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Flims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코엔 형제가 영화한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로케이션에서 함께 촬영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함께 현대 미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21세기 이후의 가장 뛰어난 영화들 중 두 편에 늘 함께 손꼽히는 수작으로 영원히 남게된다. 두 영화의 이런 우연은 그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이어졌고, 결국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누르고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페인의 마초, 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영화에 등장한 안톤 시거의 열연으로, 그 해의 거의 모든 유명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싹쓸이 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연기한 이 안톤 시거라는 캐릭터는 - 그 독특한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배우가 내뿜는 무표정과 미소의 얼굴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미국 영화사에 남을만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사실 이 영화를 대여섯번 봤지만 이번 재개봉 덕에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이 영화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의 캐릭터와 연기에 다소 가져려있던 토미 리 존스의 연기, 그리고 그의 캐릭터에 더욱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 '노인'에 대해서 말이다.



코엔 형제의 영화들을 어떤 장르적 범주에 가두어 정의 내리는건 불가능하겠지만, 이 코미디부터 스릴러까지 두루 아우르는 그들의 영화 세계를 가로지르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과 오해 그리고 추격과 추적의 영화들이라는 것이다. 초기작 <파고>와 코미디 <번 애프터 리딩>,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 <인사이드 르윈>에 이르기까지 범죄가 소재가 되든 아니든 그들의 영화속 캐릭터들은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무언가를 쫓는다. 그리고 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단연 가장 빛나고 있는 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런 그들의 추격의 서사가 가장 긴장감있게 그려진 영화일 것이다. 특히 코엔 형제는 영화 속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매번 굉장한 솜씨를 뽐내는데,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캐릭터, 그러면서도 그들 중 두 명 이상을 절대 한 화면에 넣지 않는 교묘한 촬영으로, 마치 세 편의 각기 다른 옴니버스를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퇴역 군인이자 텍사스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있던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는 사실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주인공과 달리 이 영화는 대부분 우연에 그 인과 관계를 빚지고 있는데, 그는 첫 등장씬부터 그가 사냥총으로 쏘아 맞춘 사슴 한마리가 바로 쓰러지지 않은채 도망치는 우연을 만났고, 그 사슴을 쫓던 그는 사냥터를 벗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원래 취하려던 합당한 대가(사슴)를 그 첫 장면 이후 구경도 못한채 당도한 잘못된 곳에서, 사슴의 핏자국을 찾다 다시 한번 살육과 범죄의 현장으로부터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개를 발견하는 두번째 우연과 만난다. 이런 두번의 우연에 이끌려 그는 그곳에서 우연이 선물한, 그리고 큰 대가가 따르는 보상(거액의 돈 가방)을 얻게된다. 이렇게 몇번의 우연 끝에 얻은 이 선물만큼 필연적으로 그 대가는 그의 목덜미를 끈적하게 따라붙는다.


모스의 돈가방을 쫓는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는 절대 서두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장난처럼 매번 정확하게 그가 원하는 장소에 도달한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인간이라면 으레 당황할법한 상황에서도 마치 모든 상황들을 여러번 겪어본듯 능숙하고 물 흐르듯 대처하는 행동들은 그가 어쩌면 인간의 영역밖에, 마치 신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는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절대악 역을 맡고 있는 조커와 유사한데, 둘 다 영화안에서 다른 이들이 모두 추구하는 룰과 가치(돈)를 혼자 유유히 초탈한 채, 그리고 인간의 영역이 아닌 거의 신의 영역에 가까운 직감과 행운으로 원하는 바를 너무나 손쉽게 얻어낸다는 것에 그 유사함이 있다. 결국 <다크나이트>에서의 조커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의 시거 역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즉 한낱 인간이 거스를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모스를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도 추적하면서 '우연히' 만난 자들에게 우연이라는 죽음을 선사한다. 그는 말 그대로 모스의 큰 행운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죽음이라는 큰 대가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런 신적인 행보가 가능하다. 모스가 돈 가방을 버리더라도 시거는 그를 죽일 것이고 모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상을 포기하고 달아난다고 해서 죽음도 너를 포기해주진 않을 것이니까. 그렇기때문에 아내에게 먼저 도망치라고 하면서 그는 "이제와서 되돌릴 순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올드 맨,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은 인생의 축적된 경험으로서 시거와 같은 죽음과 불운의 냄새를 모스보다 더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 노인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명백히 시거의 대척점에 서 있는데, 이 영화는 마치 모스를 사이에 두고 시거와 벨이 펼치는 한 편의 줄다리기와 같다. 그러나 팽팽한 줄다리기라고 하기엔, 벨은 매번 시거보다 한 발씩 늦게 당도하고, 시거는 늘 벨보다 빠르게 모스에게 엄습한다. 벨은 이미 이해할 수 없는 무질서와 무규칙이 점점 더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세대를 거듭해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의 룰과 규칙을 지켜내기에 하루하루 힘이 부치는 노인이기 때문이고, 시거는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그가 알고 있던 상식과 규범을 무너뜨리며 그보다 한발 더 앞서 움직이고 있는 악이기 때문이다. 벨은 도저히 그런 시거를 저지할 수가 없다. 결국 그는 모스를 시거로부터 지키는데 실패한다.

영화는 종반부에 시거로부터 잘 도망치는듯 했던 모스가 허무하게도, 시거가 아닌 멕시코 갱들에게 죽는걸로 묘사된다. 묘사된다고 말한 이유는, 그의 죽음이 영화에 정작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모스에게 거의 다 도착한 벨에 의해서 간발의 차이로 '관찰'된다. 그의 수호천사가 그에게 거의 다 도착했을 찰나, 그는 어이없게도 그간 잘 피해다녔다고 생각한 시거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의해 죽는다. 그렇다면 모스를 그렇게 쫓던 시거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거는 죽음 그 자체였고, 모스를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자들에겐 죽음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주인공처럼 느껴진 모스의 죽음은 정작 카메라에 담기지도 않고, 담길 필요도 없는 그토록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진행됐다. 극을 이끌어나가던 세 명 중 모스가 갑자기 퇴장해버렸다.



세 인간중 가장 나약할 수 밖에 없는 모스가 가장 먼저 퇴장할 것은 어느정도 예상가능한 전개였다. 문제는 이제 타겟을 잃어버리게된 시거와 그 시거를 쫓던 벨이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서로를 목전에 둔다. 모스가 죽은 사건 현장을 벨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문하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뚫려있는 문의 자물쇠 구멍을 발견한다. 모스는 돈을 노린 멕시코 갱단에게 죽은것이 확실하지만, 그런 모스의 종착역에조차 시거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도착하고 만 것이다.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은, 뚤려있는 자물쇠 구멍을 통해 시거와 벨이 아주 희미한 서로의 그림자를 감지하며 서로 마주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그 장면이다. 이 영화의 가장 긴장되고 가장 미스테리한 이 장면에 대해선 여러 영화 평론가들조차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을 정도로 의견이 분분한데, 여기 내 소견을 하나 더 하고 싶다. 그동안 벨은 시거가 다녀간 장소에서, 그가 마셨던 우유를 마시고, 그가 앉았던 쇼파에 앉아 같은 것을 보며 따라오며 마침내 이번에야말로 대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비상식과 부조리의 세상에서 외로운 노인이 마침내 죽음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장난을 부리듯, 문을 연 벨 앞에 시거는 증발하고 없다. 안쪽에서 닫혀진 창문까지 확인한 벨은 이번에도 한 발 늦은 것이다. 하지만 문 밖의 벨과 방 안 어둠속에서 총을 든 채 기다리고 있던 시거의 교차 편집은, 그 둘이 동시간대에 그 공간에 있었음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죽음은 모스에게는 닥쳐왔지만 벨의 차례는 아니었다.지혜로운 노인은 이번에도 무질서와 탈규칙의 혼돈 그 자체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텅 빈 범죄현장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돈 가방 그리고 자신이 평생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껴야하는 먹먹한 무력함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죽음조차 아직 너의 차례가 아니라며 눈 앞에서 사라지는 잔인함이다.

이 영화는 결국 노인의 영화고, 그래서 보안관 벨의 나래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안톤 시거의 영화가 아니라 벨의 영화다. 결국 은퇴를 실천한 벨은 영화의 마지막에 죽은 아버지가 등장한 꿈을 아내에게 말하며 영화를 끝낸다. 불빛을 들고 자신보다 먼저 간 아버지가, 그곳을 먼저 환하게 비추고 있을 것이라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이 땅 위가 아니라 아마도 그 곳에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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