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2007 Flims









사랑을 잃은 순진무구한 여자가 여행을 떠난다. 왕가위 감독이 아니랄까봐 떠나는 그 지점에 남자가 남아있는다. 여행길에 두명의 여자를 만나고 그들의 길에 함께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이제는 팔린 남자친구의 집앞에서 미소짓기까지의 영화. 누군가 내게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요약하라면 난 이렇게 하고싶다. 이 영화는 로맨틱코메디도 아니오, 드라마도 아닌, 성장로드무비다. 나에겐 제법 의미가 있는 영화다. 08년 봄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서 보게 된 영화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와 가장 좋아하는 여자 배우 둘을 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단 3개의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08년 한해동안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이기도 했고, 뒤늦게 왕가위를 처음 접하게된 영화이기도 하다.










왕가위만의 카메라 워크는 이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종종 보이지만 중경삼림에서처럼 특별함을 붙잡고있기보단 호흡을 조절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그편이 영화를 너무 묽게 만들지 않은것 같아서 다행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그 색감이나 농도가 진하다. 그렇다고 그 안의 멜로가 농밀하다거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있다는 뜻이 아니다. 노라존스와 나탈리 포트만이 함께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씬이나 간간히 나오는 주간 서빙 장면를 제외하고는 영화는 내내 밤이 시간적 배경이 된다. 주드로의 카페나 레이첼와이즈가 위스키를 마시고 취해버리는 그 바에서나, 또한 배경이 되는 가게들이나 거리의 풍경들이 모두 진한 색을 띈다. 처음 시작부터 나오는 오프닝송 노라 존스의 "The Story"부터 캣파워의 "The Greatest" 까지 영화는 O.S.T 마저 그루브한 재즈들로 잘 채워져있다. 그래, 영화는 아주 진한 블루베리 색을 갖는다. 










헐리우드의 두 탑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레이첼 와이즈가 캐스팅에 서지만 여주인공은 노라존스다. 인도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 이 싱어송라이터는 보는 내내 특유의 동양적 분위기를 풍기며 영화색과 아주 잘 어울린다. 유난히 확 늙어보이는 주드로는 조금 안타깝지만, 동네 카페의 젊은 주인으로 의외로 잘 어울린다. 뮤지션의 연기에 큰 기대를 거는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라존스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을 무리 없이 해낸것 같다. 오히려 다른 조연들보다 더 어울리는 자리에 서서 말이다. 제법 괜찮은 캐스팅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영화다.







영화는 실연을 당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와 헤어진 연인들의 열쇠를 맡아 보관해두는 제레미(주드 로)의 카페로 시작한다. 실연앞에 강하게 맞서보려하지만 결국 다른 여자와 함께하는 전 연인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카페에서 확인하고 눈물흘리는 여자다. 제레미 역시 카티야(캣 파워 : "The Greatest" 로 O.S.T에 참여) 를 기다리며 그녀와의 열쇠를 간직하고 있는 남자이다. 엘리자베스는 다른 메뉴들이 모두 팔리고도 혼자 남은 블루베리파이를 맛본 뒤 여행을 떠난다. 여행길에 두명의 여자를 만나고, 두가지의 사랑을 보게된다. 왕가위 식 액자구성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뉴욕의 카페에서 제레미와의 재회.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이야기중 첫번째인 어니 코퍼랜드 경관(데이빗 스트레던)과 수 린(레이첼 와이즈)의 이야기는 자신의 젊은날의 불타오름을 잃고 떠난 여자를 혼자 떠나보내지 못하는 남자와 그를 잊기위해 몸부림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젊고 어린 여자는 늙은 남자와 고리타분한 동네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결국 그의 자살앞에 현실이 여전히 자신을 붙잡고 있음을 슬퍼한다. 그가 금방 잊혀지는것을 막기위해 그의 외상값 영수증을 바에 걸어달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마을을 떠나지만 그녀에게 그건 과연 새출발일 수 있을까.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두번째 여자인 레슬리(나탈리 포트만) 역시 벗어나고 싶은 남자가 있는 여자다. 그 남자는 남편이 아닌 아버지이지만 여기서 다시한번 아버지는 그녀의 '현실'이 된다. 자신을 키워주고 지원해준 남자지만 끝없이 벗어나고 싶어했던 그녀,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다가 애쓰다 결국 그의 죽음앞에 마주해서야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다.









두 이야기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현실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외면하지 못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하게 되어서야 한단계 나아가고 성장할 수 있게된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국내 개봉당시 써먹었던 홍보영상이나 문구들과는 다르게도, 옴니버스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는걸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으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려하지만 결국 자신을 속이지말고 그것을 인정하고 바라봐야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이 영화를 폄하한다. 왕가위 식의 러브스토리나 영상미도 없으며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달달함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자칫 실패한 영화로 몰아세워왔다. 세간에선 실험적인 영화라고도 했고,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왕가위는 한가지만을 이야기해오지 않았던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다. 굳이 두 남녀가 나와 키스하고 몸을 섞지않아도 이 영화는 충분히 사랑을 말하고 있다. 실연과 공허함 뒤에 오는 성장과 나아감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가 아닐까. 사랑을 굳이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로 채울 필요는 없지않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지만 당신네들에게 있어서 그 사랑들은 과연 옴니버스 영화처럼 각기 다른 에피소드인가. 결코 아닐것이다. 과거의 사랑이 훗날의 사랑에 영향을 끼칠뿐만 아니라, 이미 과거의 연애를 끝내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게 된다. 성장하든 성숙해지든, 혹은 퇴보하거나 정체되든지간에, 어떠한 식으로도 사랑을 겪고난 사람은 변한다. 그렇기때문에 어제 사랑을 했던 내가 내일 사랑을 할 그 사람이 아니게되는것이다. 이 영화는 제리미의 카페에 고여있는 열쇠들, 바로 그 정체를 말하고 있지않다. 제레미가 기다리던 연인, 카티야를 만나고 난뒤 그 열쇠들 모두 버린 행동에서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분명해진다.









사실 깊이 생각하면서 보지않고 등장하는 면면만 살펴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다. 노라존스의 녹색 니트모자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카페 주인이 잘 어울리는 주드로의 직접말은 담배나, 레이첼 와이즈가 죽은 전남편을 위해 혼자 건배하고 쓰러지는 위스키바 등 영화는 화려한 카메라 워크나 전개보다는 정지되어있는 듯한 화보같은 장면들, 소설같은 대사들이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기에 개인적으로도 손꼽는 훌륭한 사운드트랙들이 어우러져 맛있는 한편의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어 내놓는다. 국내 정서에 맞지않는 영화였다든지, 혹은 영화팬들의 기대치나 방향이 달랐던 영화였기 때문이었는지간에, 흥행이나 평가면에서 과소평가되는것이 안타까운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였다.































덧글

  • ongsoo 2012/02/07 22:48 # 답글

    리뷰만 봐도 마음 아픈 영화.
  • 레비 2012/02/07 23:09 #

    하핫; 마음 아픈 리뷰는 아니었는데 ㅎㅎ 확실히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기대하고 본 분들에겐 마음이 아팠을지도요 :) 방문감사합니다.
  • 꿀자몽 2012/02/07 23:44 # 답글

    아, 저도 이 영화 정말 좋아해요.
    더불어 노라존스가 부른 노래도..ㅎㅎ 생각난 김에 다시 봐야겠어요, 이 영화.
  • 레비 2012/02/07 23:49 #

    반갑습니다 :) 이 영화, 흥행에 큰 성공은 없었지만 그래도 주위에 은근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것같아요 :) 즐거운 감상 되시길 :D
  • 이루 2012/02/08 06:02 # 답글

    앗,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메인에 떠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들렀다 갑니다 ㅎㅎ

    저도 이 영화 개봉했을 당시에 그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밤 시간을 택해서 영화관에서 두번인가 세번인가 봤었더랬지요. 레이첼 와이즈랑 나탈리포트만을 처음 인식한 영화이기도 하고, 노라존스를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영화에 스며들게 한 것에 대해 왕가위 감독에 대해 감탄하기도 하고.

    [실연과 공허함 뒤에 오는 성장과 나아감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가 아닐까]
    이것도 참 공감합니다. 영화를 볼 때 어째선지 보다보면 늘 눈물이 났는데, 그저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서 저는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 레비 2012/02/08 13:23 #

    반갑습니다 :) 영화관에서 두세번 보셨다니 이 영화 많이 좋아하시나봅니다 ㅎㅎ 저도 뮤지션으로 더 친숙한 노라존스가 주연으로 등장해서 더 색다른 영화였던것같아요. 오히려 넘치는 헐리우드식 로맨스물이 아니라 더 잔잔하게 감성을 자극했던 영화인것 같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D
  • 스트로베리라임 2012/02/29 17:10 # 답글

    앗ㅎㅎ 제가 좋아라하는 영화가 여기에ㅎ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2/03/01 02:35 #

    저도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 리플 감사해요 :D
  • 설링 2012/03/22 16:28 # 답글

    우연히 영화리뷰 검색을 하다가 레비님 포스팅을 보게 됐어요.
    저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랍니다. ㅎㅎ
    포스팅한 다른 영화들도 잘 봤습니다 :)
  • 레비 2012/03/22 19:38 #

    반가워요 ! 그런데 이글루스는 안하시나봐요 ㅠ_- 프로필 사진부터 블루베리나이츠군요 :D ㅎㅎㅎ

    감사합니다 :) 종종 들러주세요 :)
  • 설링 2012/03/23 01:12 # 답글

    얼마 전에 잃어버린 이글루스 계정을 찾게 되어서 ㅠㅠ
    아직은 빈 공간이지만 앞으로 꾸준히 포스팅 할 생각이에요:)
    종종 들려서 구경해도 될까요?
    레비님의 영화리뷰들 읽고 포스팅 영화도 보느라 오늘하루가 지나갔네요. ㅎㅎ
  • 레비 2012/03/23 01:14 #

    언제든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지금도 영화포스팅 쓰고있다가 이 댓글을 보았네요 :)
    게다가 앞으로 꾸미실 예정이라니 더욱 기대되요 :D 바로 링크하러 갑니다.
    제 졸필에는 언제나 피드백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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