분한 서로를 구속하는 사랑을 다룬 영화, <언두 Undo>로 이와이 슌지를 처음 접한 내게는 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Swallowtail>가 오히려 더 그 다운 영화로 다가왔던것도 사실이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그래서 평가하기 조심스럽다. 나는 아직 이 감독의 정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몇년전에 보았던 <릴리슈슈의 모든것 All about Lily Chou Chou>은 내가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를 못하고있는 영화 중 하나이지만, 수능을 치고 학원 영어선생님께 선물받았던 책 <월리스의 인어>는 아주 감명깊게 읽혔고 몇년이 지난 요즘까지도 내 책장에서 가장 쉽게 손이 가는 자리에 놓여있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영화는 가상의 미래, 가상의 도시에서 시작한다. 일본이 세계 강대국이 되어 엔화가 곧 모든 부의 상징이 된 세계에서, 엔을 목적으로 골드러쉬를 해오는 이민자들의 도시, 엔타운이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런 이방인들을 멸시하며 되려 엔타운들이라고 부른다. 영화는 엔타운에 모여든 엔타운들의 이야기이다. 얼핏 신세경을 닮은 소녀, 아게하(이토 아유미)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녀를 키우고 돌봐준 창녀 그리코(차라)가 그녀의 가슴에 펜으로 애벌래를 그리고 훗날 아게하가 그 위치에 성장한 나비,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새기는 과정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겹쳐진다. 힘든 현실과 우울한 색채안에서도 웃음을 잃지않고 살아가는 차량정비소 '아오조라'의 캐릭터들은 엔타운의 주된 상징이다. 이와이 슌지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것, 바로 우울한 현실안에서의 꺼지지않는 희망을 품고있는 장소이고, 도시로 올라가서 성공한 그리코가 그녀의 근본을 (비록 타의로 인해) 재확인 받으러 돌아오는 장소이기도 하며, 아게하가 페이홍을 위해 다시 돈을 모으기위해 되돌아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체의 뱃속에서 발견한 카세트 테이프로 그들에게 천원짜리 엔화를 만원짜리 위조지폐로 부풀리는 법을 가르켜주고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은 도시로 가지않고 혼자 그곳에 남아있는 란(와타베 아츠로)이 마피아들의 침입을 받고도 되려 전멸시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은 모두 엔화를 모아 벗어나려고 애쓰던 장소이지만 결국 모두의 근원이자 고향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플레잉타임도 긴 편이지만 그보다 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한다. 캐릭터들이 많아서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고, 비중차이덕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 원작 소설이 있을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들이 가지는 문제점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제한된 시간안에 스크린에서 다 보여주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리고 뭔가 더 말할거리가 있는데 시간이 없어 다 말하지 못한 아쉬운 느낌이 남는다. 영화에는 살인, 마약, 폭력, 유혈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배경자체가 어둡고, 고바야시 타케시의 감각적인 음악들이 그 침침한 색감위를 흐른다.









그리코 역의 차라 CHARA는 (본명은 비록 아니지만) 실제 일본의 유명 가수이다. 얼마전에 리뷰포스팅을 했던 영화 <뱀에게 피어싱>의 주제가를 맡기도 한 그녀는 두편의 이와이 슌지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둘다 96년 작의 <피크닉 Picnic>이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이다. 그녀는 영화속에서 도시로 와 성공한 가수로 묘사되었는데 그녀가 부르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참 적절하게 어울린다. 이 '마이 웨이'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시체의 뱃속에서 나온, '아오조라'의 주인공들에게 도시에서의 성공을 꿈꾸게해주는 위조지폐의 열쇠가 된 그 테이프 역시 마이웨이를 녹음해둔것이었고, 그리코가 도시에서 페이홍과 연 라이브바에서 처음 부르는 노래도 이 곡이며, 경찰에게 취조를 받다 죽고만 페이홍이 감옥에서 죽기전날 밤 밤새 부르던 노래도 역시 이 곡이다. 마이웨이의 가사가 이들 엔타운들의 일상을, 즉 마지막으로 가는곳이 천국이라면 여기가 바로 천국인가- 라고 자신들의 현실을 자조하던 페이홍의 대사를 음악으로 돌려 말하고 있지않나 싶다. 다소 후회스럽고 시련이 있었다해도 삶의 끝에 마주했을때 돌이켜보고 그래도 당당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 엔타운들에게 녹아있는게 아닐까.


희망이 없는 곳에서도 사랑을 말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일확천금을 이루고 도시로 가 라이브 바를 열고 그리코를 인기가수로 데뷔시킨 그들은 비록 다시 몰락하지만 하나같이 절망하지않는다. 영화 중반에 나왔다가 궁금증만 증폭시키고 짤린 장면, 즉 페이홍이 감옥에서 생각외로 손쉽게 풀려나고 그 자유의 기쁨에 미친듯이 도로를 달리다가 어떤 장면을 보고 굳는 그 씬은 영화 마지막에 답을 가르켜준다. 바로 그리코의 그 '엔타운밴드'의 거대한 간판이 하늘로 올려지는 장면. 여기서도 역시 시나트라의 마이웨이가 흐른다. 라이브바의 해체 후 돈을 벌기위해 돌아온 아게하 역시 아무렇지 않게 마을 아이들을 조직적으로 모아서 위조지폐들을 모은다. 이런 범죄의 장면조차 아게하의 무표정과 어울려 그들, 엔타운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이 된다. 영화의 제목이 된 아게하 가슴에 새겨진 문신, 그 나비는 그래서 희망을 상징한다. 그녀가 가슴에 문신을 새기는 동안 회상하는 어린시절의 기억은 화장실에 갇혀서 날아가는 나비를 잡으려다 그만 유리창으로 나비의 날개를 자르고 말았던 그때와 연결된다. 하지만 탈출하려는 나비를 잡은것이 절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것같다.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나비는 그래서 그리코의 가슴에 있는 나비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아게하만의 나비가 되었다고 믿는다. 가슴에 나비를 새긴 두 여자에게 그것은 그들의 삶의 이유이자 평생 품고가는 끈이 된다.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이렇게 어두운 현실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희망을 섞어 스크린에 담는다. 잔인해보이는 마피아 두목 료랑키조차도 마지막 차안에서의 독백을 들어보면 그 역시 다른 엔타운들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앞으로 두번은 더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와이 슌지는 매번 이렇게 내게 숙제를 많이 남겨주는 감독이다. 하지만 일단 이 영화를 다시 보는것은 훗날로 미뤄두고, 그 대신 오늘 밤엔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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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설링 2012/04/02 00:19 # 답글

    레비님 계속 이러시면 곤란합니다...ㅠㅠ
    과제 때문에 시간 없는데 포스팅 올라오면 꼬박꼬박 영화도 챙겨보고 과제도 하느라 밤샘이 일상이네요..ㅋㅋ
  • 레비 2012/04/02 22:49 #

    ^^ 헤헤. 제 포스팅을 읽고 영화를 챙겨보신다니 대단히 기분좋고 기쁜데요 ! :D ㅎㅎ 그런데 제가 포스팅에 스포일링을 좀 많이 담아서 포스팅하는 편이라 ㅠ_- ...ㅋ 앞으로도 엄선해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 ㅎㅎ
  • zyo 2012/04/02 09:39 # 답글

    저도 몇 년전에 피크닉 보고 이와이 슌지 영화를 한창 찾아봤었지요
    간만에 스샷보니 반갑네요 ㅋㅋ 매력적인 차라 보이스 핥
    잼 필름즈에도 이와이슌지 단편 영화(아리타)가 있는데 보셨는지요. 히로스에 료코가 나옵니다 +_+
  • 레비 2012/04/02 22:50 #

    아 전 아직 피크닉은 못봤어요 ^^; 사실 차라 목소리가 매력적이긴했는데 가수였던것을 영화를 다 보고나서 알았답니다. 위에 첫문단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다 봤는데 말씀하신 단편영화는 아직 못봤네요 ㅎㅎ 히로스에 료코라니 +_+ 찾아봐야겠어요 ㅎㅎ
  •  R    2012/04/02 23:12 # 답글

    몇년전에 광화문에서 이와이슌지 특선으로 하루에 피크닉,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 언두, 릴리슈슈의 모든것을 풀패키지로 보는 날이 있어서 관람한적이 있어요.
    그때는 러브레터나 사월이야기를 안봐서 저한테는 이와이슌지하면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ㅎㅎ
  • 레비 2012/04/02 23:15 #

    우와 그런날이 있었던가요 ?! 완전 가보고싶네요 ㅠㅠ 전 어디서 왕가위 영화를 그렇게 하루종일 해주는 데가 있다고 들어서 올해 가보려고 찾는중인데 말이예요 ㅎㅎ 그런데 영화 선정자체가 꽤 일관성있네요 ㅎㅎ 좋은 시간이었을것 같습니다 :) 저는 아무래도 가장 처음 본 영화인 언두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ㅋ
  • 재상천하 2013/02/15 19:51 # 답글

    와우~ 좋은 평론이었습니다^^
    트랙백 써주신 거 감사드립니다.

    CHARA라는 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고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My Way'
    My Way가 '나의 길' 즉 운명을 뜻하잖아요. 혹은 선택을 의미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운명과 선택을 이 영화의 해석에 넣으려고 하니까 조금 무리가 가더라구요.
    레비 님의 글을 읽다보니까 My Way는 <희망> 이라는 요소도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운명 속에서도, 선택 속에서도 희망이 있기에 길을 가는거니까요. 크으~브라보~~

    레비님의 영화평론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 레비 2013/02/15 20:16 #

    감사합니다 :) 저도 재상천하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써주셔서 얼른 트랙백을 달았지요 ㅎ

    저도 CHARA가 가수였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알았어요 ㅎ 이와이 슌지는 <릴리슈슈의 모든것>에서도 드뷔시의 특정 곡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식으로 영화들에서 음악으로 은유하는 말하지 않았던 부분이 꼭 있는것 같아요 ㅎㅎ 반대로 그게 힌트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구요 ㅎㅎ

    우울한 현실(옌타운)에서도 사랑을 하고, 희망을 찾는 주인공들을 그린 것 같아요 :) 저도 매번 재상천하님의 글들 잘 읽고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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