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 Alfie, 2004 Flims







내가 가장 좋아하는 헐리우드 남자 배우는 다름아닌 주드로이다. 요즘 그의 탈모를 보고있노라면 가슴이 한구석이 안쓰럽지만, 그래도 어딘가 젠틀한 영국의 분위기를 품고도 단순히 잘생긴 얼굴을 앞세워 부족한 연기력을 덮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드로를 처음 봤을때부터 좋아했던건 아니다. 그를 처음본 영화가 <에너미 엣 더 게이트>였던가 아니면 <에이.아이> 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쩌면 <가타카>이었을 수도 있겠다. 영화<클로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탑5안에 들어가는 영화가 맞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드 로'는 다른 영화에 나온다. 그의 매력을 완벽하게 끌어낸 영화이자 거의 그의 '원맨쇼'로 이끌어가지만 절대 주연배우 하나에 의지하진 않는 영화, <알피 Alfie>다. (국내에선 <나를 책임져, 알피>라는 좀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2005년에 개봉했다.)

















나는 한때 이 영화에 빠져, 극중 주드로의 짧은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고다닌 적도 있었다. 내 얼굴이 주드로가 아니었다는걸 그 이후에 깨닿게된건 조금 안타깝지만. 나중에 독립을 하면 꼭 파란색 베스파를 타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이 영화에서 주드로는 캐릭터를 아주 잘잡은채, 혼자 일인극처럼 연기해 나간다. 하지만 결코 주드로만을 보기 위한 영화는 아니다. 나는 이 영화가 여성편력이 심한 남자들에게 경고하고 질책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단정짓는걸 싫어한다. 물론 바람둥이 알피의 주위에 다섯명의 여자들이 지나가고 교차된다. 하지만 단순한 로맨틱 코메디였라면 다섯 여자에게 문어발식 연애를 하는 남자의 말로나, 혹은 여자들간의 얽히고 설킨 치정극을 기대할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알피의 여성들은 서로 겹쳐지지않는다. 오직 주인공 알피와 일대일 관계만을 유지하며 영화는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기보다는 오직 한 남자를 중심으로만 하고있는 다섯 관계 하나하나를 마치 옴니버스처럼 따라간다.

나이많은 남편과의 불만족스러운 성생활로 쉽게 유혹에 성공했지만 만날생각이 없는, 도리. 아이가 딸려있고 외모가 떨어지지만, 그에게 따듯하고 편안한 안정감을 주는, 줄리. 가장 절친한 친구의 연인이지만 둘의 관계회복을 위한다는 자기합리화로 하룻밤을 함께한, 로넷. 거대한 화장품회사 사장이자 부유한 40대인, 리즈. 불안정한 정서를 가졌지만 굉장한 외모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 니키. 이렇게 나이도, 피부색도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얼핏 영화는 시작부터 바람둥이의 방탕한 생활을 보여주다 후반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겠지 - 라고 짐작하기 쉽게 만든다. 그 짐작은 절반은 맞다. 알피는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는것에 죄책감을 갖지않으면서도 결혼이란 단어에 혐오감을 느끼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연애를 거부하려하는, 여성편력이 심한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쁜남자에 끌리는 똑똑한 여자들이라는 이미지도 영화를 구성하는 한 축이다. 사실 이건 너무 오래된 주제이기도 해서 그냥 관객들에게 공감을 구하는 정도로만 사용된것같다. 알피의 매력이 무엇이든간에, 영화중반까지 알피는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어느 한 여자에게 마음을 오래 두고싶지않아하는 알피는 그런식으로 니키를 떠나보낸다. 이미 남자친구가 생겨버린 줄리에게 돌아가는 것도 실패. 뒤이어 가장 친한 친구인 로넷과 말론에게도 상처를 주었다는 악재가 겹치면서 그는 무너져내린다. 그가 철없는 사랑의 행위에 뒤따르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해줄수있는게 없을까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알피에게 로넷은 무심하게 뭘 해줄거냐고 묻는다. 절친한 흑인 친구 둘과의 재회를 위해 찾아갔지만, 그들의 집에 백인아기가 누워있음을 보았을때. 도망치듯 나오다 마주친 말론의 말대로, 하룻밤의 잘못된 생각으로 알피는 "아무도 상처주고 싶지 않았을뿐,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것."을 깨닿고 오열한다.

지나간 실수에 후회하지말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보라는 할아버지의 조언에 뒤늦었지만 리즈에게 꽃을 들고 찾아간 알피. 하지만 그녀의 침실에 있는건 다른 남자다. 대체 자신보다 어디가 더 좋은거냐며 추궁하던 그의 질문에, 자신보다 훨신 나이가 많은 여자에게서부터 돌아온 대답은 "He is younger than you." 였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자유로움을 내세워 젊음과 외모를 무기삼아 여러 여자들을 만나던 알피에게 그야말로 역습의 한방이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알피를 가만두지 않는다. 앞선 네명의 여자에게 버림받고 떠나보낸 알피가 홀로 남았을때, 영화 맨 처음에 등장했던 첫 여자인 도리가 나타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희망마저 없었다. 진지한 관계를 항상 거부했던 그가 진정 진실한 사랑을 찾아 애쓰던 그 순간, 결국 양치기 소년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드로의 쓸쓸한 체념섞인 독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는 그런 연애가 항상 자신이 우위에 서서 돈과 외모와 젊음과 자유를 무기로 여자들을 마음대로 만나고 즐길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혼자 남은 그는 사랑을 찾지 못하고 공허해한다.













수잔 서랜든을 비롯한 개성 다양한 여자배우들이 등장하는것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거기에 주드로의 일인연극같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대사들을 날리는 그를 100분동안 우리는 따라간다. 내가 어렸을때 보았던 미드, 앨리 맥빌Ally McBeal 에 등장햇던 제인 크라코스키도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주드로의 연인이 된, 리키 역의 시에나 밀러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알피>는 그녀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영화는 2005년, 62회 골든글로브에서 주제가상을 받는다. 전설적인 록그룹, 롤링스톤즈의 보컬이자 그래미수상자인 믹 재거(Mick Jagger)가 작업하여 내놓은 'Old Habits Die Hard'는 같은해, 방송영화비평가협회에서 선정하는 크리틱스초이스어워드(CCA)에서 역시 주제가 상을 받는다. 믹 재거는 작년 마룬5 Maroon5의 화제의 싱글, "Moves Like Jagger"에서 말하는 그 재거가 맞다.


로맨틱 코메디라고 주로 분류되지만 로멘틱 코메디라고 하기엔 마지막 '꼬마' 알피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한 영화다. 진실된 사랑을 찾기전에, 자신의 허세섞인 자신감이 공허한 껍데기뿐이 아닌지, 아니면 그것을 알면서도 그저 지금 상황을 유지하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자기 자신까지 속여가며 실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게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단순히 바람둥이 나쁜남자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만을 담고있는 영화는 아니다. 사랑이 결코 가벼운것이 아닌, 엄연히 책임과 무게가 뒤따르는 신중하고 진중해야할 행동임을 알고,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을 놓치고 후회하는 짓을 해서는 안될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건 딱 두가지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그리고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 라는 병원화장실에 만난 한 할아버지의 말은 그래서 이 영화를 대사 하나로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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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얼 2012/03/11 21:48 # 답글

    <나를 책임져, 알피> 라는 제목만 보고 전 당연히 '발랄한 내용의 가족영화'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혀 아니었군요;

    바람둥이는 당연히 혼나야 하지만 주드로가 바람둥이라면 용서할 지도 모르겠네여!ㅋㅋㅋ
  • 레비 2012/03/12 15:24 #

    주드로 인생의 필모그래피로 보면 그닥 수작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주드로의 매력이 유독 극대화된 작품같아요 ㅎㅎ 바람둥이 알피에게 하는 말로 , 한국판 제목도 사실 어색하진 않죠 ㅎㅎ 오히려 홍보목적으로 수입사도 그냥 <알피>라는 제목을 쓰기엔 무리가 있었을거예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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