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오브 워, Lord Of War, 2005 Flims







강의가 없는 시간에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청승맞은 복학생을 위한 딱 어울리는 자리는 도서관 뿐이다. 그런점에서 내게 다행스러운 것은 군대를 다녀오고나니 입학하고나서 보았던 조그마한 도서관이 사라지고 그 위에 거대한 새 도서관이 완공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재단이름까지 포함하고있는 거창한 이름의 그 도서관에는 영화관도 있고, 그와 같은 층에 dvd 감상실도 따로 있는데, 다음 강의까지 두시간이 남았다- 할때 아주 유용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화요일, 이번 학기 개강하고 처음으로 찾아갔던 그곳 프론트에서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볼 생각으로 주문한 내게, 직원분이 가져다준 타이틀은 <로브 오브 워>였다. 로맨스 영화가 순식간에 범죄스릴러 영화로 바뀌는 경험은 다소 흔치않았기에, 그리고 뭐 둘다 봤던건데 거기서 거기지- 하는 생각으로 별다른 클레임없이 씩 웃으며 건네받았다. 그래서 그 화요일 오후 나는 오랫만에 니콜라스 케이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영화는 반전이 있고, 이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보았을때를 회상해본다. 제목부터 <Lord of War>다. 웨슬리 스나입스의, 벌써 10년도 넘은 액션 영화 <Art of War>가 오버랩되는 제목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제목만으로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오는 전쟁영화로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마치 전쟁광처럼 보이게끔 하는 홍보문구까지 더해져 일각에서는 액션영화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깊게 국내 개봉 포스터를 살펴보면 전쟁영화와는 다르다는걸 알아차릴 수 있다. 탄피가 가득히 깔린 길바닥과 화염을 뒤로한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있는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 특유의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표정으로 서있다. 허나 그는 군복이 아닌 수트을, 탄띠가 아닌 넥타이를 갖춰입고있으며, 그의 손에는 라이플이 아닌 브리프케이스가 들려있다.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는 비지니스 룩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전쟁을 말하지만 주인공은 군인이 아닌걸까.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지니스. 그 비지니스 판의 The Lord.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니콜라스 케이지, 주인공 유리 오를로프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심상치않다. 영화 포스터가 그대로 오프닝신이 되어, 니콜라스케이지는 그 탄피들 위에 서서 짧은 두마디 대사를 관객들에게 날린다. 바로 버팔로 스프링필드 buffalo springfield 의 "For What It's Worth"가 경쾌하게 흐르는 가운데 소비에트의 군수공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총알 하나의 제작과정을 따라간다. 뒤이어 나무상자에 담긴 수많은 총알중 하나가 되어 항구에 선적되고, 아프리카로 수출된다. 이어 전투 바로 그 현장으로 옮겨져 바닥에 뿌려진 총알은 곧 누군가의 탄창으로 들어가고 이내 발사된다. 영화는 이 몇분의 오프닝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멋진 블랙코미디를 만든다.












인상적인 오프닝을 배경으로 영화는 내내 주인공 유리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철저히 그의 한 일대기를 따라간다. 우크라니아에서 사람이 총을 맞아 죽는것을 본 한 청년이 총기 거래에 흥미를 갖고, 한번 시작한 밀매에 마약같이 빠져든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 언제나 '큰 거 한탕'을 꿈꾸는 전형적인 남자다. 그의 그런 현실로부터의 탈출욕이 그를 무기상으로 몰아넣은 원동력이 되어준것이다. 자신의 동생을 동업자로 택한 유리는, 금새 세계를 누비며 총기를 팔아넘긴다. 그의 대사대로 Salvation Army 빼곤 이념이나 국경에 관계없이, 적도 아군도 없이, 전 세계로 무기를 조달하며 부를 쌓는다. 그에게 무기거래란 쇼핑과 같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물건을 제공하는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보인다. 꿈에 그리던 여인 에바 폰타인(브리짓 모나핸)까지 손에 넣은 그는 소련해체 후 그들의 무기까지 건들면서 늙은 경쟁자들마저 제친다. 인터폴 요원인 잭 발렌타인(에단 호크)이 바싹 뒤쫓지만 그는 번번히 법망을 피해간다. 아프리카 한가운데 불시착해서 인터폴이 오기전에 증거를 없애기위해 현지민들에게 무기를 나눠주는 장면과 비행기 해체씬은 인상적이다. 










영화는 유리의 도덕성을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 의심하게 만든다. 얼핏보면 무기밀매는 부를 위한 수단일뿐 그 이하도 아닌것처럼 착각된다. 잭이 유리에게 하는 말, 핵폭탄이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네가 팔고있는 AK-47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말도 그에겐 공허하다. 그대신 자신의 동생에게 유리는 말한다. 자신의 직업은 자동차나 담배파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죽는사람이 더 많다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총알 한발한발이 탄피 하나하나로 튀어오르는것을 뒤에서 보고 흐믓하게 웃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표정과 그때마다 동전소리가 들리는 슬로우 모션 씬은 그래서 더 해학적이다.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그가 판 총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만 그는 멈출 수 없다. 급기야 정체를 알아버린 아내가 울며 그만하다고 빌어도 그는 불법이 아니며 이것이 자신의 전부라고 말한다. 결국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그는 자신의 동생마저 눈앞에서 잃는다. 도덕성을 주장하던 동생에게 이것은 끝까지 비지니스라고 일관하던 유리는 그제서야 자신의 아프리카의 학살자들과 다를바 없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의 기대대로 이렇게 범법자인 유리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뉘우치는걸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총알 박힌 동생의 시체덕에 마침내 유리를 공항에서 잡은 잭과의 네번째 만남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이 유리의 입에서 읊어진다. 악당들이 자신의 단골인데, 그들 중에는 당신의 대통령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도 프리랜서가 필요하다면서 바로 자신같은 존재들이 필요악이라고 조용히 말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약소국들에게 무기를 거래하면서도 강대국의 이미지와 정당성을 모순시키지 않기위해 바로 자신같은 사람들이 언제나 대신 희생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거대한 무기 밀매자는 바로 미국을 포함한 국가들이지, 자신같은 개인 밀매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정부관계자로 보이는 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유유히 풀려난다. 결국 이 영화의 타겟이 개인 밀매상, 유리의 도덕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 결말은 감독의 마지막 자막에서 쐐기를 박는다.

첨언하자면, 베를린 무기 박람회 씬에서는 발퀘레의 기행이 절묘하게 흘러나온다. 영화에는 또 한번 클래식이 등장하는 씬이 있는데, 니콜라스 케이지가 구소련의 무기를 사가면서 자신의 주력 상품인 AK-47소총에 대해 강의를 하는 장면에서 '백조의 호수'가 흐른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는 그 총에 대한 일종의 경외가 담긴 그 잠깐의 숏과 차이코프스키의 이 경건한 음악과의 조화는 다시봐도 참 멋진 콜라보레이션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판매한 물건들이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은 과연 어떤것일까. 도덕성을 느끼고 책임감에 괴로워하는 것이 교과서적인 답변이겠지만 만약 내가 유리 오를로프와 같은 삶을 산다면 도덕적 불감증에 충분히 걸릴만하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이 평생사업으로 엄청난 부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꾸었다. 게다가 그는 법앞에 마저 당당하다. 그에겐 부모도 아내도 동생도 자신에게 향하는 어떠한 도덕적 훈계를 거부한다. 그런면에서 그는 분명, 마지막 잭의 대사처럼 '이미 지옥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영화 내내 악당이자 회개해야할 대상처럼 비추어지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처진 눈초리는 마지막에 가서야 불쌍한 연민의 감정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악당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헐리우드식 엔딩에 적응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래서 혼란스럽다. 동생이 죽고, 자신은 다이아몬드를 챙긴 거래에서조차 그는 자신이 판 총기로 인해 그날 많은 사람들이 죽을것을 알면서 그것을 막을 수 없다고 외면한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분명 '악'을 상징하는것 같지만 내내 불쌍하고 불안해보이는 '악'의 역할로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주 괜찮은 캐스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될 것이다. 주관적이고 확실한 신념과 허술한 제도탓에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 그의 사업과정에 혹한 관객이라면 오히려 그 역시 '악'이 아닌 '피해자'중에 하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유리는 뻔뻔해보이지만 끝까지 평화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면에서 그는 차라리 프로페셔널이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있고 비록 조국의 희생양이 될것을 알지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감독이 의도한 바는 그래서 이것이 아닐까. 영화내내 유리에게 향해있던 부도덕함과 비정함의 화살을 엔딩에서 이 모든것의 원인이 된 강대국들에게 급격하게 방향을 돌리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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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lakGear 2012/03/16 23:17 # 답글

    실화바탕 영화중에서 잘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묘하게 스릴있었고 묘하게 재밌었고... 묘하게 드라마틱하며 묘하게 비극적이었죠. 주인공에겐 희극이었지만.
  • 레비 2012/03/16 23:31 #

    네, 저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있다고 들었는데 찾아볼 생각을 이 리플 보기전까지 못했군요..ㅠㅎㅎ 흥행여부를 떠나서 완성도가 정말 의외로(!) 높았습니다. 만족스러운 영화였지요 ㅎㅎ 가끔 이렇게 큰 기대안하고 영화를 봤는데 기대이상일때,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것 같습니다 :) 사실 두번 볼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몇년만에 이렇게 다시 보고 포스팅했습니다.
    방문 감사드려요 :)
  • 2012/03/17 00: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3/17 04:08 #

    니콜라스 케이지 ㅠ 중학교 시절에 한창 좋아했었어요 :) 더록, 콘에어, 페이스오프, 스네이크 아이즈, 시티오브엔젤, 비상근무, 패밀리맨, 식스티세컨즈..... 중학교때 전부 보았던 그의 영화들이죠 ㅋㅋ 하지만 2000년을 넘어오면서부터 어느샌가 영화고르는 눈이 이상해진건지 별다른 흥행작이 눈에 안들어오더라구요 ㅠ 네셔널트레져나 고스트라이즈도 개인적으론 별로.. ㅜ 그래서 이 영화는 제게 그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차라리 기대를 갖게 했었답니다 ㅎ

    네 맞아요, 여기와서 보는.. 커플들이 많아요 :(
    게다가 좌우 유리칸막이이긴 하지만 실루엣들이 다 보여서.... ;ㅁ;

    네 :) 예매 부탁드려요 ㅎㅎ 그날 뵈요 그럼 :) 아 당일날 드리면 되는군요 (.. 제가 왜 생각을 못했죠;)
    그런데 그 시간에 수업 끝나시면 저녁식사 하실 수는 있으세요?;
    같이 먹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시간이 ㅠㅠㅋ 거기서 여기까지 오실려면 먼길일텐데 ;ㅁ;

    암튼 연락처는 확인했습니다 :)

  • ㅁㄴㅇㅁ 2012/07/31 01:28 # 삭제 답글

    성균관대 다니시나봐요
    저도 이영화 좋아합니다
  • 레비 2012/08/01 00:20 #

    아 넹 :) 도서관 소개를 너무 디테일하게 했나요 ㅎ

  • 정염 2014/08/14 15:28 # 삭제 답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본 뒤에 시대적 배경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유입되어 이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었어요. '영화주의자'라는 자기부연설명에 이끌려 즐겨찾기를 해논 뒤에 오늘 다시 와봤는데 영화에 대한 고찰과 평에 깊이가 있으셔서 자주 찾아와서 읽게될 것 같아요. 저도 얼마전에 '로드오브워'를 보았는데,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00년대 초나 10년이 지난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서 씁쓸했어요... 팔레스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스라엘의 뒤에 그들을 지지하고 전쟁을 묵인하는 BBC, CNN, UN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라리던 영화였어요. 글 잘봤어요 :)
  • 레비 2014/08/15 17:55 #

    안녕하세요 정염님 :)

    2년전에 쓴 글에 덧글 알람이 떠서 깜짝 놀랐네요. <로드 오브 워>는 제가 정말 좋아했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2000년 이후 영화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영화에요. (요즘 그의 행보가 갈수록 하락세라 슬퍼요.)
    최근 중동사태도 심상치않던데, 이런 영화를 보면 세상에서 이런 폭력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스케일과 배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렵기도해요. 씁쓸한 영화에요.

    영화주의자라는 자칭이 마음에 드셨다니 기쁘네요 ㅎㅎ 자주 와주실것 같다니 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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