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스카이, Vanilla Sky, 2001 Flims






일본계 미국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을 읽으면 다중우주론을 접할수있다. 소위 말하는 11차원속의 이 다중우주는 현대 과학이 이젠 공상과학소설이나 SF영화를 한걸음 더 뛰어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기술적인 이론을 제외하고 내가 흥미로웠던것은 우리 눈앞의 몇차원속에 서로 다른 우주가 중첩되어있다는 점이 아니라, 바로 매 순간 무한한 우주가 증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우리 우주에서 고정적이라고 알려진 현 물리상수의 다양한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한 학설이긴 하지만, 아직 여전히 하나의 이론으로서만 존재한다. 수백년간 진실로 여겨졌던 뉴턴우주도 혼란스러운 지금, 과학계에서 이론아닌걸 찾기란 오히려 더 힘들겠지만.











<오픈 유어 아이즈 open your eyes>라는 97년 한 스페인 영화가 있었다.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우리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그의 2002년작 <디 아더스>는 한번쯤 들어봤을 만하다. 러브멜로물인줄 알고 봤던 사람들에게 충격의 반전을 선사했던 영화<오픈 유어 아이즈>는 2001년 헐리우드판 리메이크로 다시 등장한다. <제리 맥과이어>로 유명한 캐머론 크로우가 메가폰을 잡고 같은 여주연배우에 다른 남주연배우를 데리고 제작된 이 영화, <바닐라 스카이>는 "open your eyes"라는 몽환적인 목소리로 시작한다. 한동안 내 아침알람벨 소리로 활용해놓기도 했던 목소리이기도 한데, 영화를 다 보고나면 알겠지만 이 대사는 꽤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반전을 포함하고 있고, 이하 포스팅은 스포일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벌 2세로 태어나 남부러울것 하나 없는 삶을 살고있는 젊은 데이빗 에임즈는 연애에 있어서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찾고싶던 탓에 연인 줄리를 결혼상대가 아닌 그저 애인으로만 바라본다. 카메론 디아즈가 연기한 이 금발의 줄리는 대칭점에 있는 페넬로페크루즈의 소피아와 대조되면서 영화내내 주인공 데이빗이 찾는 '현실의 사랑'과 '환상속의 이상형'을 잘 구분짓는다. 물론 데이빗에게 소피아가 그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상형은 아니다. 하지만 앙심을 품은 줄리로 인한 자동차 사고 이후 현실에선 다신 볼 수 없게된 소피아가 그에겐 꿈속의 여자로 남게되었고 이는 지각몽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연인으로 다가온다. 환상적인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데이빗의 꿈속의 균열은 소피아가 언뜻언뜻 줄리로 나타나게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견뎌내질 못하고 줄리를 죽이게되고 비록 자신이 설계한 꿈속이지만 그는 살인죄로 구속된다. 자신의 꿈속에서 살인죄로 수감되었지만 여전히 깨닿지 못하고 있는 그는 꿈속 내내 반복되던 TV광고를 통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영화는 후반 그 엄청한 반전을 향해 나아간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닐라스카이>에는 원작인 <오픈유어아이즈>와 같은 배우를 여주인공 소피아 역에 캐스팅했다. 바로 페넬로페 크루즈이다. 바닐라스카이 촬영 중에 톰크루즈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 둘은 결국 그가 니콜 키드먼과 이혼하게까지 만들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결혼은 하지 않았다. (혹자는 둘다 크루즈이기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톰과 페넬로페의 '크루즈'는 다르다.) 당시 조니뎁, 맷 데이먼, 니콜라스 케이지 등 유명 스타들과 스캔들을 뿌렸던 이 매력적인 스페인 여자는 영화에서도 그 큰 눈을 굴리며 특유의 달콤한 말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톰크루즈와의 연기도 굉장히 사랑스러워보였던 것은 어쩌면 이 당시 실제 연인간의 촬영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줄리역의 카메론 디아즈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페넬로페 크루즈가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했기 때문에 좀 가려져보이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중후반부의 몽환적이고 환상을 넘나드는듯한 분위기 속에서 카메론 디아즈의 미소는 소름끼쳐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에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까메오로 등장해서 톰크루즈에게 대사 한개를 하고 지나간다. 관심있으신분은 찾아보시길. 뜬금없이 왠 스필버그일까 싶었는데, 이 영화 개봉 바로 다음해인 2002년에 개봉한 그와 톰크루즈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관련이 있어보인다. 










영화는 - 매 1분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는 대사로 직구를 던진다. 순간의 판단이나 작은 행동이 훗날 미치는 영향을 <바닐라 스카이>는 영화 <나비효과>보다 더 부드럽게 전달하고 있다. 그 행복했던 순간에 옛 여자의 차에 탄것이 데이빗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시점부터 영화는 급류를 타기 시작하고, 데이빗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자신의 인생과 같았던 재력과 사랑을 모두 잃고 만다. 그렇게 술에 취해 길바닥에 놓여진 순간이 그가 꿈을 꾸기 시작하는 분기점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 순간부터 그는 지각몽의 힘을 빌려 다시 행복을 맛보려 하지만 결국 꿈은 자신의 입맛대로 맞춰진 자기만족일뿐, 작은 오류 덕분에 알게된 자각몽의 균열이 영원히 꿈속에 갇혀있을 뻔한 그에게 다시 꺼내어질 기회를 준다. 꿈을 깨고나면 기다리고있는 세상이 비록 쓴맛도 맛봐야하는 세상이지만, 단맛만 바라보고 자신의 비현실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도 있다는 유혹을 자신의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것으로 버릴 수 있게된다.










매순간 인생은 선택의 기로에서 다르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은 흡사 다중우주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 우주적 스케일이 아닌, 우리 개개인의 인생으로 본다면 다중우주라기보다 다중인생이라고 붙이는 편이 낫겠다. 내가 지금 포스팅을 올리는 이 시간에 다른것을 할 수도 있는 선택지가 있다. 책을 볼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고, 간식을 먹을 수도 있고. 하지만 다른 선택지들을 다 버리고 나는 블로깅을 하고 포스팅을 하는 선택지를 택했다. 이렇듯 시간은 우리의 인생에서 한가지 방향성만을 가지고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선택지를 중복선택할 수도, 다시 수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인생은 얼핏 수많은 가능성이 아닌, 하나의 길 위에서 서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처럼, 우리는 한번에 한가지 길 위에 서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길 위에 서있는 우리 자신을 경험하기 힘들다. 우리는 매순간 가장 최선을 선택하기를 요구받고 또 그러기를 꿈꾸지만 늘 어려움을 느낀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다. 순간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잘못되기도 하고. 그런 결정들이 집합을 이루면서 연애의 시간을 채워나간다. 한순간의 행동, 한마디의 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판단.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큰 반전이나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환점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것들, 부끄러운 기억들. 혹은 지금 생각해봐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포함된다. 굳이 연애에 한정지을 필요도 없이 어쩌면 우리네 삶은 매순간 선택들의 연결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같다. 다만 그 선택의 가치를, 선택의 경중을 미리 알기란 쉽지않고 그 선택이 가져올 책임의 무게를 앞서 짐작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미래를 볼 수 없기에 그것은 차라리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순간 선택지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반대로 그 속에서 꿈을 볼 수 있고, 희망을 걸 수 있는것이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데이빗이 행복에 겨운 그 시간속에서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많은것을 잃었듯이, 반대로 하나의 현명한 선택은 모든것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매 1분마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제법 오래 마음속에 남아있을 이 대사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영화, 충격적인 반전과 더불어 모네의 "바닐라 스카이" 밑에서의 건물옥상 엔딩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 <바닐라 스카이>였다.





















+ 오랫만에 밸리에 랭크됬네요 :)






덧글

  • unHDguy 2012/02/23 18:28 # 답글

    얼마전에 다시봤는데...원작을 구해서 본김에...바닐라 스카이도 봤어요.....
    원작은 공포....로 분류가 되어있더군요....

    페넬로페크루즈는 두 영화 모두 사랑스럽지만,
    원작은 정말..............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워낙 생소한....나라의 영화라...
  • 레비 2012/02/23 22:44 #

    저도 사실 <오픈유어아이즈>는 몰입이 힘들었습니다. 공포로 분류되어있다니 신기하네요 ㅎㅎ 리메이크작인 <바닐라스카이>가 훨신 더 빠르게 다가왔구요. 페넬로페 크루즈 보는 낙으로 본다면 모를까 그냥 <바닐라스카이>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싶어요. 방문감사합니다 ! :D
  • 999 2012/02/23 23:17 # 답글

    페넬로페크루즈 정말 매력적인 배우예요. 특히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 속에서 그녀는 정말! 귀향에서 노래부르는 모습하며, 어머니이자 딸을 연기하는것도 멋지고, 브로큰임브레스에서 불완전한사랑을 하는 매력적인 영화배우도 그렇구요. 바닐라스카이 고등학교 다닐때 정말 감명받아서 봤었는데 너무 좋네요:)
  • 레비 2012/02/24 02:15 #

    맞아요 ㅎ 저도 페넬로페 크루즈 영화 몇편보고 완전 빠졌습니다. 언급하신 영화들은 못봤는데 기회닿으면 봐야겠네요 :) 저도 이 영화 고등학교다닐때 봤었는데 나중에 이렇게 다시보니 참 좋아요. 요즘은 최신 개봉작들보다 옛날영화 찾아서 이렇게 정리해두는 재미로 블로깅합니다 :D 방문 감사해요!
  • 999 2012/02/24 02:19 #

    관심있으시면 알모도바르감독 영화들 보시면 괜찮으실거같아요^^!
  • 레비 2012/02/24 02:27 #

    지금 검색해보고 있었는데 마침 추천을 달아주셨네요 :) 최근에 국내개봉했던 <내가 사는 피부>의 감독이군요! <브로큰 임브레스>꼭 보려고합니다 :D 좋은 추천감사합니다 !
  • 999 2012/02/24 02:32 #

    네! 제 개인적인 생각엔 내어머니의 모든것과 귀향이 제일좋았던것같아요. 인간의 욕망을 굉장히 잘풀어내는 감독인것같아요, 그의 작품 속 색감들도 너무좋구요. 무튼 좋은글도 잘봤습니당:)
  • 2012/02/24 13: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2/24 14:29 #

    ㅎㅎ 저도 그 장면에서 톰크루즈라면 미쳐버릴것같더군요. 그 순간을 참 잘 연기한것같기도하고... 혼란과 혼란이 더해지는 괴기한 장면들의 연속이라 그 부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저도 그 대사 기억해요 :) 페넬로페 크루즈가 워낙 예쁘게 나온 영화이기도 한데 클럽안에서의 모습은 더 예쁘더군요.. *-_-* 핫핫.

    전 아직 그 영화 보지 못했습니다. 추천은 몇번 받아본적있는데 봐야될 영화들이 쌓이고 쌓여서 못봤네요 ㅠ 요즘 거의 이삼일에 한편씩 보고있는데도 말이죠..ㅎㅎ 개강전까지 더 보고싶은데 꼭 봐야겠네요. 공포영화나 그런걸 못보다보니 슬픈 영화 좋아합니다 :) ㅎㅎ
  • 2012/02/24 14: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2/24 17:34 #

    아아 그게 그 해리포터가 애아빠로 나온다는 영화군요 :) 시사회라니 ㅠ 저도 그런데 가보고싶은데 여지껏 한번도 기회가 없었네요 ㅠㅋㅋ 그래도 전 공포영화라면 사양합니다 :) 어차피 영화는 제가 비용을 지불하고 컨텐츠를 사는건데, 굳이 '공포감'을 돈주고 사고 싶진 않아서요 ㅎㅎ
  • 사카린 2012/02/25 00:18 #

    그래도 씨네21의 김도훈 기자님이 상영 끝나고 작은 간담회같은걸 하셔가지구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그래서 후반엔 마음이 좀 풀어졌던... ㅎㅎㅎㅎ
  • 레비 2012/02/25 01:56 #

    오 시사회엔 그런 간담회같은것도 있나보군요. 흥미롭네요. ㅎㅎ
    전 올해 4월에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오려고하는데 거기서도 사실 그런 기회들을 기대하면서 갑니다 ㅎㅎ
  • 아쌈 2012/04/22 00:36 # 삭제 답글

    정말 오래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결국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고서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후기 찾아보다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영화의 평이나 느낌을 작성하시는데, 좋은 재주를 가지고 계시네요. ^^
    이해에 도움도 많이 되었고, 좋은 글 읽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레비 2012/04/22 17:08 #

    과찬이세요 :) ㅎㅎ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저도 처음보고는 많이 헷갈리는 부분이 있던 영화였더랬죠 ㅎㅎ
  • 누누슴 2012/06/21 23:19 # 삭제 답글

    오픈유어랑 바닐라랑 다 봤지만
    저한텐 뭔가 어려운 영화 였던거 같아요
    굳이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는 뭘 말하려는 거지를 찾지는 않지만
    이런 영화는 대게 뭔가를 주는거 같지만 내가 받지 못하는걸까 하는 ....저만의 생각이죠 뭐 하하하
    아니면 쉬운데 괜히 혼자 어렵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요 ^^^;;
  • 레비 2012/06/22 15:32 #

    오픈유어아이즈가 전 좀 더 어려웠습니다 ㅠ 영화는 있는그대로 즐기는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죠!! 외려 애써 의미를 찾으려하면 더 많이 놓치는 경우가 있는것 같아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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