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Merry Christmas Mr.Lawrence, 1983 Flims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누구는 챙겨 가보는 장소가 있을수도 있고, 매년 함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꼭 듣는 나만의 캐롤이 있는데 그것은 10년 이전의 어느 인상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겪었던 기억 때문에 그 기억과 함께하는 음악을 들음으로서 그때를 추억하려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팀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챙겨보았다. 왠지 그 시즌이 아니라 다를 때 보면 재미가 반감되는 영화라서였을까. 이상하게 봐도봐도 매년 다시 찾게되었던것 같다. 하지만 올해부턴 왠지 크리스마스에 나는 다른 영화를 보고있을것 같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라는 다소 불친절한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되어있는 이 영화는 1983년 영국과 일본의 합작품으로 발표된 영화다. 그래서 양국의 국적을 가진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80년대 초의 제작배경을 차치하더라도 당시의 동서양 배우들의 섞임은 지금봐도 꽤 신선하다. 게다가 데이비드 보위나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두 주연배우가 양국의 뮤지션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물론 둘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놀랄정도로 다른 젊은 시절의 모습이긴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감독으로 더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의 데뷔 모습도 볼수 있어 캐스팅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다.




영화는 2차대전 당시 1942년의 일본군 주둔지 자바섬을 배경으로 갖는다. 주둔 일본군의 영국군 포로 수용소가 무대가 되는데, '고립된' 장소안에서의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몰아넣기엔 최적의 설정이 아닐까 싶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영화라고 보기 어려운 까닭은 총과 군복이 등장하지만 전투는 없고 오히려 포로와 간수들 - 사실 모두가 전쟁의 포로로 보이지만 - 사이의 관계와 심리가 주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주된 갈등은 역시 두 다른 문화의 차이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이다. 간수인 일본인들이 '지배'의 위치에 있고 포로인 영국인들은 '피지배'의 위치에 있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어느쪽에든 힘겹고 고달픈 조건이기에 두 문화권의 충돌은 힘이나 억압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된다. 영국인들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 할복관습 등을 야만적으로 바라보고 경멸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포로가 된 수치심을 안은채로 하루하루 비참하게 연명하려하는 영국군 포로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제목에 등장하여 나로 하여금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했던 로렌스는 영국군 포로 중 한명이다. 하지만 그는 영국군 포로의 대표자라고 할수있는 헉슬리를 포함한 여타 다른 영국포로들과 달리, 일본군의 그런 문화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려한다. 그것이 그에게 이 포로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때까지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기때문에 영화를 보다보면 로렌스의 그런 행동이 다소 비열하거나 자존심도 없게 느껴질수도 있다. 아무리 포로 신분이긴하지만 자신들의 적군이고 적대국이고 현재는 자신들의 '간수'역할을 맡은 사람인 하라 상사에게 마치 동료처럼 대하는 모습은 처음엔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영국군 포로들과 일본군 간수들 사이에 서서 중재와 소통고리의 역할을 하는 모습으로부터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모습이 아닌 주어진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공존시키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로렌스의 일본군의 소통 고리가 되는 자는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한 하라 상사이다. 둘의 과거 모습은 나오지않지만 초반부터 로렌스와 하라 상사 사이에는 단순히 상하 관계를 넘어서 그 저변에 깔려있는 친분이나 약간의 믿음이 있음을 금새 눈치챌수있다. 둘이 밤에 병동에서 나누는 대화는 두 다른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생각의 차이를 말하지만 그래도 둘 사이에는 이해까지는 미치지못하더라도 적어도 상호 존중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보다 영화의 메인이 되는 것은 오노이 대위와 셀리어스이다. 그리고 이 둘의 등장에 따라 영화는 사실상 이 넷의 관계에 따라 전개된다.




영화에 설정상 조선인이 일본군 측에 나오긴하는데 좋은 역으로 나오진 못했다. 국내개봉을 못한 직접적인 이유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영상은 특별히 아름답거나 보기 좋은 구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편하거나 어지럽지도 않다. 고립된 섬과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드는것보다 사람간의 심리변화를 담는데 치중했다.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다. 그리고 수용소라는 그 특수성 상,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설정되고 거기에 전쟁이라는 배경이 겹쳐져 서로 다른 문화, 인종, 사상 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부딪힌다. 게다가 적국관계를 떠나서 일본과 영국이라는 동서양의 다른 문화간의 조우가 그곳에서 벌어진다. 대부분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엔 승자와 패자가 있고 이는 곧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되지만 이 영화엔 승자와 패자는 있을지언정 옳고 그름은 없다. 로렌스와 하라는 어느쪽이 옳았던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였음을 인정해온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승전국인 영국의 로렌스는 거만하지않고 패전국인 일본의 하라 상사는 비굴하지 않다. 둘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옛날을 회상하고 이별을 아쉬워한다. 마지막 눈물을 글썽이는 쪽은 오히려 로렌스다. 자신의 포로시절, 지배자쪽에 섰던 하라에게 동정을 넘어선 연민을 느끼고 함께 오노이와 셀리어스가 뿌린 '씨를 거두는 자'들이 되었음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혹자는 영화에 동성애 코드가 흐른다고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오노이가 셀리어스에게 느낀 감정은 성적인 것보다도 존경과 동경같은 것이었다고 확신하다. 물론 직접적 묘사나 대사도 많이 담지 않은채로 오노이와 셀리어스의 둘의 관계를 분위기만으로 어떤 감정이 흐르는지를 보여준 것은 감독의 공이겠다. 또한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의 연기력에도 후한 점수를 주진 못하겠다. 요노이와 셀리어스의 관계는 사실 요노이의 일방적인 존경이나 흠모가 아닐까. 결정적인 장면중 하나인 셀리어스의 볼 키스도 본인은 동생에 대한 과거의 빚을 갚는 느낌으로 벌어졌지만 오노이에게 그것은 사적인 감정으로 인해 포로수용소의 총책임자로서 역할을 잃는 상징적 의미였다. 그런 불가피한 상황을 두고 동성애코드라 부르는건 무리가 있지않을까.






처형의 위기에 처한 로렌스와 셀리어스를 하라가 술에 취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석방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후에 엔딩과 맞물려 그냥 넘어갈만한 장면이 아니게되는데, 나는 그것이 그저 술기운의 객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본인의 역을 다해야하지만, 동시에 셀리어스를 죽이고 싶지않은 상관 오노이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이 책임을 지는 대신 그 어쩔수없음을 술과 말장난으로 무마시킨것이 아닐까. 사실 이 장면에서 하라 상사의 캐릭터가 분명해진다. 결국 수용소의 지배자인 그 조차도 전쟁은 불편한 존재이고, 할복조차 군인정신이라고 주장하던 그였지만 순수한 연민의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초반에는 그저 독선적이고 이해심없는 사무라이 정신의 일본인으로 비춰졌지만 실은 본심은 본인도 인정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의 그의 모습은 그것이 전쟁 후 변심한 모습이 아닌, 진짜 그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할수 있게 만든다.








영화를 보기전, 제목을 보고나면 로렌스가 주인공인줄 알게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사실 그냥 관찰자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씨를 뿌리는 자'들은 오노이와 셀리어스이듯이. 영화에 반전의 메세지는 사실 크게 없는듯 하다. 전쟁의 참상이나 피폐함을 묘사에 치중한 흔적도 없고 뭐 대단한 전투씬도 없다.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그렇듯이 그 특수한 상황을 빌려왔다고 표현하는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는 영화다. 하지만 종전후 로렌스와 하라의 대화에서 볼수있는 '다른 군인과 다를바없는 죄' 라는 대목을 말하는 하라에게서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하게끔 내몰았고, 과연 그 죄가 개인이 책임져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오히려 올곧고 고지식한 오노이나 셀리어스보단 그런 상황에 적응하고 맞춰간 로렌스와 하라의 관계가 더 공감이 가는 영화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상황하에선 후자의 관계를 지향하지 않을까. 현실에 타협하고 적응해나가는것이 소위 말하는 '처세술'이라고 포장되는 시대에 말이다.

마지막 로렌스의 대사 "그들은 씨를 뿌렸고 우리는 곡식을 거둔다" 는 이 영화의 원작 <씨와 씨 뿌리는자>라는 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의 소설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읽어보질못해서 더이상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읽고나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철학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것같다.






이 영화를 말하면서 음악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수가 없는데, 동명의 곡인 "Merry Christmas Mr.Lawrence"라는 주제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품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 중간중간 메인테마 역할을 하고있다. 워낙 서정적이고 뛰어난 곡이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보다 이 곡을 더 잘 알고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나 역시 영화보다 음악을 먼저 접했다. 우타다 히카루가 부른 보컬버전 또한 추천할만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꼭 내 귀에서 재생되고있는 필청 리스트에 몇년 째 올라있다. 배우로 갓 데뷔한 기타노 다케시를 보는것도 신선했지만 류이치 사카모토의 젊은날을 보는것 또한 그랬다. 이 영화는 그가 음악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 덕에 그는 몇년뒤 1987년 영화 <마지막 황제>의 제작에 참여, 주제곡까지 손을 댈수있었고 결국 그는 그 유명한 <Rain> 으로 아시아인 최초의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쥔다.






어떤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는건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그런일이 흔치 않다면 더더욱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다. 내가 특별히 감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영화를 보면서 자주 우는적도 없는데, 딱히 슬픈장면이나 감동적인 멘트 하나 없었음에도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났음을 솔직히 시인해야겠다. 20대 후반의 나이인 내가, 여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다니 누가 들으면 웃을만한 일이지만, 마지막 로렌스의 작별인사가 울먹이고 있었다고 들린건 정말 내 착각이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는다. Merry Christmas Mr.Law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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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오공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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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01/30 21: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1/30 23:53 #

    방문 감사합니다 :) 이런게 전 블로깅의 기쁨인것같아요 ㅎㅎ
    15년전이라면.. 그때면 전 초등학생이었군요 ^^;;
    저도 링크 할게요 ㅎ 감사합니다 :)
  • JEDI 2012/01/31 00:01 # 삭제 답글

    오~이런 영화가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혹시 DVD라도 국내출시된건가요? 아님 어둠의 경로를 통해
    찾아봐야하나요?
  • 레비 2012/01/31 10:11 #

    국내 개봉은 안된걸로 알아요 :) dvd는.. 잘 모르겠네요 ^^;; 방문감사합니다 :)
  • ranigud 2012/02/01 09:24 # 답글

    곡을 정말 좋아해서 자주 듣곤 했는데 영화가 있었군요.
  • 레비 2012/02/01 11:34 #

    네. 많은분들이 피아노곡은 알고계신데 영화는 모르시더군요 :) 방문감사합니다.
  • 淸嵐☆ 2012/02/01 10:54 # 답글

    일본 외 3개국(영국. 호주, 뉴질랜드) 합작이라 일본식 원제인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와 Merry Christmas Mr.Lawrence가 동시에 쓰입니다.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고나서 일본에 가자마자 구입해서는 매년 크리스마스 마다 보고 있어요 >_<
    정식 개봉은 안되었지만 인디 영화관이나 한일국제교류기금센터에서 주최하는 영화제에서 어쩌다 한 번 상영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네요. 언젠가 스크린에서 보고 싶긴 한데... 'ㅠ;
  • 레비 2012/02/01 11:39 #

    미르에서 카툰본지 몇년 지난거같네요.. :) 그 사이에 전 군대다녀왔는데 ㅎ 오랫만입니다 청람님. 요즘도 항해하시는지요? :D

    일본이랑 영국뿐만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합작이었군요 :)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가 일본식 제목이라고 들은적은 있는데 전 후자가 더 마음에 들더라구요 ㅎ 우리나라 스크린에서도 보고싶은데 아직 그럴 기회가 없었네요 ㅠ
  • 淸嵐☆ 2012/02/01 19:05 #

    흑흑 나뭇잎배는 올해 들어 다시 재개해야 했는데 정초부터 이런저런 일이 많아 항해도 다시 잠수하고 있네요 T_T 정신차리고 그려봐야겠습니다 ;ㅅ;
    작년 여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하면서 틀어줬는데 아쉽게도 놓쳤다지요 T_T 자금만 있으면 영화관 대관해서 DVD나마 틀어놓고 싶습니다 ;ㅅ;
  • Cheese_fry 2012/02/01 12:43 # 답글

    덕분에 예전에 영화 본 생각도 나고, 음악도 오랜만에 들었어요. ^^
  • 레비 2012/02/01 13:10 #

    방문 감사합니다 :) 전 신작개봉영화들보다 이런 추억속의 영화들이 더 좋더라구요 ^-^ 음악도 참 좋지요. :)
  • 2012/04/27 23: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비 2012/04/30 15:05 #

    팀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도 사실 매년 의례적으로 보는 것이긴하지요..ㅎㅎ 맞아요 :) 오노이가 셀리어스를 동경하는 그럼 느낌.. 아 그러고보니 확실히 그 드용과 보초병의 이야기는 동성애가 묘사된것이 맞긴하군요. ㅎ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영화라 저도 반가운마음에 트랙백을 ! 걸었어요 ㅎㅎ 방문감사합니다 :D
  • 2016/11/27 17:24 # 삭제 답글

    전 이영화가 혐한물이라는 점은 좀 별로지만...저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라는 노래는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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